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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새 총리 카니 "트럼프 성공하도록 놔두지 않겠다" 직격

입력
2025.03.10 15:40
수정
2025.03.10 18:2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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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트럼프 정서 등에 업고 당선
"싸움 청해온다면 싸울 준비됐다"

캐나다 차기 총리 겸 자유당 총재로 선출된 마크 카니 당선자가 9일 오타와에서 열린 당대표 발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카니 당선자는 “어떤 형태로든 절대로 미국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타와=AP 뉴시스

캐나다 차기 총리 겸 자유당 총재로 선출된 마크 카니 당선자가 9일 오타와에서 열린 당대표 발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카니 당선자는 “어떤 형태로든 절대로 미국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타와=AP 뉴시스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뒤를 이어 캐나다를 이끌 차기 총리에 '경제통'인 마크 카니 전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가 9일(현지시간) 선출됐다. '관세 전쟁'의 포성을 울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맞수를 자처해온 그는 당선 직후 "트럼프가 성공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캐나다 집권당인 자유당은 이날 당원 15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당대표 투표를 실시해, 85% 이상을 득표한 카니 전 총재를 선출했다. 경쟁자였던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전 부총리와 카리나 굴드 전 하원의장 득표율은 각각 8%와 3.2%에 그쳤다.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 원칙에 따라 카니 신임 당대표는 이번 주 안에 24번째 캐나다 총리에 취임한다.

카니 대표는 정치 신인에 가깝다. 선출직 정치 경험이 없고 현직 의원도 아닌 탓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캐나다 역사상 최초로 선출직 경험이 전무한 총리가 탄생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도 자유당원들이 카니의 손을 들어준 배경에는 그가 트럼프발(發) 무역전쟁에 대처할 적임자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계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인 카니는 2008년 2월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로 취임했다. 그는 같은 해 9월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 파장으로부터 캐나다 경제를 무난하게 방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13~2020년 비(非)영국인 최초로 영란은행 총재를 지내며 영국 경제가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에 따른 경제 혼란을 피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캐나다 상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며 강공에 나서자, '국제 경제통'인 카니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치솟았다. 로이터는 카니가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짚었다.

9일 캐나다 오타와 의회 언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캐나다 주권에 대한 발언 규탄 집회가 열린 가운데 한 참가자가 '팔꿈치를 올려라 캐나다'(Elbows Up Canada)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팔꿈치를 올리다'라는 표현은 아이스하키에서 상대를 밀쳐내는 동작으로, 캐나다의 강한 대응을 상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라고 조롱한 바 있다. 오타와=AP 뉴시스.

9일 캐나다 오타와 의회 언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캐나다 주권에 대한 발언 규탄 집회가 열린 가운데 한 참가자가 '팔꿈치를 올려라 캐나다'(Elbows Up Canada)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팔꿈치를 올리다'라는 표현은 아이스하키에서 상대를 밀쳐내는 동작으로, 캐나다의 강한 대응을 상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라고 조롱한 바 있다. 오타와=AP 뉴시스.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州)로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팽배해진 반미 정서도 대미 강경 대응을 강조해 온 카니의 당선에 동력을 보탠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6개월 전만 해도 카니와 같은 '리무진 리버럴'(Limousine Liberal·특권층이면서 진보주의적인 정치인)은 기회가 없었을 텐데 지금은 캐나다의 주권·경제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카니는 트럼프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실제 카니 대표는 트럼프 행정부와 정면 대결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이날 당선 수락 연설에서 그는 "미국은 우리의 자원, 물, 토지, 국가를 원한다"며 "만약 그들이 성공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캐나다가 아니며 캐나다는 어떤 형태로든 결코 미국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 싸움을 청한 건 아니지만 누군가 싸움을 청하면 응할 준비가 됐다"고 카니 대표는 강조했다.

2015년 11월 취임 뒤 약 10년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된 트뤼도 총리도 "싸워야 할 땐 싸우자"며 후임 카니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 트뤼도 총리는 이날 고별 연설을 통해 "전 세계가 캐나다인들이 무엇을 할지 지켜보고 있다"며 "우리는 외교적 해법을 선호하지만, 싸워야 한다면 팔꿈치를 올리고(elbows up) 싸우는 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팔꿈치를 올린다'는 표현은 캐나다의 국민 스포츠인 하키 경기에서 상대 선수를 밀치는 기술을 뜻한다. 최근 들어선 트럼프 대통령에 강하게 맞서자는 캐나다인들의 의지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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