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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기후위기, 기근… 올해도 얼어붙은 글로벌 성탄 전야

입력
2024.12.25 16:23
수정
2024.12.26 00:3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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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2년째 성탄 축제 축소
가자 폭격도 지속… 70여명 사상
'호주 산불' '글로벌 기근'도 확산세
교황 "협상문 열어젖혀야"…평화 강조

기독교 순례자들이 성탄절 전야인 24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탄생교회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기도하고 있다. 베들레헴=AP 연합뉴스

기독교 순례자들이 성탄절 전야인 24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탄생교회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기도하고 있다. 베들레헴=AP 연합뉴스

올 한 해 전쟁과 기후위기, 기근 피해 등에 시달렸던 국제사회는 성탄 전야에도 침통한 분위기를 이어 갔다. 예수의 탄생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 여파로 크리스마스 축제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호주는 대형 산불로 고통받았고, 인도주의 단체들은 더욱 암울한 내년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마지막 슬픈 성탄절'이길"

24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베들레헴은 떠들썩하지 않았다. 거리 축제 조명과 크리스마스트리는 사라졌고 예년처럼 화려한 금관악단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지난해 10월 발발했던 가자 전쟁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2년 연속 성탄절 축제를 사실상 취소한 것이다. 한 해 200만 명씩 찾아오던 순례객 수는 올해 10만 명 이하로 급감했다.

가자·서안 곳곳에는 이스라엘군 폭탄이 떨어졌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25일 가자지구 보건부를 인용해 직전 24시간 동안 가자 주민 최소 21명이 죽고 51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서안지구 툴캄 인근에서도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최소 8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소 750명의 사상자를 냈던 지난해 12월 24일에 이어 올해도 이스라엘의 '성탄 전야 공세'가 이어졌던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탄 메시지도 '평화'

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탄 전야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바티칸시티=AP 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탄 전야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바티칸시티=AP 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탄 전야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바티칸시티=AP 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탄 전야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바티칸시티=AP 뉴시스

국제사회는 평화를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성탄절 메시지 주제로 '전쟁과 평화'를 제시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 모인 수천 명의 군중 앞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전쟁에 짓밟힌 우크라이나에서 무기 소리가 조용해지기를, 정의롭고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 협상의 문을 열어 대화하고 만날 수 있는 대담함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대립하고 있는 가자전쟁을 언급하며 "대화와 평화의 문을 열어젖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특히 인도주의적 상황이 매우 심각한 가자지구의 기독교 공동체를 생각한다"며 "그곳에 휴전이 있기를, 인질이 석방되기를, 굶주림과 전쟁으로 다친 이들에게 지원이 가기를"이라고 기도했다.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인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은 이날 베들레헴에서 "올해가 정말 '마지막 슬픈 성탄절'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가자 전쟁 휴전 성사 기류가 고조되고 있는 만큼 내년에는 중동에 '평화 무드'가 자리 잡기 바란다는 얘기였다. 다만 이스라엘 극우 진영의 반대는 여전히 휴전 성사 막판 변수로 남아 있다.


"굶어 죽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12월이 한여름인 호주 동남부 주민들은 성탄 전야를 뜬눈으로 지샜다. 빅토리아주(州) 멜버른에서 서쪽으로 240㎞ 떨어진 그램피언스국립공원이 무섭게 불타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중순 시작된 산불은 이상고온과 가뭄을 불쏘시개 삼아 한 주 만에 410㎢를 태웠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향후 화재가 얼마나 번질지도 미지수다. 연일 강풍이 불어닥쳐 산불 진압은 어려운데 비 소식은 내년 3월에야 예정돼 있다. 빅토리아 재난 당국은 인근 지역에 대피령을 내리면서 "2020, 21년 24만㎢를 불태웠던 최악의 산불 '블랙 서머'(검은 여름) 이래 최악의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호주 동남부 빅토리아주 그램피언스국립공원 폐쇄를 알리는 전광판이 지난 22일 공원 초입에 세워져 있다. 호주 재난당국은 이달 중순에 시작된 대형 산불이 계속 확산하자 공원을 폐쇄하고 인근 지역에 대피령을 내렸다. 그램피언스=EPA 연합뉴스

호주 동남부 빅토리아주 그램피언스국립공원 폐쇄를 알리는 전광판이 지난 22일 공원 초입에 세워져 있다. 호주 재난당국은 이달 중순에 시작된 대형 산불이 계속 확산하자 공원을 폐쇄하고 인근 지역에 대피령을 내렸다. 그램피언스=EPA 연합뉴스

경색된 국제사회 지원 분위기는 내년에도 이어질 듯 보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엔은 인도주의 지원이 필요한 인구 3억700만 명 중 약 40%가 내년에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지원 기금 모금액이 목표 액수였던 496억 달러(약 72조3,700억 원)의 46%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2016년 이래 유엔이 목표치 절반을 못 채운 것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다.

핵심 기부국인 유럽과 미국의 우경화 흐름은 특히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독일 정부는 이미 '기부금 10억 달러(약 1조4,500억 원) 삭감'을 검토하고 있고, 내년 출범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대규모 예산 손질을 예고했다. 로이터는 "전 세계에 굶어 죽는 사람 수는 늘어나는 반면 부유한 나라들은 돈을 점점 덜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종 기자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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