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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쓰러지던 가수들이 여성의 몸에 대해 말하자...“용기내줘 고맙다”

입력
2025.01.15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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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 '바디멘터리'에 이어지는 응원
김완선·소유·한승연·전효성·화사의 고백
한국서 가장 외모 평가 많이 받는 여성의
목소리로 전한 몸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
"비현실적 기준으로 자기 괴롭히지 말길"

SBS 스페셜 '바디멘터리'에 출연한 가수 화사. SBS 캡처

SBS 스페셜 '바디멘터리'에 출연한 가수 화사. SBS 캡처

#. 그룹 마마무의 화사(29)는 과거 다이어트 중 너무나 먹고 싶던 흑임자 인절미 한 개를 숨어서 먹었다. 하지만 곧 죄책감과 분노에 휩싸여 울면서 토했고, 이후 거식증과 우울증까지 앓았다.

#. 카라 출신 한승연(36)은 다이어트로 귀에 살이 빠져 귀 안의 압력이 조절되지 않는 질환(이관개방증)에 걸렸다. 의사의 처방은 살을 7㎏ 찌우라는 것이었다.

지난달 29일 방송된 'SBS 스페셜 - 바디멘터리'에서 여성 가수들이 어렵게 꺼낸 이야기다. 김완선, 소유, 한승연, 전효성, 화사 등 5명의 여성 가수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의 비뚤어진 시선으로 인해 자신들이 겪었던 섭식장애 등을 고백했다. 시청자들은 힘든 경험을 털어놓은 가수들과,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연예인의 몸무게를 측정하며 여성 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퍼뜨렸던 지상파 방송사의 변화한 시선에 응원을 보냈다.

SBS 스페셜 '바디멘터리'에 출연한 여성 가수들. SBS 제공

SBS 스페셜 '바디멘터리'에 출연한 여성 가수들. SBS 제공


유튜브에 올라온 SBS 스페셜 '바디멘터리' 영상에 달린 시청자들의 응원 댓글. 유튜브 캡처

유튜브에 올라온 SBS 스페셜 '바디멘터리' 영상에 달린 시청자들의 응원 댓글. 유튜브 캡처


여성 가수들이 지나온 황폐한 시간

여성 가수들은 연습생 때부터 매일 몸무게를 측정‘당한다’. 키에서 몸무게를 뺐을 때 120이 돼야 한다는 ‘키빼몸 120’ 공식에 맞춰 감량한다. 키가 165cm이면 목표 체중은 45kg. 여성 가수 대부분이 데뷔 전엔 “살 못 빼면 데뷔 못 한다”는 소속사의 압박, 데뷔 후엔 “살쪘다”는 악성 댓글 지옥을 겪는다. 하지만 이들이 강요받는 가혹한 다이어트가 제대로 공론화된 적은 없었다.

여성 가수들은 자신들이 지나온 황폐한 시간을 털어놨다. 씨스타 출신 소유(33)는 다이어트로 길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서도 "수액을 맞으면 몸무게가 늘 것 같다"는 걱정부터 했다. 뒤이어 공황장애에 걸린 그는 무대에서 웃지 못했고 '태도 논란'에 시달렸다. 감정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필수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하면 우울증 등에도 쉽게 노출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디어와 대중이 여성 연예인들의 몸을 통제한 역사는 길다. 데뷔 39년 차 김완선(55)은 가수 활동 당시 한 번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적이 없어 다른 연예인들이 "김완선 밥 먹는 거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였다. 시크릿 출신 전효성(35)은 "늘 폭식과 요요(체중 감량 후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는 것), 부끄러움, 자기 환멸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했다. 여성 연예인에게 비현실적으로 날씬한 몸을 강요하고, 살이 찌면 “자기 관리를 못 한다”는 낙인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탓이다. 오찬호 작가는 다큐에서 “체중으로 '저 사람은 자기 관리를 잘했다'고 감히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게으른 생각”이라고 일갈했다.

SBS 스페셜 '바디멘터리'에 출연한 가수 김완선. SBS 캡처

SBS 스페셜 '바디멘터리'에 출연한 가수 김완선. SBS 캡처


"비현실적 기준으로 자기 괴롭히지 않길"

정재원 SBS 시사교양PD는 거식증·폭식증을 겪는 20대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이 다큐를 10개월간 기획·제작했다. 전문가 조언으로 구성된 다큐 대신 여성 가수들의 목소리로 채운 다큐를 만든 건 “우리 사회에서 외모 평가를 가장 많이 받는 여성들,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 봤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였다. 당초 목표는 세대별 여성 가수 섭외였지만 데뷔 5년 안팎의 ‘현역’ 아이돌 섭외는 실패했다. ‘4세대 아이돌’(2020년 이후 데뷔)이 이전 가수들보다도 더 말랐다는 우려가 많지만, 여전히 다이어트 압박에 시달리는 신인이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웠던 탓이다.

정 PD는 잘못된 미의 기준 때문에 여성들이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외모 평가 등 잘못된 사회 구조를 알려주기만 해도 자신을 탓하지 않게 돼 고통이 완화되고 치료에 대한 자기 효능감이 높아진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있다”며 “다큐를 통해 미를 둘러싼 잘못된 사회 구조를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청자들도 다큐를 반겼다. 이들은 유튜브에 올라온 다큐에 "용기 내서 이 다큐멘터리에 나온 것 같아서 출연한 연예인들이 다 멋있어 보인다”, "목소리 내줘서 고맙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아져서 몸에 대한 평가를 불편해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댓글을 달며 응원했다.

SBS 스페셜 '바디멘터리' 영상에 달린 유튜브 댓글. 유튜브 캡처

SBS 스페셜 '바디멘터리' 영상에 달린 유튜브 댓글. 유튜브 캡처


지난달 29일 방송된 SBS 스페셜 '바디멘터리. SBS 제공

지난달 29일 방송된 SBS 스페셜 '바디멘터리. SBS 제공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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