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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 계엄의 밤 기억하는 원로 평론가의 마지막 평론집 “역사는 돌아온다, 다른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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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무웅 평론가가 7일 서울 서초구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1972년 10월 17일 계엄의 밤, 서른한 살의 청년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서울 종로구 출판사 인근 막걸리 골목을 지나다 국회 해산과 정당·정치 활동 중지를 알리는 라디오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2024년 12월 3일, 계엄의 밤이라는 역사는 반복됐다. 어느덧 여든네살의 원로 문학평론가가 된 그가 자신의 비평 인생 60년을 마무리하는 평론집의 제목을 '역사 앞의 한국문학'이라고 지을 수밖에 없던 이유다.
1964년 신춘문예로 등단, 민족예술인총연합과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창작과비평사 대표, 국립한국문학관 초대 관장을 지낸 염 평론가는 그 자체로 한국문학의 역사다.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에서 만난 염 평론가는 "세계화, 신자유주의가 끝나고 '역사'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며 "역사는 지난 그대로가 아니라 나선형으로,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지난 60년의 세월 동안 "단순히 과거가 아니라 오늘도 살아 있는 과거로서의 역사 속에서 문학을 읽어 왔다"는 그는 “젊은 세대에게 ‘역사의식’을 아직 잊을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염무웅 지음·창비 발행·496쪽·2만8,000원
염 평론가의 평론집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은 민영과 강민, 김수영, 신경림 등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껴안고 피 흘린 문인의 작품과 이들의 개인적·사회적 배경을 함께 살핀다. 또 남북작가대회 개최와 국립한국문학관 설립 등 한국 문학사에 직접 앞장선 기록도 묶었다. "어떤 문학 현상도 과거와의 연관성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 염 평론가의 믿음이 고스란히 담긴 글이다. 그는 이어 "다시 돌아오는 역사를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하고 실현할 것인가는 젊은 세대의 문제"라며 "국회와 남태령, 한강진으로 향하며 역사의 부름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2030 여성들은 새로운 정치세대의 탄생을 실감하게 한다"고 짚었다.
평론을 시작했던 1960년대와 지금, 여전히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그에게 답은 늘 문학이다. 염 평론가는 "노벨문학상을 탄 한강뿐 아니라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작가 등 예민한 작가들의 글은 시대의 징후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문학이 일찍이 없던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면서도 그의 시선에는 우려가 섞여 있다. 염 평론가는 "내가 문단에 발을 들인 1964년에는 문인의 숫자가 몇백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몇만 명"이라며 "작가의 수가 많아지면서 책 한 권을 팔려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이라 평론가도 엄격한 비평을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염 평론가는 이번 책이 자신의 마지막 평론집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60년간 쉬지 않고 읽고 생각하고 써 왔다는 그는 나이가 들어 청력과 시력에 문제가 생기면서 "책 읽기가 쉽지 않아졌다"고 털어놨다. "굳이 매달려서 안 떨어지려고 악을 쓰느니 그만 손을 놓고 편하게 지내도 욕먹을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나보다 40년 후배조차 나오는 상황에서 또 쓰겠다는 건 장기 집권하는 자들이 '할 일 마저 하고 퇴직하겠다'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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