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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차례상 단골인 사과·배, 2070년엔 아예 못 올릴 수도

입력
2025.01.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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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배 소매가 전년 대비 40%가량 상승
지난해 추석 늦더위 이어진 탓 생산 감소
점점 사과·배 재배지 줄어 2090년대 0%

설 연휴를 앞둔 23일 부산 부산진구청 어린이집에서 원생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모형 차례상 앞에서 큰절을 하며 명절 문화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 연휴를 앞둔 23일 부산 부산진구청 어린이집에서 원생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모형 차례상 앞에서 큰절을 하며 명절 문화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 앞두고 배 가격이 고공행진이라, 이번에는 차례상에 올릴 개수만 낱개로 사야겠어요."

"설 선물 사려고 과일 가게에 갔는데, 사과·배 값이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선물하기도 힘들어요."

올해 설 명절을 앞두고 자주 들리는 하소연이다. 특히 배 가격은 지난해 전례 없던 폭염과 늦더위 탓에 평소보다 40%가량 뛰었다. 지금 당장도 이상기후 여파로 '금사과·금배'라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들리지만, 2070년대가 되면 지구온난화로 인해 아예 국내 재배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후변화로 신선식품 물가 변동 잦아져"

설 명절을 앞둔 2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설 명절을 앞둔 2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에 따르면 올해 1월 하순 기준 배 평균 소매가격은 10개당 4만6,490원으로 전년 대비 38%, 평년 대비 39% 상승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배 생산량은 전년 대비 2.9% 감소했다. 배는 가을철에 수확해 1년 동안 저장해두고 먹는 과일인데, 지난해 추석 무렵까지 늦더위가 이어져 일소(햇볕에 뎀) 피해가 컸던 탓이다.

다행히 올해 사과값은 1월 하순 기준 10개당 2만6,499원으로 평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봄철 개화기에 냉해, 우박 등 피해가 없어 사과 생산량이 전년(2023년)보다 16.6% 늘었기 때문이다. 작년 설에는 달랐다. 2023년에는 서리 피해에 탄저병까지 겹쳐 사과 생산량이 전년 대비 30% 급감했고, 설 연휴를 앞둔 2024년 2월 초 사과 도매가격은 전년 대비 98.4% 급등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5월 '기상 여건 변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지구온난화로 여름철 기온이 상승하고 이로 인한 집중호우, 가뭄 등 기상 여건이 빈번하게 변화할 뿐만 아니라 변화 강도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며 "신선식품 중심으로 단기적인 물가 불안이 향후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2050년엔 아열대 기후가 국토 절반 넘어

지난 20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한 시민이 제수용 사과를 구매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0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한 시민이 제수용 사과를 구매하고 있다. 뉴스1

25년, 50년 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기후변화로 인해 국내에서 사과·배·포도·복숭아 등 온대성 작물 재배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농촌진흥청이 2022년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반영해 예측한 '6대 과일 재배지 변동' 분석에 따르면,과는 과거 기후조건과 비교하면 해가 갈수록 재배 가능지가 급격하게 줄어들 전망이다. 이는 사과가 비교적 서늘한 기온에서 잘 자라는 '호냉성(好冷性)' 작물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시나리오(SSP5) 적용 시 사과 재배지 변동 예측 지도. 농촌진흥청 제공

기후변화 시나리오(SSP5) 적용 시 사과 재배지 변동 예측 지도. 농촌진흥청 제공

과거 30년(1981~2010년) 동안에는 국토 3분의 2(68.7%)가 사과가 잘 자라는 재배적지 또는 재배가능지였다. 하지만 사과 재배지가 2030년대는 24.8%, 2050년대는 8.4%, 2070년대는 1.1%로 급격하게 쪼그라들며, 2090년대에는 거의 0%에 수렴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현재 사과 품종이나 재배 방식 등이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SSP5 시나리오(높은 화석연료 사용과 무분별한 개발 확대 가정)를 적용했을 경우 나오는 전망치다.

배는 2030년대까지는 총재배지 면적이 증가하다가, 2050년대부터 급격히 감소해 2090년대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고당도 고품질인 배를 키울 재배적지는 2090년대 전 국토의 0.8%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됐다. 복숭아와 포도는 2050년대까지 재배지가 소폭 늘어나다가 이후 감소하겠다.

반면 아열대 기후에 적합한 감귤과 단감은 재배 가능지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SSP5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에는 아열대 기후 면적이 국토 절반(55.9%)을 넘어서는 만큼, 농촌진흥청은 열대·아열대 작물 52종(2020년 기준) 대상으로 적응성 시험도 진행 중이다. 지난 30년간 아열대 기후대는 국토 면적의 6.3% 수준이었다. 수십 년 뒤에는 사과 대신 국내산 애플망고가 제수용 과일로 차례상에 오르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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