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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날 공개석상서 내부 뼈 때린 중국바둑협회 주석…왜?

입력
2025.01.23 04:30

창하오 회장, ‘2024갑조리그’ 폐막식서 쓴소리
뚜렷한 차세대 주자 부재 문제 부각시켜
용병 신진서 15전 전승…중국 선수 각성 촉구
시진핑 국가주석과 각별한 창하오 회장 주목
위기에 처한 K바둑계도 귀담아 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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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렸던 ‘2024 중국갑조리그’ 폐막식에 참석한 창하오(49) 중국바둑협회 주석(회장)은 “최근 2년 연속 18세 미만의 기사가 50% 이상의 승률을 달성하지 못하면서 수상자를 찾지 못한 갑조리그 신인상에 주목해야 된다”라며 “쑤보얼항저우팀의 이번 2024시즌 우승엔 15전 전승을 기록한 한국의 신진서 9단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는데, 중국 바둑계 입장에서 보면 자랑스러워할 만한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중국위기(圍棋)협회 제공

지난 16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렸던 ‘2024 중국갑조리그’ 폐막식에 참석한 창하오(49) 중국바둑협회 주석(회장)은 “최근 2년 연속 18세 미만의 기사가 50% 이상의 승률을 달성하지 못하면서 수상자를 찾지 못한 갑조리그 신인상에 주목해야 된다”라며 “쑤보얼항저우팀의 이번 2024시즌 우승엔 15전 전승을 기록한 한국의 신진서 9단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는데, 중국 바둑계 입장에서 보면 자랑스러워할 만한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중국위기(圍棋)협회 제공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상태입니다.”

질책의 강도가 상당했다. 평소 조용하고 온화했던 그의 성격을 감안하면 직설적으로 터져 나온 이날 지적은 낯설게만 전해졌다. 잔칫날 공개석상에서 불거진 질타였던 탓에 좌중들에게 다가온 충격파도 더했다. 지난 16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렸던 ‘2024 갑조리그’ 폐막식에 참석한 창하오(49) 중국바둑협회 주석(회장)의 작심 발언에서다. “최근 2년 연속 18세 미만 기사가 50% 이상의 승률을 달성하지 못하면서 수상자를 찾지 못한 갑조리그 신인상에 주목해야 된다”고 직격한 창 회장은 “여기서 따져봐야 될 대목은 미래 인재 육성 부분이다”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바둑 종주국인 중국에서 급부상한 차세대 주자 문제를 더 이상 간과할 순 없단 얘기였다.

지난 1999년 출범한 중국갑조리그는 축구에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야구에선 미국 메이저리그에 비견되는 세계 바둑계 최고 무대다. 바둑 강국인 한국과 일본, 대만 등에서 우수 선수들을 비싼 몸값으로 데려와 중국의 초일류급 선수들과 진검승부 리그를 운영하고 있어서다. 갑조리그 1대국당 10만 위안(약 2,000만 원)이었던 특A급 외국인 선수의 승리 수당이 2024시즌부터 6만 위안(약 1,200만 원)으로 하향 조정됐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 프로바둑리그에 비하면 월등한 수준이다. 갑조리그 우승팀에 할당된 상금(30만 위안·약 5,900만 원) 배분은 덤이다.

지난 16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렸던 ‘2024 중국갑조리그’ 폐막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국갑조리그는 지난 1999년 출범한 가운데 2024시즌엔 16개 팀(팀당 5, 6명 구성)이 참여했다. 중국위기(圍棋)협회 제공

지난 16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렸던 ‘2024 중국갑조리그’ 폐막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국갑조리그는 지난 1999년 출범한 가운데 2024시즌엔 16개 팀(팀당 5, 6명 구성)이 참여했다. 중국위기(圍棋)협회 제공

2024시즌 16개 팀(팀당 5, 6명 구성)이 참여했던 이번 갑조리그 최종 우승팀은 포스트시즌 등을 통해 결정됐다. 갑조리그는 매년 해당 시즌 성적에 따른 승강제를 채택하고 있다. 갑조리그 최하위 2개팀은 을조리그로 강등되고 대신 을조리그 최상위 2개 팀이 갑조리그로 승격된다. 을조리그보다 하위 그룹인 병조리그도 유사한 형태로 돌아가고 있다. 갑조리그가 중국 바둑의 핵심인 이유다.

유년 시절부터 천재바둑기사로 유명했던 창 회장은 지난 1997~99년, 3년 연속 자국 랭킹 1위를 차지하며 중국 바둑계를 평정한 거물이다. 숙명의 라이벌인 이창호(50) 9단 등에게 번번이 막혀 주요 국제 기전에선 ‘준우승 제조기’란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던 창 회장은 부단한 노력으로 3개의 세계 메이저 기전 타이틀(2005년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 2007년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2009년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전’)을 따내기도 했다. 지난 2023년 7월 중국바둑협회 수장에 취임한 그는 ‘바둑광’으로 유명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가까운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시 주석이 자국 내 주요 국제 행사에 참석한 해외 귀빈들에게 반상(盤上) 외교 차원에서 창 회장을 직접 초청해 소개할 정도다.

중국갑조리그는 주최국을 포함해 바둑 강국인 한국과 일본 및 대만 등에서 주요 선수들만 선발, 비싼 몸값을 지불하고 자국 내 상위 랭커들과 진검승부 대진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16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렸던 ‘2024 중국갑조리그’ 폐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위기(圍棋)협회 제공

중국갑조리그는 주최국을 포함해 바둑 강국인 한국과 일본 및 대만 등에서 주요 선수들만 선발, 비싼 몸값을 지불하고 자국 내 상위 랭커들과 진검승부 대진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16일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렸던 ‘2024 중국갑조리그’ 폐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위기(圍棋)협회 제공

이처럼 화려한 이력과 두터운 신망까지 갖춘 창 회장이었기에 이날 갑조리그 폐막식의 돌직구 발언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그는 “(과거) 스웨와 판팅위, 탕웨이싱, 커제, 구쯔하오, 셰얼하오를 포함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왕싱하오나 투샤오위는 모두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갑조리그에 안착했다”며 “(이들을 뽑았을 당시엔) 수상자 선정에 애를 먹었을 만큼 치열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이 행사에선 여러 사람이 신인상을 놓고 경쟁하는 모습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후배들은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더 노력해야 된다”고 채근했다.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중국 바둑계의 현주소를 지적한 것이다.

창 회장은 기존 베테랑 선수들의 분발도 촉구했다. 그는 “쑤보얼항저우팀의 이번 2024시즌 우승 이면엔 15전 전승을 기록한 한국의 신진서 9단이 결정적으로 자리했다”며 “구단 경영이 가져온 쾌거로도 볼 수 있지만 중국 바둑계 입장에서 볼 때엔 자랑스러워할 만한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는 지난해 글로벌 무대에서 거둔 중국의 성적표에 대한 불만으로도 들렸다. 지난해 세계 메이저 기전에서 중국은 딩하오(25) 9단이 ‘삼성화재배’를, 리쉬안하오(30)가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대회’ 우승컵을 각각 가져갔다. 한국에선 신 9단이 ‘LG배 조선일보 기왕전’과 ‘란커배 세계바둑오픈전’에서 우승했고 일본에선 이치리키 료(28) 9단이 ‘응씨배’ 타이틀을 획득했다.

‘2024 중국갑조리그’에 쑤보얼항저우팀의 주장으로 나선 신진서(작은 사진·오른쪽) 9단이 챔피언결정전에서 선전룽화팀의 커제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신 9단은 이 대국에서 중반까지 불리했지만 막판 하변에서 꺼내든 승부수에 힘입어 커제 9단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팀의 우승과 함께 이번 시즌 15전 전승 기록까지 이어갔다. 유튜브 캡처

‘2024 중국갑조리그’에 쑤보얼항저우팀의 주장으로 나선 신진서(작은 사진·오른쪽) 9단이 챔피언결정전에서 선전룽화팀의 커제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신 9단은 이 대국에서 중반까지 불리했지만 막판 하변에서 꺼내든 승부수에 힘입어 커제 9단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팀의 우승과 함께 이번 시즌 15전 전승 기록까지 이어갔다. 유튜브 캡처

그래서였을까. 창 회장은 “2025 갑조리그부턴 중국 선수들에게만 수여해왔던 개인상 선정 규정을 바꾸고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수상 기회를 줄 것이다”라고 파격적인 카드까지 꺼냈다. 20년 동안 지켜왔던 갑조리그 개인상 시상 규정을 전면 수정해 중국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하겠다는 의도였다. 신 9단은 2024 갑조리그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였지만 외국인 선수였기 때문에 최종 수상자 명단에서 빠졌다. 2024시즌 15전 전승을 거둔 신 9단은 2023시즌부터 따지면 갑조리그 18연승을 기록 중이다.

내부 경쟁력 다지기에 올인하고 나선 창 회장의 이런 공격적인 행보와 관련, 비슷한 위기에 처한 국내 바둑계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 바둑계에 정통한 한 중견 프로바둑기사는 “현재 세계 랭킹 1위인 신진서 9단의 뒤를 이어갈 마땅한 후발 주자가 보이지 않는 한국 바둑계의 상황을 고려하면 창하오 회장의 냉정한 현실 인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며 “K바둑계에도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허재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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