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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 빌딩숲에 등장한 뿌리와 이파리... "전시 끝나면 자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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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상업 건물이 숲을 이루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복판에 미술관이 들어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3층 건물 입구에 들어서니 거대한 나무 더미가 공간을 점령했다. 천장에 매달린 엉킨 나뭇가지는 지하에서 증식하는 나무뿌리를 닮았다. 아래로 내려다보거나 땅속에 있어 볼 수 없는 나무뿌리를 올려다보는 생경한 풍경은 마치 깊은 땅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보태니컬 아티스트 박소희가 잘라내 버려진 나뭇가지를 모아 만든 설치 작품 '콤플렉스 루트(COMPLEX_root·뿌리 집합)'다.
최근 라인문화재단이 서울 삼성동에 개관한 '프로젝트 스페이스 라인'은 거대한 뿌리로부터 시작된다. 커미션 신작으로 선보인 개관전은 현대미술 작가 박기원·박소희의 2인전 '모든 조건이 조화로울 때'. 독특한 점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전체 공간을 열어 놓고, 최소한의 작품을 배치했다는 점이다. 모든 작품은 전시 기간이 끝나면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로 만들었다. 압도적인 공간을 선보이기 위해 큰 비용을 투입해 공간을 꾸미고, 전시가 끝나면 작품과 설치물이 쓰레기로 돌변하는 여타 전시장 모습과 다르다. 전시를 기획한 고원석 라인문화재단 디렉터는 "콘크리트 빌딩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선보이는 예술이 어떤 새로운 감각과 의미를 던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공간의 기획과 운영의 첫걸음에 환경과 생태적 가치를 녹여내면서 '빌딩숲의 휴식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두 작가도 "생명을 죽이거나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전시를 만들어보자"는 기획 의도에 공감하고 작품 소재 선정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고 한다. 1층의 설치 작품을 구성한 나뭇가지는 작가가 폐업을 앞둔 충남의 과수원을 섭외해 공수한 과실수 가지다. 2층 전시는 사방의 벽을 투명한 비닐로 덮고 LED 조명을 설치해 은은한 공간을 만든 박기원 작가의 설치 작품 '중정'과 마치 유기체처럼 보이는 박소희 작가의 설치 작품 '르 솔(Le sol·흙)'이 놓였다. 바닥에 놓인 푸른 잎은 전지 작업을 통해 버려진 나뭇잎을 재사용했다. 고 디렉터는 "시공을 짐작할 수 없는 빛의 공간에 놓인 이파리가 전시 기간 동안 서서히 푸릇한 색이 빠지면서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감상의 묘미"라고 말했다.
3층은 특별한 장치 없이 박기원 작가의 작품만으로 공간감을 극대화했다. 한지 위에 유채로 채색한 '넓이' 회화 연작과 설치 작업 '허공 속으로'를 배치했다. 수십 개의 회화가 걸렸지만 작품을 전시하고 관람객의 동선을 유도하기 위해 설치하는 '가벽'이 없다. 한번 사용하면 재활용이 쉽지 않아 전시 폐기물의 주범으로 꼽히는 가벽을 대신해 재활용이 가능한 아연도금한 철제 구조물 80여 개로 만든 '허공 속으로'를 놓았다. 고 디렉터는 "미로처럼 배치된 구조물을 지나다니며 액자 없이 자석으로 고정한 23점의 회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며 "다양한 거리와 각도에서 작품을 감상하게 하는 장치이자,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적인 오브제"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2월 8일까지. 무료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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