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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관계 변수는 ‘트럼프의 미국’ 아니라 한국... 트럼프 1순위는 국경 강화”

입력
2025.01.23 05:30
수정
2025.01.23 09:17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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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외교사 석학 토머스 슈워츠 교수 인터뷰]
“트럼프, ‘미국 이익’ 규정... 즉흥적 결정”
“미국 내 마약 사망 심각… 차단 급선무”
“중동 평화 중재에 욕심, 우크라는 난제”
“한국, 트럼프 위기 통과하는 미국 보라”

토머스 슈워츠 미국 밴더빌트대 교수는 1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2·3 불법 계엄 사태 뒤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되고 진보·보수 진영 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한국에 “상대편과의 공통점을 찾아 내려는 각 세력 리더십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밴더빌트대 홈페이지

토머스 슈워츠 미국 밴더빌트대 교수는 1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2·3 불법 계엄 사태 뒤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되고 진보·보수 진영 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한국에 “상대편과의 공통점을 찾아 내려는 각 세력 리더십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밴더빌트대 홈페이지

미국 외교사(史) 석학인 토머스 슈워츠(71) 밴더빌트대 교수가 도널드 트럼프 2기 미 행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한국이나 북한이 아니라, 당분간 중남미에 집중될 것으로 내다봤다. 외교 정책 목표가 이념이나 명분 대신 ‘이익’으로 설정된 데다, ‘미국 이익’의 규정자도 즉흥성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인 만큼 일관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게 슈워츠 교수 분석이다.

슈워츠 교수는 18일(현지시간) 한국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마약 과다 복용으로 숨지는 사람이 미국에 너무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마약 유입 차단이 급선무인 데다 중남미 이민자로 인해 미국인 일자리가 줄고 범죄가 늘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보니 트럼프의 임기 초반 주력 사업은 서반구(남북미) 국경 강화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하 한미 관계의 변수는 미국보다 한국이라고 진단했다. 슈워츠 교수에 따르면 대(對)중국 견제 부담을 동맹국이 분담하기를 바라는 트럼프가 한국에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리라는 것은 상수다. 그러나 당장 밀어붙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자국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분명한 것은 12·3 불법 계엄 사태 이후 리더십 공백을 메울 한국 정권의 향후 대응이다. 슈워츠 교수는 “외교를 좌우하는 것은 국내 정치”라고 말했다.

2020년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전기를 집필한 슈워츠 교수는 미국외교사학회(SHAFR) 회장과 미 국무부 역사자문위원 등을 지낸 역사학자다. 하버드대를 거쳐 1990년부터 밴더빌트대에 재직 중이다. 미국 외교사, 국제 관계, 미국 정치 등이 전문 분야다.

자아도취 포퓰리스트

-트럼프가 돌아왔다. ‘역사적 귀환’이라고들 한다.

“연임 실패 후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둘뿐이다. 지금껏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유일했는데,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트럼프 당선은 그렇게 예외적인 사건이다. 믿기 힘든 재기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은 트럼프가 2021년 1월 6일 했던 짓(의사당 폭동 선동)을 목격했다. 몰염치한 시도였고 인기는 폭락했다. 트럼프의 정치 생명이 끝났다고 여긴 미국인도 많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민주당 조 바이든 행정부의 여러 실책이 겹쳤다. 최대 실수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간과다. 1970년대 제럴드 포드(공화), 지미 카터(민주)의 잇단 재선 실패도 물가 때문이었다. 인플레이션은 실업이나 불황보다 영향 범위가 넓다. 아프가니스탄 철군(2021년)도 바이든 인기에 상처를 입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결정했지만 철군 과정에서 미국인 13명이 희생됐고 졸속 논란이 빚어졌다.) 유권자가 미국의 굴욕으로 받아들였다.”

트럼프를 만만하게 본 것도 슈워츠 교수가 꼽은 패인의 하나다. 민주당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초기 트럼프 행정부 난맥상과 1·6 사태 여파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나머지 트럼프 1기 당시 저물가, 경제 성장, ‘강한 미국’ 자부심을 과소평가했고, 트럼프에게 여러 소송을 걸어 그를 희생양으로 띄워 줬다는 게 그의 평가다. 슈워츠 교수는 “트럼프가 가장 쉬운 상대라고 민주당은 봤지만 오산이었다”고 지적했다.

-2010년대 중반 트럼프 등장 뒤 ‘트럼피즘’(트럼프주의)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민주당은 트럼프를 강경 보수파로 분류했다. 임신중지(낙태) 반대 이력이나 부자 감세 공약 등을 부각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신념이나 이념을 고수하는 인물이 아니다. 정책 변경에 유연하다. 인기를 좇는 나르시시스트(자아도취자)다. 언제든 전향할 수 있다. 유명한 TV 리얼리티쇼 진행자 출신인 그의 개인 특성에 의해 추동되는 ‘유명인 정치(celebrity politics)’가 트럼피즘의 실체 같다.”

미국 이익을 누가 정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미 워싱턴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연설하고 있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그는 전날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미 워싱턴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연설하고 있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그는 전날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는 고립주의로 해석돼 왔다. 그러나 영토팽창주의의 발로인 것 같은 발언을 최근 그가 거듭했다. 덴마크령 그린란드 합병 추진 시사가 대표적이다.

“동맹국(덴마크) 대상 군사력 사용 가능성 시사는 생각하기 전에 말하는 트럼프의 나쁜 습성이 빚은 실수인 듯하다. 국가 안보와 (중국 등 적성국과의) 북극 경쟁은 미국이 신경 쓰는 의제다. 트럼프 행정부 외교 정책 목표는 기본적으로 이익이다. 그런데 미국 이익을 규정하는 사람이 트럼프다. 그의 자의성까지 변수가 된다. 일관성을 기대하기 힘든 여건이다.”

2기 트럼프 초기의 외교 정책 초점은 중남미에 맞춰지리라는 게 슈워츠 교수 예상이다. 트럼프의 최대 관심사가 마약 과용에 따른 미국인 사망자 규모인데(2023년 기준 11만 명), 그 마약이 주로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에서 국경을 넘어오기 때문이다. 국내 문제가 외교 정책을 좌우하는 셈이다. 이민자 차단·추방 정책의 구실이 된 범죄도 국내 문제다.

-중동과 유럽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금세 끝낼 수 있다는 게 트럼프의 장담이었다.

“내 생각에 트럼프는 2020년 본인 중재로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바레인·모로코 간 국교 정상화)의 확대에 정말 관심이 있다. 중동은 당장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곳이다. 문제 해결까지 넘볼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을 끌어들이는 게 2기 중동 평화 구상의 시작이다. 문제는 핵 개발을 시도 중인 이란이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분쟁 중인 팔레스타인(하마스)·레바논(헤즈볼라) 무장 정파의 배후다.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 타격 동의를 미국에 구하려고 할 수 있다. 아마 트럼프는 말릴 것이다.”

3년이 돼 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미래에 대해선 슈워츠 교수도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트럼프가 공언했던 취임 전 종전은 물 건너갔고, 트럼프가 줄곧 호감을 보여 온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까다로운 거래를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욕심을 부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재앙에 가까운 평화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머스크 vs 정통 ‘마가’

-2기 트럼프 측근 그룹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이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억만장자인 일론 머스크다. 기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트럼프 선거 구호)’ 지지 세력과의 불화 조짐이 보인다. 전문직 비자를 둘러싼 내분이 그렇다.

“거대 기술기업 CEO인 머스크는 전 세계 인재들이 자기 회사를 위해 일하고 미국의 혁신도 돕기를 바란다. 반면 (트럼프 1기 백악관 수석전략가 출신) 스티브 배넌이나 다른 마가 인사들은 이민이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여긴다. (백인 나라) 미국이 다양해지는 것도 그들은 원하지 않는다. 과소평가된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위험 요인이 이렇게 이질적인 신념 체계에서 비롯된 내분 가능성이다. 뒤죽박죽된 정책 탓에 임기 전반부 국정 추진 속도가 감소하고, 성과도 축소될 수 있다.”

두 번째 집권인 트럼프 대통령의 재출마는 불가능하다. 4년으로 끝이다. 슈워츠 교수는 “첫 2년간 극적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202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 지위를 잃을 것”이라며 “조기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일보와 18일 화상 인터뷰 중인 토머스 슈워츠 미국 밴더빌트대 교수. 화면 캡처

한국일보와 18일 화상 인터뷰 중인 토머스 슈워츠 미국 밴더빌트대 교수. 화면 캡처


-고율 관세 공약은 지켜질까.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그가 인플레이션을 누를 것이라는 미국인들의 소망 덕이었다. 그러나 관세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트럼프의 고집이 중간선거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는 실용적인 인물이다. 두고 보자.”

-대규모 불법 체류자 추방 약속은.

“정권 초기에 분명 대대적 몰이가 있겠지만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눈물범벅으로 쫓겨나는 가족의 모습은 홍보에 부정적이다. 대형 망치로 파리를 때리는 격이다. 미국으로 도피하려는 범죄자들에게 겁을 줬다 싶으면 그만할 것이다. 지속적 인재 유입은 미국 경제의 강점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반(反)이민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해 왔다. 합법 이민을 더 안전하게 만들고 불법 이민은 엄격하게 단속한 이가 본인이라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공통점 찾으려는 노력을”

-지금 한국은 대통령이 내란 주도 혐의로 구속돼 있다. 리더십 공백이 불가피하다. 보혁 분열도 심화할 조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2기 시대를 맞는다. 조언을 부탁한다.

“트럼프 시대가 준 교훈이 있다면 어느 쪽에 속했든 한국인들이 상대편을 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차이보다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한국인들을 나누는 것보다 묶는 게 더 많을 것이다. 공유 가치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양측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슈워츠 교수는 “미국을 보라”고 했다. “2016, 2017년에 미국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사람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워싱턴에선 엄청난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훨씬 더 차분하다. 왜 그럴까.” 그는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낙관이 요구되는 시기가 있는데 미국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그때가 지금이라는 게 슈워츠 교수 생각이다. “역사는 불안한 시대를 사는 우리를 안심하게 한다. 몇 차례 핵전쟁 위기를 넘기고 인류는 살아남았다. 한국은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사회, 대단한 나라를 만들었다. 미국은 트럼프보다 더 오래 존속할 수 있다. 한국도 그렇다. 아무리 나쁜 지도자라도 한국보다 오래 살 수는 없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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