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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2000년 핵잠 침몰 때 러 기술 보호 위해 서방 지원 거부”

입력
2025.02.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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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잠수함 승조원 118명 전원 사망 사건
당시 美 대통령 빌 클린턴, 다큐 인터뷰 발언

2000년 7월 빌 클린턴(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 도중 머리를 맞댄 채 대화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0년 7월 빌 클린턴(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 도중 머리를 맞댄 채 대화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0년 8월 러시아 핵잠수함 침몰 사건 발생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의 구조 지원을 거부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자국 핵기술 노출을 우려한 탓에 잠수함 승조원 118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이 해당 발언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신뢰성도 낮지는 않아 보인다.

2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클린턴은 미국 콘텐츠 제작사 ‘히든라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다큐멘터리 ‘쿠르스크: 푸틴을 만든 열흘’에 포함된 언급이었다. 클린턴의 이러한 증언은 처음이다.

문제의 사건은 2000년 8월 12일 노르웨이 바렌츠해에서 일어났다. 훈련 중이던 러시아 북해함대 소속 핵잠 ‘K-141 쿠르스크함’이 어뢰 연쇄 폭발로 침몰했는데, 그 결과 러시아 측 승조원 118명 전원이 사망했다. 클린턴은 이와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푸틴은 우리가 그곳(사고 현장)에 내려간다면 그들(러시아)의 기술을 파악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타임스는 클런턴의 회고에 대해 “푸틴이 (러시아의) 핵 기밀 보호를 의해 118명의 목숨을 희생시켰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사고 발생 뒤 사흘이 지나서야 푸틴은 국제사회의 구조 지원을 마지못해 수용했다. 그 이후에도 러시아 해군은 노르웨이 잠수부들에게 아마추어가 그린 ‘탈출구 스케치’만 제공했고, 영국 해군의 구조 서비스 제공 의사도 뿌리쳤다. 클린턴은 당시 ‘미 해군 잠수함이 모니터링 중 쿠르스크함으로부터 두 차례 폭발음을 들었다’는 보고를 받았고,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지원 결정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는 게 클린턴의 주장이다.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푸틴도 내가 새로운 세계에서 동맹이 되길 바란다는 점을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능하다면 그가 그들(러시아 군인)의 생명을 살리도록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답은 없었고, 사고에 대한 공식 발표도 없었다고 했다. 푸틴은 ‘러시아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입장만 취했으며, 그해 8월 20일 구조대가 뒤늦게 탈출구를 열었을 때 승조원은 모두 숨진 상태였다. 클린턴은 “난 푸틴이 더 개방적이고 연결된 세계로 러시아를 이끌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다고 봤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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