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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때문? 로힝야 식량 배급 월 12→6달러 '반토막'..."굶어죽으라는 것"

입력
2025.03.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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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FP "난민 위한 기부금 줄어들었기 때문"
최대 지원국 미국 등 기부자들 자금 삭감
어린이 영양실조 등 인도주의 위기 커져

지난 6일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캠프에서 로힝야족 난민들이 식량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콕스바자르=AP 연합뉴스

지난 6일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캠프에서 로힝야족 난민들이 식량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콕스바자르=AP 연합뉴스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에 거주하는 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족이 생존 위기에 놓였다. 원조 감소로 식량 배급이 절반 이상 줄어든 탓이다. 8년 전 군부 학살을 피해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이번에는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굶주림과 싸우게 됐다.

10일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최근 방글라데시 남동부 콕스바자르 난민촌을 관장하는 최고위직 관리 모하메드 미자누르 라흐만에게 난민 식량 바우처를 삭감한다는 내용이 담긴 서한을 보냈다.

현재 난민 1인에게 지급되는 식량 바우처는 월 12.50달러(약 1만8,100원)인데 4월부터는 6달러(약 8,700원)으로 반토막 난다. 하루 20센트(약 290원)의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셈이다. 이는 로힝야 난민에 대한 기부금이 줄어든데 따른 조치라는 게 WFP의 설명이다. WFP는 서한에서 “방글라데시 난민 당국으로부터 추가 기금을 얻으려 했지만 실패했고, 비용 절감 조치만으로는 자금 부족을 메울 수 없어 내린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콕스바자르 난민 캠프에는 100만 명 넘는 로힝야족이 살고 있다. 무슬림인 이들은 불교도가 다수인 미얀마에서 오랜 기간 탄압받았다. 특히 2017년 미얀마군이 대대적인 ‘로힝야 소탕 작전’을 벌이자 학살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도망쳤다. 이후 미국 등 서방과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으로 생계를 이어 왔는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된 셈이다.

로힝야족 어린이들이 지난달 11일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로고가 새겨진 구호물품을 살펴보고 있다. 콕스바자르=로이터 연합뉴스

로힝야족 어린이들이 지난달 11일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로고가 새겨진 구호물품을 살펴보고 있다. 콕스바자르=로이터 연합뉴스

WFP는 기부금이 왜, 얼마나 줄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해외 원조 일시 중단 조치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니얼 설리번 국제난민기구 아시아·아프리카 담당 국장은 “로힝야 난민에 대한 지원이 줄어든 것은 (미국 정부가) 해외 원조를 담당하는 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해체하고 영국 등도 자체적으로 기부금을 줄인 결과”라고 꼬집었다. AP통신은 “방글라데시 내 로힝야 난민 지원에 사용되는 원조금 절반이 미국에서 나온다”며 “지난해 미국의 지원금은 약 3억 달러(약 4,300억 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월 6달러’는 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고 난민들은 호소한다. 난민 캠프에 거주하는 로힝야족 자포르 알롬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지난 4년간 물가 상승으로 식량과 기본 생필품 가격이 두 배 이상 뛴 까닭에 12.5달러로도 생존이 어려웠는데, 배급량이 늘기는커녕 더 줄게 돼 생존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말했다. 로힝야족 교사 누르 카드르는 “세상이 우리를 굶겨 죽이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번 기부금 삭감이 인도주의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WFP는 지난 2023년에도 기부금 부족을 이유로 반년 간 콕스바자르 캠프 거주 난민 월 식비를 12.5달러에서 8달러로 줄였다. 당시 난민의 90%가 굶주려야 했고, 어린이의 15%가 영양실조에 걸렸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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