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트럼프와 해리스의 ‘건곤일척’ 대결의 흐름을 미국 내부의 고유한 시각과 키워드로 점검한다.
<22>트럼프 2.0 시대의 미국 언론
권력 눈치보며 힘잃은 미 언론
백악관 뉴스룸에도 변화 예상
NYT 막강 영향력, 여전할 듯
미국 수도 워싱턴의 최고 권력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란은 늘 있어 왔다. 미국 대통령일까, 아니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일까. 그런데 1987년 당시 워싱턴포스트(WP)의 사주이자 발행인인 캐서린 그레이엄(1917~2001)의 70번째 생일 파티에서 실제 권력자가 누군지 드러났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폴 볼커 연준 의장 모두 참석해 이 언론사 사주의 생일을 축하했다. 당시 그녀는 그 이전 30년 동안 미국 정치인에게는 경외의 대상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워싱턴 최고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레이엄은 공식 취임식 이전, 신임 대통령들을 워싱턴 사교계에 소개하는 행사를 도맡아 치를 수 있었다.
147년 역사의 WP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당시만 해도, 이 신문사의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미 국방부조차 베트남전에 비판적이라는 '국방성 비밀문서' 특종(1971년)과 리처드 닉슨의 불명예 사임을 이끌어낸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 등이 이어지면서 영향력과 권위가 확립됐다. 캐서린이 이끌던 기간 WP의 매출은 20배 성장했으며, 이를 통해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함께 미국의 주요 신문으로 자리 잡았다.
NYT와 WSJ도 각각 설츠버거(Sulzberger)와 뱅크로프트(Bancroft) 가문 소유였다. WP와 함께 이들 3개 신문은 20세기 미국 언론을 주도했다. 언론·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고결한 역할을 자임했다. 하지만 뱅크로프트 가문은 2007년 WSJ 지분을 폭스 루퍼트 머독 회장에게 팔았고, 그레이엄 가문은 2013년 WP를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에게 매각했다.
1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베이조스 체제의 WP는 순항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말에는 구독자가 300만 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대통령하에서는 2023년 7,700만 달러, 2024년 1억 달러 등 큰 적자를 기록했다. 베이조스는 지난해 WP가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지지 선언을 가로막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트럼프 재선 이후 그의 우주탐사업체 블루 오리진의 정부 계약 보호 의도 때문으로 해석됐다. WSJ도 93세의 머독이 미디어 제국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4명의 자녀들이 갈등을 겪고 있어 불확실한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의 많은 언론은 트럼프의 첫 임기 동안 발생한 '이상 현상' 덕분에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신문 판매 수입 감소에도 불구, 그를 상회하는 수준의 디지털 구독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기 트럼프 행정권에서는 뉴스 소비자들의 관심이 예전만큼 높지 않을 것이다. 2024년 대선도 이를 보여준다. 뉴스 소비자들이 양분되면서, 보수적 시각의 소비자와 진보적인 시각을 따르는 사람들이 각각 다른 두 개의 집단을 구성하게 됐다. 미국 저널리스트 샐레나 지토(Salena Zito)는 트럼프와 미 언론의 관계를 "언론은 트럼프의 말을 그대로 소개할 뿐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면 지지자들은 말뜻 너머의 의미에 집중한다"고 분석했다. 필자는 이 경향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백악관 기자실의 좌석배치도는 미디어 권력의 지평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백악관 기자실에는 49석이 배정되는데 7개 첫 줄은 미국 4대 네트워크(NBC, ABC, CBS, Fox)와 두 개의 통신사(Associated Press와 Reuters), CNN이 차지하고 있다. WP, NYT, WSJ는 둘째 줄을 배정받아 왔는데, 2기 트럼프 정권은 팟캐스터, 인터넷 인플루언서 및 트럼프에 우호적인 신생 미디어에 개방할 태세다. 트럼프 맏아들은 공공연히 NYT를 '민주당의 마케팅 부서'라고 공격하며, 일론 머스크의 'X 플랫폼'과 트럼프의 '트루스소셜'도 백악관 기자실 입성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자녀가 '성공한 부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WP 전성기를 이끈 캐서린은 그래서 예외다. 캐서린의 아버지는 대공황 초기 연준 의장이었고 세계은행 첫 번째 총재를 지냈다. 여성들의 활약이 미약했던 시기에 캐서린은 부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건 물론 그를 능가했다. 현재는 NYT를 운영하는 설츠버거 가문만이 남아 있으며, NYT는 여전히 미국 최고 신문의 위상을 갖추고 있다. 트럼프도 '그레이 레이디'(Grey Lady)라고 불리는 이 신문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이 신문을 공격할수록 NYT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2기 트럼프의 백악관은 이전보다 전문적이고 질서정연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NYT에 대한 정보 유출은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NYT의 위세는 여전할 것이다. NYT가 132개의 퓰리처상을 보유 중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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