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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마켓'의 변심, 위기의 한국 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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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사안이나 이슈에 대해서 정파적 진영 논리를 지양하며, 건전한 시민 사회가 공유하는 원칙과 상식, 합리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논평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특정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은 업계에 갓 들어선 회사는 위협적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보다 경험이 부족하고 검증된 실력도 없기 때문이다. 하룻강아지들이 시장에서 우스운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자신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시장 이목을 집중시킴을 확인할 때면 선발 기업들의 자신에 대한 믿음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선 자들의 방심은 대개 '우리의 사업 기반은 애송이들의 사소한 움직임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라는 오판에서 시작한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뿐임을 무시하며, 자신들의 기술력과 시장 영향력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은 많은 산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한국도 한때 무모한 도전자였다. 1971년, 기술도 자금도 경험도 없던 현대중공업은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와 울산 앞바다 사진만 들고 은행과 선주를 설득해 조선소도 없이 유조선 주문을 받는 감당하기 쉽지 않을 일을 벌였다. 그러나 3년 후 약속대로 선주에게 배를 인도했고 그로부터 9년 후 이 회사는 건조량 기준 세계 최대 조선사가 되었다. 한때 메모리 업계 리더였던 일본, 미국 기업들은 1983년 삼성이 반도체 시장 참여를 선언했을 때 비웃었지만 그들은 결국 한국 기업들에 밀려 하나씩 도태되고 시장에서 밀려났다. 이런 일들이 저절로 되었을 리는 없다.
그래픽=박구원
그러나 훌륭한 공격수 역할만으로도 박수를 받던 한국은 이제 수비도 잘 해야 하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서 기존 시장에서의 우월한 지위도 유지해야 하는 '두 가지 책무'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벌써 수비에 실패한 경험도 있다. 2001년 중국의 BOE가 TFT-LCD 사업 참가를 발표했을 때 시장의 리더 한국은 BOE의 성공 가능성을 매우 낮다고 보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TFT-LCD 시장의 주도권은 중국에 넘어갔다. 한국은 OLED를 빠르게 사업화하면서 충격을 최소화했지만 이미 중국은 전체 디스플레이 시장의 반 이상을 가져가 버렸다.
자신의 위치가 공격 쪽인지 수비 쪽인지 구별되지 않는 상황에서 시장 선택을 받지 못해 고전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에 역량을 집중했고 그를 위해 비싸지만 많은 전기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삼원계 기술만 개발했다. 당시 최대 쟁점이었던 긴 주행거리를 확보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에너지 밀도가 낮아 쓸모가 없다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그 약점을 보완하는 기술이 중국에서 상용화되고 저렴한 가격까지 장점으로 가세하면서 시장의 중심 기술이 되었다. 한국 기업들은 뒤늦게 LFP 배터리 개발에 착수했지만 시장점유율은 30% 중반에서 20% 미만으로 크게 축소되었다.
예측하기 어려운 주식 시장을 가리키는 개념인 '미스터 마켓'은 사업을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일도 대부분 당초 예상과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기술 우위와 산업 주도권을 유지하는 기업이 되고 싶다면 그들은 시장 문제를 누구보다 빠르게 정형화해내고 그를 해결하는 장단기 기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변덕쟁이 미스터 마켓은 정확한 분석보다 빠른 대응을 선호하며 '해야 하는 일' 대신 '하고 싶은 일'을 앞세우는 사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시장 참가자의 실수에 언제건 매정하게 등을 돌리는 존재이다.
미스터 마켓의 마음을 얻을 기업의 기술적 유연성은 연구개발 부서가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회사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여 사업에서 승리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은 최고경영자(CEO), 즉 최고 리더십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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