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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만 파면 유물' 경주, 2025 APEC 만찬장 선정에 속앓이

입력
2025.01.15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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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만찬장으로 유적지 희망했으나
문화재 출토 가능성에 국가유산청 난색
주낙영 경주시장 SNS에 불만 표출도
실무기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잠정 결정
박물관 주변 왕족 살았던 옛 신라 중심지
국가유산청 "심의 거쳐 가능 여부 판단"

유인촌 문화체육부장관이 2025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 점검 차 지난 7일 경주를 방문해 주낙영 경주시장 등과 동궁 및 월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주낙영 시장 페이스북 캡처

유인촌 문화체육부장관이 2025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 점검 차 지난 7일 경주를 방문해 주낙영 경주시장 등과 동궁 및 월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주낙영 시장 페이스북 캡처

올 10월 말부터 11월 초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북 경주시가 만찬장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경주시는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는 정상회의 때 전통문화와 경주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는 전략으로 첨성대, 동궁과 월지 같은 지역 대표 유적지를 희망했지만 국가유산청이 문화재 출토 가능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립경주박물관 마당을 만찬장으로 잠정 결론 내렸으나, 이곳 역시 과거 다량의 신라시대 유물이 출토돼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4일 경북도와 경주시에 따르면, APEC 관련 실무 기관 회의에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을 APEC 정상회의 공식 만찬 장소로 결정했다.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을 본 떠 만든 두 탑이 자리한 박물관 중앙 마당 2,000㎡에 약 80억 원을 들여 지상 1층 규모로 만찬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만찬장은 연회장, 공연무대 등 행사장 면적 1,200㎡와 조리 공간 등 부대 공간 800㎡로 구성된다. 만찬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각국 정상과 글로벌 기업 대표(CEO), 수행원 등 700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북 경주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전경. 경주=연합뉴스

경북 경주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전경. 경주=연합뉴스

당초 경주시는 정상들의 만찬장으로 첨성대와 대릉원 등이 있는 동부사적지 일대를 고집했다. 동부사적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역사유적지구의 동부 지역에 해당되며 동궁과 월지, 월성, 계림 등 신라 사적이 대거 몰려 있어 천년 고도의 역사와 전통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경주시는 지난 7, 8일 APEC 준비 상황 점검 차 경주를 찾은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 강인선 외교부 2차관에게 동부사적지 일대를 만찬장 후보지로 적극 추천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배석한 국가유산청 관계자가 땅 속에 중요한 유구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면서 묘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지난 8일 오후 유인촌 장관이 돌아가자마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주시는) 역사문화도시인만큼 '동궁과 월지' 같은 우리의 문화유적을 배경으로 만찬장을 꾸미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국가유산청의 반대가 완강해 극복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주낙영 경북 경주시장이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주낙영 시장 페이스북 캡처

주낙영 경북 경주시장이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주낙영 시장 페이스북 캡처

국립경주박물관이 만찬장으로 잠정 결정됐지만 최종 확정은 미지수다. 박물관이 있는 인왕동 일대는 신라 귀족과 왕족들이 살았던 왕경 중심지로, 박물관 확장 공사 때도 신라시대 토기와 장식품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도 "경주박물관 일대는 통일신라 도로와 생활 유적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다"며 "만찬장으로 허가 신청이 들어오면 고도보존육성 중앙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문화재 출토 가능성을 검토한 뒤 설치 가능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경주시 APEC 준비지원단 관계자는 "경주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땅만 파면 유물이 쏟아져 어디라도 문화재에 발목이 잡힐 수 밖에 없다"며 "박물관은 중요한 유물은 없는 것으로 파악돼 만찬장 시설물을 설치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경주=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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