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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16세 전태일 대구 고향집, 5년 만에 기념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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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과 만날 수 있는 곳, 전태일과 대화할 수 있는 곳으로 태어나기 바랍니다."
13일 해질 무렵 대구 중구 남산동 2178-1번지.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길 주택 한쪽에 바랜 영정과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이곳은 다름 아닌 전태일(1948~1970) 열사가 유년기를 보낸 고향집. 전 열사 가족이 생활한 셋방 터에는 전태일을 소개하는 동판이 설치됐고, 과거 주인집이었던 공간엔 전 열사와 어머니 이소선 여사, 노동운동에 헌신한 조영래 변호사의 일대기와 사진이 걸렸다.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전 국회의원은 집을 둘러보고는 "여기 살 던 때의 기억들이 필름처럼 돌아갔고, 우리 식구들이 이곳에서 모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돌아가신 오빠가 꼭 이곳을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으로 일하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전 열사가 유년 시절을 보낸 대구 옛집이 복원됐다. 일반인이 살던 이 집을 2019년 시민단체와 시민이 뜻을 모아 매입한 지 5년 만이다. 전 열사가 생전에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평했던 바로 그곳이다.
사단법인 '전태일의친구들'은 전태일 54주기인 이날 '시민이 만든 기적, 열여섯 살 전태일의 귀향'이란 주제로 개관식과 추모식을 열었다. 전 전 의원, 전태일의 청옥고등공민학교(현 명덕초) 재학 시절 은사였던 이희규씨를 비롯해 시민 100여 명이 참석해 축하했다. 복원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본 윤종화 전태일의친구들 건축위원장은 "무리하게 형상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은 취지에 어긋나고, 옛집이 낡은 주택가에 있어 복원 과정에 어려움도 있었다"며 "열사의 정신을 담은 평화와 안식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다시 태어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복원된 대구 옛집은 전태일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옛 주인집)과 가족들이 생활했던 셋방터 등으로 구성됐다. 과거 담장으로 가로막혀 있던 벽은 집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했고, 옛집을 방문한 시민들이 잠시 앉아 쉴 공간도 마련했다. 복원 성금을 기부한 시민들 이름을 새기기 위한 '기부자의 벽'도 조성하기로 했다. 향후 각종 전시와 소규모 모임, 워크숍 등 누구나 이용 가능한 공간으로 개방될 예정이다.
전태일 옛집은 1955년 지어진 목조주택이다. 전태일이 1964년 2월 남동생 태삼씨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기 전까지 가족들과 약 2년간 살았다. 전태일은 추후 자신의 일기에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분신 전 대구 청옥고등공민학교 시절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유서를 쓸 만큼 이 시절을 각별하게 생각했다.
이 집이 '과거 전태일과 가족들이 살았던 옛집'이라고 알려지자, 지역 시민단체 등은 2019년 복원을 위해 사단법인을 설립하고, 시민 모금운동에 나섰다. 그동안 주택 매입비(5억9,000만 원)와 복원공사비(3억 원) 등 총 8억9,000만 원을 십시일반으로 마련해 올해 완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 악재도 있었지만, 오롯이 시민들의 뜻과 의견에 따라 옛집을 복원하겠다며 대구시 등 지자체 예산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당시 집주인도 취지에 공감해 매매 절차 지연에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준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에는 전태일 분신 50주기를 맞아 태삼씨와 시민들이 함께 전태일 문패 달기와 그가 다녔던 청옥고등공민학교까지 300여m 등굣길을 함께 걷기도 했다.
송필경 전태일의친구들 이사장은 "전태일의 정신이 탄생한 대구 옛집 복원에 전국적인 성원을 보내주신 시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열사의 삶을 반추하고 노동정신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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