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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위협하는 껍데기는 가라" 디자이너 63인의 외침

입력
2025.01.16 16:00
수정
2025.01.19 1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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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실천' 권준호 디자이너 기획
4·19부터 비상계엄까지...시국선언
"디자인은 현실 담아야... 발언할 것"

권준호 디자이너의 포스터. 일상의실천 제공

권준호 디자이너의 포스터. 일상의실천 제공

1960년 4·19 민주화 운동부터 2024년 12·3 불법계엄까지 역사의 분기점마다 나온 시국선언문이 포스터로 살아났다. 63명의 디자이너가 모여 65년간 세상에 나온 선언문을 시각디자인으로 탈바꿈시킨 일명 '시대정신'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권준호(44) 디자이너는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시민의 한 사람인 디자이너가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 자문자답한 결과물"이라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시민이 어떤 목소리를 내왔는지, 디자이너는 그 시대정신을 어떻게 표상할 수 있을지를 보여줄 수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권준호 디자이너. 일상의실천 제공

권준호 디자이너. 일상의실천 제공


"디자이너는 디자인으로 말한다"

시대정신 프로젝트 포스터. 일상의실천 제공

시대정신 프로젝트 포스터. 일상의실천 제공

권 디자이너는 김경철·김어진씨와 함께 12년째 디자인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프로젝트,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아카이브, 세월호 참사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시 등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디자인 작업을 선보였다. "디자인을 단순히 아름답게 꾸미는 일로 치부하면 디자이너는 결국 자본과 권력의 시녀가 될 수밖에 없어요. 디자인이 시대를 대변하는 도구가 될 수 없을까 늘 자문해왔죠."

12·3 불법계엄 직후 '시대정신' 프로젝트를 발빠르게 기획한 것도 그 연장이다. 국가적 위기에 한 사람의 목소리보다 집단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권 디자이너는 디자이너 80여 명에게 메일을 보내 참여를 독려했고, 63명의 디자이너로부터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답을 받았다. "신진 디자이너부터 유명 디자이너까지 다 모였어요. 작업 특성상 모이기가 쉽지 않은데 참여율을 보고 솔직히 놀랐어요. 그만큼 사안이 심각했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느끼는 불만이 컸던 거죠."

"빛바랜 시국선언? 지금도 유효"

안병학 디자이너의 포스터. 일상의실천 제공

안병학 디자이너의 포스터. 일상의실천 제공

작업은 한 달 동안 속전속결로 마무리됐다. 일상의실천 측이 현대사를 대표하는 시국선언문 220점을 선정해 주제어와 함께 배포하면 각 디자이너가 그중 하나를 선택해 포스터로 제작하고 각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공개했다. 불법계엄 사태 직전 대학 교수들이 울분을 쏟아낸 '껍데기는 가라' 포스터나 사제들의 탄식과 기도를 담은 '어째서 사람이 그 모양인가' 포스터 등 현실과 호흡하고자 고심한 흔적이 묻어난다. 권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텍스트(글)를 시각화하는 사람"이라며 "63개 포스터를 되짚다보면 민주주의 역사가 함축적으로 지나가는데 시대를 초월하는 메시지가 읽혀 놀랍다"고 말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4일에는 모든 작업을 한곳에 모아 주요 역사적 사건과 함께 조망할 수 있는 '시대정신' 웹사이트를 열고, 다음 달 24일부터 한 달 동안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갤러리 '리얼레이션 스페이스'에서 동명의 전시를 선보인다. 권 디자이너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도 하나의 운동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것 같다"며 "문제를 발견하고 창조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디자이너가 많아지면 사회에도 이득"이라고 강조했다.

임민재 디자이너의 포스터. 일상의실천 제공

임민재 디자이너의 포스터. 일상의실천 제공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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