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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아닙니다”…19년 만의 세계기전 우승 평가절하한 日바둑팀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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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아닙니다.”
시종일관 냉정했다. 정교한 내부 판세 분석엔 걸림돌인 감정적 판단은 철저하게 배제시키겠단 속내로 읽혔다. 한때 세계 반상(盤上)을 호령했던 시절까지 떠올리면 긍정적인 평가도 나올 법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라고 평가절하하면서다. 최근 세계 메이저 기전 등에서 일본팀 단장으로 선수단과 동행 중인 김수준(46) 9단에게 지난해 급상승한 사무라이 바둑의 경쟁력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변이 그랬다. 김 단장과 연락은 지난달 초, 한·중·일 국가대항전인 ‘제26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우승상금 5억 원) 참석차 일본 팀원들과 함께 한국을 찾았던 방한 일정 도중 닿았다. 한국 국적의 김 단장은 일본 기원 소속 프로 바둑 기사로, 1996년 입단한 이후 ‘제30기 일본 신인왕전’(2005년)에서 우승했다. 김 단장은 일본 바둑의 상징인 조치훈(69) 9단 문하생으로도 유명하다.
요즘 사무라이 바둑은 말 그대로 상종가다. 지난해엔 간판스타인 이치리키 료(28) 9단의 ‘제10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우승상금 40만 달러·약 5억5,000만 원) 깜짝 우승으로 일본 바둑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지난 2005년 당시 25세였던 장쉬(45) 9단의 ‘LG배 기왕전’(우승상금 3억 원) 우승 이후, 무려 19년 만의 세계 메이저 기전 타이틀을 획득하면서다. 여기에 우에노 아사미(24) 5단도 지난해 ‘제7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오픈전’(우승상금 50만 위안·약 9,600만 원)에서 우승, 한국과 중국이 양분해왔던 오청원배의 첫 일본 우승자로 기록됐다. 일본기원 창립 100주년이었던 지난해 일궈낸 남·여 글로벌 기전 성과에 대해 김 단장은 “한국과 중국에 비하면 아직도 선수층이 얇다”고 잘라 말했다.
김 단장의 이런 보수적인 진단과 달리, 세계 무대에서 일본 바둑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지난해 국내 최고 권위의 프로 바둑 기전인 ‘제47기 SG배 한국일보 명인전’(우승상금 7,000만 원)에서 우승한 박정환(32) 9단조차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일본 바둑은 이젠 한국이나 중국과 실력적인 측면에서 대등한 수준에 올라섰다”며 “앞으로 세계 바둑계의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치켜세울 정도다. 박 9단도 지난해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15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전’(우승상금 1억8,000만 원) 4강전에서 일본 내 3인자인 시바노 도라마루(29) 9단에게 졸전 끝에 진땀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한 상태다. 박 9단은 지금까지 5개의 세계 메이저 기전 타이틀을 포함해 국내·외 각종 기전에서 36개의 우승컵을 적립한 초일류 기사다.
이런 긍정적인 평가에도 김 단장은 일본 바둑 생태계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무엇보다 느슨한 형태로 운영 중인 현재 일본 국가대표팀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는 게 그의 직언이다. “국가대표팀 내에서 산발적으로 진행하는 바둑 연구 방법부터 바꿔야 합니다. 지금 일본 대표팀은 너무 선수 개개인에게만 맡겨두는 경향이 있어요. 개인의 능력이나 재능, 노력도 중요하지만 바둑은 (이 정도로 목표를 달성하긴) 어려운 스포츠입니다.” 일본 국가대표팀에도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단 얘기였다.
그는 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국 내에서만 머물면서 연구와 훈련에 몰두해온 부정적인 패턴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대회에서의 경험치를 늘리는 게 중요합니다.” 보다 향상된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선 객관적인 시험대에서의 냉혹한 진단이 절실하단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달 추진했던 한국과 일본 바둑 대표팀의 친선 교류전도 이런 시각에서 진행됐다. 강한 상대들과 대국을 통해 일본 대표팀 선수층을 두껍게 하겠다는 의도다.
일본이 오랫동안 세계 바둑계의 변방으로 추락했던 배경 또한 동일한 맥락에서 찾아갔다. “한국이나 중국처럼 국가적인 차원에서 젊은 기사들을 육성해야 했는데, 일본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일본 바둑이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으면서 경쟁국들에 밀려왔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꿈나무 육성 단계부터 시행돼야 할 근본적인 혁신 부재가 20년 가까이 일본 바둑을 몰락시켰던 주요한 이유였단 평가였다.
그는 바둑계에 등장한 인공지능(AI)이 일본엔 행운이었다고 했다. “이치리키 료 선수나 우에노 아사미 기사는 AI와 함께 상당히 많은 연구를 하고 있어요. 덕분에 두 선수의 약점으로 지목됐던 수읽기와 끝내기 부문이 크게 보완됐습니다.” 멀찌감치 앞서갔던 한국과 중국 추격에 AI가 일본 바둑계를 끌어올린 추진 동력으로 장착됐단 설명이다. 인간계보다 월등한 기력의 AI는 세계 바둑계에 상향 평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서 그는 일본 바둑의 진화를 위해 정신력(멘털) 강화에 힘써야 한단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이치리키 료 9단도 약점으로 꼽혔던 ‘멘털’ 훈련을 통해 강해졌거든요. 일본 선수들에겐 반상 전투에서 반드시 필요한 ‘투지’를 보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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