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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인에 신분증 발급 열 올리는 중국... "대만에 '중국인 심어두기' 통일 전술"

입력
2025.01.07 15:10
수정
2025.01.0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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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증·은행계좌·휴대폰 번호 등 발급 유도
자국민 문제 구실로 대만 내부 간섭 노림수

중국과 대만 국기를 형상화한 이미지. 중국이 최근 중국을 방문한 대만인들에게 '중국 신분증'을 발급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중국과 대만 국기를 형상화한 이미지. 중국이 최근 중국을 방문한 대만인들에게 '중국 신분증'을 발급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중국이 대만인에 대한 신분증 발급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사회에 중국인을 심어 유사시 정치적 개입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통일 전술로 분석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6일(현지시간) "중국이 점점 더 많은 대만인에게 신분증을 발급하고 있다"며 "대만인을 통합하려는 중국의 조치에 대만 정부의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이 인용한 복수의 대만 관리에 따르면 중국은 대만인을 상대로 △거주증 △은행 계좌 △휴대폰 번호 등 이른바 '3개의 문서'를 신청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중국을 방문한 대만 기업가나 관광객이 주요 타깃이다. 심지어 대만 정부 관계자도 중국의 신분증 신청 권유 대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6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황포군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식' 사례가 대표적이다. 황포군관학교는 중국 최초의 근대식 사관학교로, 중국 정부는 당시 대만에 거주 중인 이 학교 생도 후손과 퇴역 군인들도 초대했다. 이때 중국을 찾은 대만인들에게 중국 신분증을 발급해 줬다는 게 기념식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물론 3개의 문서를 발급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중국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 시민 신분 부여를 위한 사실상의 '진입로'를 열어 차후 중국 정부가 대만 내정에 간섭할 구실로 활용할지 모른다는 게 대만 정부의 우려다. 대만 정부의 한 고위급 정책 담당자는 "중국 신분증을 소지한 대만인이 중국과 관련된 사건에 연루되면 중국은 '우리 국민의 문제'라며 대만 내부 일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고 짚었다.

라이칭더(왼쪽 두 번째) 대만 총통이 지난해 5월 20일 수도 타이베이에서 총통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AP 뉴시스

라이칭더(왼쪽 두 번째) 대만 총통이 지난해 5월 20일 수도 타이베이에서 총통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AP 뉴시스

FT는 이 같은 중국의 '신분증 발급'이 러시아의 오랜 전술과도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2014년 자국으로 이주한 동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여권을 발급해 우크라이나 분쟁 개입의 명분으로 삼은 적이 있다. 또 2000년대 초반 조지아 내 자치공화국인 압하지아와 남오세티아 주민들에게도 러시아 여권을 제공한 뒤, 2008년 '러시아인 보호'를 빌미로 조지아와 전쟁을 벌였다.

얼마나 많은 대만인이 중국 신분증을 받았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중국 푸젠성 취안저우시에서 청년 창업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대만인 린진청은 최근 자신이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 "이미 20만 명의 대만인이 중국 신분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대만 정부는 대만인이 중국 신분증을 소지할 경우 대만 호적 등록을 취소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신분증 발급 여부를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어, 실질적 대응 방편은 딱히 없는 실정이다. 독립주의 성향인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지난 1일 신년사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 신분증 취득은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 어리석은 행동"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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