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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아이, 말끝마다 "가만있으면 내가 다 알아서 한다"는데... 내버려둬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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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부모도 자랍니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4주에 한 번, 성장통을 겪는 부모들에게 조언과 응원을 전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진우는 3월이면 중학교 2학년이 된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틱 증상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다. 며칠 전엔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90도 각도로 깍듯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 "선생님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시간을 잘 지킬게요"라고 말했다. 원래 오전 9시 30분이 예약시간이었는데 낮 12시가 다 되어 진료실에 도착한 것에 대해서 매우 예의 바르게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 중2 아이들이 이렇게 깍듯하게 인사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고, 오랫동안 본 아이가 예의 바른 아이로 잘 자란 것이 기특하여서 진우 엄마에게 아이를 칭찬했더니, 엄마가 오히려 손사래를 치는 것이다.
"병원에 일찍 가야 한다고 어제부터 계속 얘기했는데 아침에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는 거예요. 이제 중2가 되면 공부할 것도 많아지고, 시험도 계속 볼 텐데 이렇게 자기관리가 안 되니 걱정이 태산 같아요. 미리미리 챙기고 준비하라고 하면 다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짜증을 내요."
사춘기 아이와 실랑이를 하면서 좀 지치고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런데 엄마에게 진우의 학교 생활이나 또래 관계에 대해 물어봤더니 학교나 학원에서는 지각하는 법도 없고 수행평가나 숙제도 잘 챙긴다고 하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성격도 좋고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엄마만 빼고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것 같아요"라고도 했다. 진우가 자기관리를 못한다고 엄마가 느끼는 것은 '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관계' 때문인 것 같았다.
청소년들 중에는 진우처럼 밖에서는 잘 지내고 자기 할 일을 잘 챙기면서도 부모가 하는 말은 안듣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스스로 다 알아서 할 수 있는데 엄마가 잔소리를 하는 게 싫다고 한다. 부모님들은 '항상 알아서 한다고 해놓고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한다. 진우도 그랬다. 오전 7시 30분에 일어나려고 알람을 해놓았는데, 엄마가 오전 7시부터 깨우면서 병원에 늦는다고 짜증내고 바로 안 일어난다고 화를 내니까 기분이 나빠서 더 일어나기 싫었다고 했다. "엄마가 일어나라고 할 때 일어나면 제 의지로 일어난 게 아니라 엄마가 깨워서 일어나는 게 되잖아요. 그게 싫어서 그냥 잤어요. 엄마가 제가 시간 맞춰서 일어날 수 있다고 해도 절대로 안 믿어줘요"라고 진우가 말했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청소년기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급격히 바뀌는 시기이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싶어하고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경험하고 행동하고 싶어한다.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부모의 판단이나 기준, 규칙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가끔은 타당한 대안도 없으면서 부모의 의견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도 한다. "엄마만 가만있으면 내가 다 알아서 할 수 있어요"라며 허세를 부리거나 "엄마 때문에 못 하게 됐다"며 부모 탓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아이에게 스스로 알아서 해보라고 하면 잘 할 때도 있지만, 잘 못할 때도 있다. 아이들 중에는 일상생활을 관리하고 학업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가는 법을 배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아이도 있어 부모를 불안하게 한다.
특히 수행평가와 시험성적이 입시에 반영되는 고등학생이 되면 부모의 불안이 심해진다. 이렇게 해서 생활기록부를 잘 관리할 수 있을까, 자기 할 일을 스스로 챙겨서 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희망하는 대학을 갈 수 있을까, 나중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성인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며 부모의 불안이 증폭된다. 도와주려고 하는 부모의 마음을 무시하는 것이 화도 나고 말 잘 듣고 착하고 귀엽던 어린아이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우리 아이가 일상생활을 관리하고 학업을 챙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아이인지 찬찬히 관찰하거나, 아이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기다리지 못하고, 진우 엄마처럼 아이에게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아이와의 관계가 악화할 수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청소년기에 자녀와의 관계를 망치지 않으면서 아이를 잘 키우려면 부모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 아이의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고 내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자. 사실 오전 7시 30분에 아이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으면 시간이 좀 빠듯했을 수도 있지만, 예약 시간에 거의 맞춰서 왔을 것이다. 오전 7시 기상을 고집하고 아이에게 엄마의 생각을 강요하면서 감정 싸움이 되어서 오히려 더 지연되었을 수도 있다. 청소년 자녀가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며,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발달 단계에 맞는 정상적인 일이다. 부모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는, 학교나 사회에서 부당한 일을 당할 때도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둘째, 실패와 시행착오를 함께 견디자.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배워가는 것이 청소년기이다. 부모가 평생 비서처럼 아이의 일상생활을 대신 관리해줄 수도 없다. 처음으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시도하는 아이가 잘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오히려 청소년기에 시행착오를 많이 해본 아이들이 자기 관리를 더 잘하는 아이로 자랄 수도 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실패를 함께 견디고, 괜찮다고 다시 시도해보자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이다.
셋째, 아이의 행동보다는 그 아래 숨겨진 감정을 보아야 한다. 엄마가 깨울 때 일어나지 않는 진우의 마음속에는 엄마가 자신을 믿고 맡겨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뿐 아니라 엄마가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고 인정해주면 좋겠다는 소망이 숨어있다. 아이들은 항상 부모가 마음속에 숨겨진 감정을 알아봐주기를 바란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이런 진우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엄마도 진우의 행동에 조금 덜 화가 나고 조금 더 기다려줄 수 있을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청소년들을 키우면서 많은 부모님들이 하는 오해가 우리 아이가 지금과 같은 상태로 자라서 어른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끊임없이 자란다. 아이들의 뇌 발달도 20대 초반이 되어야 완성이 되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가는 능력이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능력도 자란다. 아이들을 오래 만나는 의사인 나는 진료실에서 아이들의 그런 능력들이 쑤욱 자라는 순간들을 목격하곤 한다. 또한 아이들이 부모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거나, 부모가 안쓰럽다고 느끼거나, 부모가 자신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감사하는 순간도 별안간에 찾아온다. 그 순간까지는 좀 힘들겠지만, 부모가 자신의 불안과 분노, 상실감을 견디며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가 낯설다. 매사 "몰라요" "싫어요" "귀찮아" "짜증나"만 남발하는 저 아이는 누구일까. 저자는 말한다. 사춘기 아이 본인도 스스로의 몸과 마음의 변화가 낯설다고. 아이에게 필요한 건 '감독과 꾸중'이 아닌 '이해와 격려'라고. 청소년의 뾰족한 말과 행동 아래 숨겨진 감정과 생각을 부모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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