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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도 잘 모르는 '바위너구리'… 사육·판매를 허용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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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너구리. 게티이미지뱅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입니다.
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기르는 동물 종류도 늘어났다. 개, 고양이 외에 파충류나 조류, 슈가글라이더같은 포유류 동물 등이 ‘희귀동물’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지 오래다. 개, 고양이를 번식해 판매하는 번식장이나 펫숍에서의 동물복지도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지만, 그나마 개, 고양이 관련 영업은 동물보호법에 따라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야생동물 종의 상업적 번식과 판매에 대해서는 이때까지 별다른 규정이 없었다. 2022년 12월 ‘야생생물 보호 및 개정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최근 야생동물에 대해서도 영업 기준과 관리 체계가 마련되고 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나 유입주의생물 등 이미 수입과 허가 기준이 어느 정도 존재하던 동물 이외의 모든 야생동물을 ‘지정관리야생동물’로 정하고, 이 중 수입이나 판매가 가능한 종의 목록, 이른바 ‘백색목록’(화이트리스트)을 작성해 유통 가능한 종을 제한하는 제도가 도입된다. 일정 규모 이상 야생동물을 번식, 판매하려는 영업자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난 1월 23일 환경부 주최로 열린 ‘백색목록 및 영업허가 관련 이해관계자 간담회’에서는 화이트리스트 등재 후보종이 공개됐다. 총 897종 중 파충류가 664종으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양서류 209종, 조류 16종, 포유류 8종 순이다.
간담회에서 직접 설명을 들어보니 환경부가 화이트리스트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해외에서는 야생동물의 생산, 판매, 소유에 대한 규칙을 마련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흑색목록’(블랙리스트), 즉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일부 종을 금지하는 제도를 운용하는 추세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위험한 야생동물법(The Dangerous Wild Animals Act 1976)’일 것이다. 이 법은 대형 고양잇과, 영장류, 개를 제외한 갯과, 독성이 있거나 크기가 큰 파충류 등의 동물을 ‘위험한 야생동물’로 정하고 개인의 소유를 금지한다. 이렇게 특정 종만을 정해 금지하고 나머지는 허용하는 제도를 블랙리스트 제도라고 부른다.
블랙리스트는 과거의 경험이나 근거를 바탕으로 사육이 부적합하다는 판단이 이미 명확해진 종만 금지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인류는 자신들이 가진 야생동물의 정보가 그다지 많지 않은데 비해, 야생동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특정 종을 금지할 때에는 이미 피해가 발생한 이후이기 때문에 사후약방문식 정책이라는 한계도 깨달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00년대부터 유럽에서 대안으로 등장한 게 화이트리스트 제도다. 화이트리스트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반려동물로 사육하는 것이 공중보건과 생태학적 측면에서 안전하고 동물복지에 위해가 없다는 과학적 증거가 있는 종만 기를 수 있도록 하고, 그 외의 종은 개인 소유를 금지한다. 어떠한 질병 전파의 위험성이 있는지, 가정 환경에서 사육되면서 동물이 느끼는 불편함의 정도는 어떠한지, 검증된 증거가 불충분하다면 목록에 등재하지 않아 사전예방적 효과가 있다. 즉, 불확실성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지가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가르는 기준이다.
개는 생태학적, 공중보건학적으로 동물과 사람 양쪽에 위해가 없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동물이다. 이런 동물들을 정리해 '키워도 된다'는 목록을 작성하는 게 화이트리스트 제도의 취지다. 게티이미지뱅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입니다.
현재 네덜란드, 벨기에 등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이미 도입한 국가들은 정보가 불확실한 종은 배제하는 것을 중요한 종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벨기에의 경우 포유류 종을 평가하는 원칙으로 ‘가정에서 기르기 쉽고 동물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 ‘인간 건강에 위험이 없을 것’, ‘탈출 시 생태계에 위험이 없을 것’, ‘종의 생물지리학적 정보가 있을 것’, ‘정보가 불충분하거나 상반된 정보가 존재할 경우 (종을) 배제할 것’ 등을 종을 평가하는 5대 원칙으로 사용한다.
반면 한국의 일부 평가기준을 보면 이게 블랙리스트 기준인지 화이트리스트 기준인지 아리송하다. 지금 한국에서 종을 평가한 기준은 크게 ‘안전성’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 둘로 나뉜다. 예컨대 ‘질병 전파 가능성 인수공통감염병 또는 동물감염병에 대한 사례나 기록 등이 있으면’ 위험성이 높다고 평가한다는데, 이는 전형적인 블랙리스트 방식이다. 제도 이름만 화이트리스트고 운영은 블랙리스트처럼 한다면 사전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동물을 가정에서 사육하는 것이 동물의 복지에 미치는 영향이 기준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도 문제다. 다른 국가들은 가정에서 동물이 필요로 하는 생리학적, 행동적 요구를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는지가 평가 기준의 큰 축이다.
한국 환경부 기준은 ‘공간적(적정한 휴식처, 생활공간 등), 영향·환경적(먹이원, 온도 등) 요소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지’를 ’탈출할 가능성’과 묶어 사육 적합성을 평가하도록 했다. 가령 야생동물의 경우 공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종에 따라 정상적인 범주의 행동을 할 수 있는 사육환경 구조를 제공해야 하고, 사회적 동물인 경우에는 적정한 무리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미어캣은 최대 5m까지 땅굴을 파는 습성이 있으며 여러 마리 무리지어 생활한다. 과연 이런 동물이 한국에서 '사육 가능'하다고 분류해 허가를 내릴 수 있는 동물일까? 게티이미지뱅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입니다.
포유류 중 화이트리스트에 오른 미어캣은 2m에서 5m 깊이에 달하는 굴을 파는 습성이 있고, 많게는 30마리까지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이다. 일반 가정에서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아 유기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역시 목록에 오른 슈가글라이더는 무리생활을 하기 때문에 한 개체만 사육 시 동물복지가 현저하게 저하된다는 이유로 네덜란드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었고, 독일과 미국 캘리포니아, 하와이, 알래스카 주도 슈가글라이더의 가정 사육을 금지하고 있다.
바위너구리도 화이트리스트에 올랐는데, 공영동물원에 근무하는 수의사조차 사육해 보지 않은 바위너구리가 어떤 질병에 걸리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정보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어떤 동물인지도 잘 모르는 시민들이 태반일 바위너구리를 ‘번식해 팔아도 되는 동물’로 정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바위너구리는 국내의 동물원 수의사들도 진단 경험이 적어 질병 정보가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화이트리스트에 올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입니다.
야생동물 중 일부 동물 종만 화이트리스트에 올리다 보니 제도의 취지를 잘 살리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화이트리스트란 멸종위기종이냐 아니냐를 떠나 ‘가정에서 기를 수 있는 종’을 지정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포유류 백색목록에는 총 30종이 등재되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개, 고양이, 토끼, 말, 소, 돼지, 양 등 가축화된 동물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설치류 동물이다.
반면 한국은 농장동물과 반려동물로 규정되지 않은 야생동물 중에서만 화이트리스트를 정하게 됐다. 예컨대 현행 야생생물법상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수출입 허가대상 야생동물에는 광범위한 종이 포함되는데, 이 동물들은 화이트리스트 대상이 아니다. 다른 국가의 화이트리스트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 고양이, 토끼, 기니피그, 햄스터 등 역시 동물보호법 상 반려동물 영업기준 적용을 받는 동물이므로 한국 화이트리스트에서는 빠져 있다. 이러니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일반 가정에서 키워도 되는 종을 정하는’ 화이트리스트 제도의 취지가 한국에서만 퇴색되는 것이다.
아무 기준도, 규칙도 없는 상태에서 제도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을 반영해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왜 이런 법률을 시행하게 되었는지 취지와 목적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희귀동물 사육을 쉽고 재미있는 것으로만 미화하는 방송이 늘고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흡한 제도는 하나씩 개선해 나가고, 사람의 책임 인식은 강화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동물은 최소화할 수 있도록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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