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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백혈병 사망' 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 법원, 품질공정 산재 첫 인정

입력
2025.01.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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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징 공정 검수 담당 품질공정 엔지니어
산재 인정 안 한 공단 판단 뒤집은 재판부
"고농도 벤젠·노출 기간도 길어... 발병 영향"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반도체 품질공정 엔지니어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졌다면 산업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피해자 단체에 따르면, 품질검사 업무와 백혈병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한 첫 사례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박정대)는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에서 근무하다 급성 골수모구성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A(당시 36세)씨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08년에 입사해 반도체 품질공정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반도체 공정은 웨이퍼 제조, 식각 공정, 금속배선 공정, 패키징 공정 등 여러 단계로 나뉘는데 A씨는 패키징 공정에서 품질 검수를 담당했다. 제품 내부 불량 원인 확인을 위한 엑스레이 검사작업과 완제품에 열적 스트레스를 준 뒤 초음파 검사를 수행하는 작업 등을 했다.

A씨는 2010년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을 진단받고 2012년 완치 뒤 복직했지만, 2017년 백혈병을 진단받아 결국 2019년 사망했다. 공단은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조립 라인에서 검출된 벤젠 최고 농도가 산재보험법 시행령이 정한 0.5ppm에 미달한다는 직업환경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가 중요한 근거가 됐다.

그러나 법원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유해화학물질 노출 정도가 시행령이 정한 기준에 미달했더라도 업무 수행 중 노출된 방사능, 벤젠으로 인해 백혈병 등이 발생했거나 발생 촉진의 원인이 됐다고 추단할 수 있다면 업무상 질병"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A씨가 담당한 몰딩 장비 작업에 주목하면서 몰드 공정에서 사용되는 EMC(반도체 봉지재) 및 금형세정제의 수지 성분에 열이 가해질 경우 벤젠 등 유기화합물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특정 작업 수행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고농도 벤젠이 발생해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면서 "6년가량 유해 물질에 노출된 후 백혈병이 발병해 누적 노출 기간도 짧지 않다"고 설명했다. 유족을 대리한 더드림법률사무소의 정영재 변호사는 "특정 유해 물질에만 노출되는 다른 공정과 달리 A씨는 복합적으로 여러 유해 물질에 노출된 케이스"라면서 "특수한 상황이지만 업무상 질병을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 복직 당시 항암치료로 A씨의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였던 점도 고려했다. 그러면서 "A씨가 전에 앓던 골수형성이상증후군도 사업장의 유해 물질로 발병한 것일 수 있다"는 감정의 소견도 판결문에 함께 적었다.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은 백혈병으로 전환될 수 있는 질병이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반도체 품질검사 업무에서 백혈병이 발병해 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웨이퍼를 가공하는 클린룸 공정 업무뿐만 아니라 패키징 공정 업무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라면서 "몰딩과 고온 작업, 엑스레이 검사 등 작업에서도 발암물질에 노출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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