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배우 진 해크먼 사인은... "치매 앓다 '부인 사망' 모른 채 심장병으로 숨졌다"

수사 당국 발표... "알츠하이머병도 중요 사인"
"부인, 1주일 전 먼저 사망... 한타바이러스 탓"

2003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제6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할리우드 배우 진 해크먼(오른쪽)과 부인 벳시 아라카와가 참석해 있다. 베벌리힐스=AP 연합뉴스

지난달 말 자택에서 아내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된 미국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 진 해크먼의 사망 원인은 심장질환이라는 미국 수사 당국의 공식 발표가 나왔다. 부인이 먼저 치명적 바이러스에 감염돼 숨졌는데, 당시 치매를 앓고 있던 해크먼은 이를 인지하지 못했으며 일주일 후 심장마비로 자연사했다는 게 당국의 최종 결론이다.

7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뉴멕시코주 법의학실 수석 검사관 헤더 재럴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95세인 해크먼의 사인은 고혈압과 죽상경화성 심혈관 질환"이라며 "그가 앓고 있던 알츠하이머병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재럴 검사관은 이어 "65세였던 (해크먼의) 부인 벳시 아라카와의 사망 원인은 한타바이러스, 폐 증후군"이라고 말했다. 한타바이러스는 쥐의 배설물을 통해 옮겨지는 바이러스로, 사람이 감염되면 독감과 비슷한 발열, 근육통, 기침, 구토, 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심하면 심부전이나 폐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재럴 검사관은 "아라카와는 한타바이러스에 감염돼 관련 증상을 앓다 (해크먼보다 먼저) 숨졌다"며 "해크먼은 아내의 사망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결국 해크먼은 부인의 사망도 모른 채 일주일가량 집에서 홀로 지내다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수사 당국은 부인 아라카와의 이메일과 기타 활동 기록 등을 토대로 그가 지난달 11일 이후 사망했으며, 해크먼은 지난달 18일쯤 숨졌다고 결론 지었다.

앞서 해크먼은 지난달 26일 뉴멕시코주 산타페에 있는 자택에서 아내 아라카와, 반려견과 함께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아라카와의 시신은 욕실 바닥에, 해크먼의 시신은 자택 현관 입구에 각각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의 시신에 외상 흔적이 전혀 없었던 데다, 유서도 따로 나오지 않아 그동안 해크먼 부부 사망 경위는 불분명한 상태였으며 각종 추측만 쏟아졌다.

1960년대에 데뷔한 해크먼은 2000년대 초 은퇴 전까지 40여 년간 80편 이상 영화에 출연했던 할리우드의 명배우다. 오스카상도 △영화 '프렌치 커넥션'(1971)으로 남우주연상 △'용서받지 못한 자'(1992)로 남우조연상 등 두 차례나 수상했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부인 아라카와는 피아니스트로, 198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에서 일하며 해크먼을 만났다.

해크먼은 은퇴 후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을 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산타페에 있는 조지아 오키프 박물관 이사회에서 일하며 아내와 함께 지역 사업에 투자하기도 했다.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