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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없는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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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체포과정은 불법계엄 못지않게 충격적이다. 관저에 틀어박혀 비굴한 참호전을 치렀다. 인간 장벽을 겹겹이 세워 그 뒤에 숨었다. 여론을 찬반으로 쪼개 서로 물고 뜯도록 내몰며 영장 집행을 거부했다. 법치를 외치면서 법을 저버린 기상천외한 상황에 국제사회의 조롱이 쏟아져도 꿈쩍하지 않았다.
진즉 실망했지만 남은 밑천이 고작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극렬 지지층을 제외하면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국민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 국회 탄핵소추안 통과로 직무가 정지될 때도, 무모하게 버티다 공수처로 압송될 때도 윤 대통령의 마지막 다짐은 한결같았다. 뭐 그리 맺힌 게 많은지 매번 싸움을 부추겼다. 그가 구속되자 급기야 서부지법 폭력사태로 번졌다.
폭풍 같던 시간이 지나갔다. 일단 포연이 멎었다. 사법당국의 판단을 차분하게 지켜볼 때다. 계엄과 탄핵의 혼돈을 촉발한 윤 대통령이 무대 뒤로 빠졌다. 이제 스포트라이트가 온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추고 있다. 지난 대선부터 국민을 옭아맸던 극단의 대립 구도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는 열망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그런데 윤 대통령을 떼어놨더니 이 대표가 달리 보였다. 둘을 함께 비교할 때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같은 회색이라도 바탕이 밝을 때보다 어두울 때 훨씬 밝게 보이는 이치다. 질타를 받던 윤 대통령이라는 배경이 사라지자 이 대표의 단점이 도드라졌다. 야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탄핵 정국인데도 이 대표를 지지하는 쪽보다 반감을 가진 쪽이 더 강렬하게 뭉쳤다. 민주당이 무혈입성한 8년 전 박근혜 탄핵 때와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조기 대선 가능성에 유권자의 기대치가 확 올라갔다. 선거는 상대평가다. 윤 대통령은 불과 0.73%포인트 득표율 차로 대권을 잡았다. 하지만 여권 잠룡 누구에게도 쏠림이 없다 보니 아직은 이 대표가 독주하는 절대평가나 마찬가지다. 시험이 전보다 쉬워 보일 만하다. 문제는 난이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인 줄 알았는데 이러다간 국가고시가 될 판이다. 승부를 가를 중도층 표심은 순순히 이 대표에게 마음을 내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재명은.”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곧잘 나오는 말이다. 정치에 관심이 많든 적든, 성향이 보수든 진보든 별 차이가 없다. 예전에는 대화가 윤 대통령으로 시작해 “그래서 김건희는”으로 끝나곤 했다. 반면 현실이 워낙 뒤죽박죽이라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민심은 예측 가능한 미래를 갈망하다 보니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부터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피해자라고 궤변을 늘어놓다가 힘에 부쳐 관저 밖으로 빠져나왔다. 반대로 이 대표는 벌써부터 점령군 행세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진의야 어떻든 카카오톡이 검열 대상이냐며 어린 학생들까지 볼멘소리에 가세하는 건 위험신호다. 거대 야당 대표가 파출소장을 자처하는 듯한 기이한 장면은 불안 심리를 자극할 뿐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소위 적대적 공생관계로 불렸다. 남 탓하는 내로남불로 비호감 경쟁을 벌이며 대결의 정치에 갇혔다. 여전한 사법리스크에 발목 잡힌 채로 국정운영의 다음 순번을 노리는 이 대표가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다시 도돌이표다. 그렇다고 의회권력을 등에 업고 몰아치는 방식으론 어림없다. 자만하고도 이긴 적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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