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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노'와 '킬러 문항 배제'로 시작한 윤석열 사교육 정책, 왜 실패했나

입력
2025.03.14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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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 29조 원
대학 서열화 등 구조 두고 대증 요법만
변화무쌍한 입시정책 탓 불안감 고조
수험생 1/3인 N수생, 얼마 쓰는지 몰라

13일 서울 강남구 한 영어유치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서울 강남구 한 영어유치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배제'로 대표되는 윤석열 정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이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초· 중·고교생이 쓴 사교육비 총액이 역대 최대인 29조 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N수생(대입에 두 번 이상 도전하는 수험생)과 유아 등 최근 사교육비 폭증을 견인한 세대가 쓴 돈은 통계에서 빠져 있어 부모들이 실제 지출한 금액은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임기 초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격노'하며 대책 마련을 지시할 만큼 의지를 드러냈던 사교육 정책은 왜 효과를 보지 못했을까.

①아픈 원인은 그대로 두고 연고만 발랐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원인을 치료하는 요법이 아닌 환부에 약만 바르는 대증 요법만 써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부모들이 사교육에 기대는 건 궁극적으로 자녀가 괜찮은 급여를 받는 일자리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여전히 학벌이 필요하고 'SKY'(서울·고려·연세대)를 정점에 둔 입시 피라미드에서 최대한 상층부에 진입해야 한다. 결국 대학에 안 가도 먹고살 만한 직업을 구할 수 있는 노동시장 변화와 대학 서열화 철폐 같은 구조 개혁이 있어야 사교육의 쓸모가 줄 텐데 정부는 이를 건들지도 못했다.

이형빈 가톨릭관동대 교직과 교수는 "킬러 문항 배제와 사교육 카르텔 때려잡기가 대표적인 전시용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수능을 불과 5개월 앞뒀던 2023년 6월 윤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하면서 수험생들의 불안감이 되레 커졌다고 설명한다. 출제 기조를 종잡을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그래픽=이지원 기자

입시 정책의 불확실성과 학부모의 불안을 먹고사는 학원가는 더 호황을 누렸다. 백승진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정책위원장은 "수험생 사이에서는 '킬러 문항이 배제돼도 수능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난이도 '상'의 문제는 오히려 늘 것이라는 걱정이 커졌고 학원가도 이를 자극했다"고 말했다.

실제 킬러 문항 배제가 발표된 2023년 고교생이 쓴 사교육비는 한 해 전보다 8.2%나 늘어난 7조5,000억 원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교육비의 전년 대비 증가율(각각 4.3%, 1.0%)과 비교하면 급증한 것이다.

②사교육 부추기는 엇박자 정책

오히려 사교육 수요를 부추기는 정책을 발표한 것도 정부의 사교육 해결 의지를 의심케 했다. 2023년 6월 발표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이 대표적이다. '학업성취도 평가 확대' '자사고∙외고∙국제고 유지’ ‘고교 내신 5등급 상대평가 도입’ 등이 핵심인데 모두 사교육을 유발하는 요인이라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예컨대 자사고, 외고, 국제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3 학생은 일반고를 지망하는 학생보다 사교육비를 2배 이상 지출(2023년 통계)하는데 이런 구조를 남겨 두고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건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급작스럽게 밀어붙인 '의대 2,000명 증원' 정책도 사교육 수요를 키웠다. 의대 진학 욕망을 자극하면서 '초등 의대반' 등 과도한 선행학습 상품이 전국적으로 쏟아졌다. 지난해 사걱세가 전국의 초등 의대반 실태를 조사해 보니 제주를 제외한 16개 시도에서 관련 홍보물이 발견됐다. '사교육 1번지'인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정상 교육 과정의 최대 14배 속도로 선행학습을 시켰다. 초교 5학년이 고2까지 7개 학년(84개월)을 6개월 만에 배운다는 뜻이다.

1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의대 준비반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1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의대 준비반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이에 국회에서는 초등 의대반 방지법까지 발의됐다. 학원 등이 국가나 시·도교육청이 정한 학교급별 학교 교육 과정을 앞서는 교습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나성훈 사걱세 공동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의대 증원을 하면서 사교육비 증가 우려까지 예상했음을 기대하긴 어렵다"면서 "교육부가 (의대 증원이 사교육비의) 뇌관이 될 가능성을 감안해 섬세한 대책을 내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③실태조차 모르는 N수생 사교육

사교육비 폭증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N수생 사교육비는 실태조차 모른다. 지금껏 정부가 조사를 안 해 온 탓이다. 그사이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두 번 이상 수능을 치르는 건 흔한 일이 됐다. 실제 수능 응시생 중 졸업생 출신은 2018학년도에 13만7,533명(전체 응시생 중 23.2%)에서 2025학년 16만1,784명(31.0%)으로 늘었다. 수험생 3명 중 1명이 N수생이라는 얘기다. 고교 재학 땐 내신과 학교생활기록부 등 수시 전형을 준비하느라 바쁘기에 재수를 하면서 수능에 몰입하려는 학생이 늘고 있다.

서울 강남권의 '재수종합반' 학원들도 N수생 덕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구 소장은 "기숙형 재수종합반 비용은 월 300만~400만 원, 집에서 다니는 강남의 재수종합반은 200만~300만 원 든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시범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뒤늦게 밝혔다.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영유아 사교육도 지난해 겨우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4세 고시'(유아 영어학원 레벨 테스트), '7세 고시'(유명 영어·수학학원 레벨 테스트) 등이 퍼지면서 부모들의 사교육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박사는 "예전에는 서울 강남, 송파 일부 지역에서만 유아 영어학원(영어 유치원)이 인기 있었다면 이제는 전국적인 현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저출생 시대에 아이 한 명만 낳는 가정이 늘면서 부모들이 '아이를 특별하게 키워야 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하는 데다 미디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아 사교육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정부가 사교육비 문제를 단순히 교육 문제가 아닌 청년층이 출산을 꺼리게 하는 등 사회 존속을 위협하는 난제로 보고 더 절박하게 정책을 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교사노조는 "올해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지만 상대평가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다 대입 개편안과도 맥락이 맞지 않아 입시 사교육비가 더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공교육 내실화와 예측 가능한 입시제도 시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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