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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청와대 검찰,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명운 걸어라

입력
2015.04.12 17:40

여권, “외압 행사 않겠다” 약속 지키고

檢은 정권 의식 않고 철저히 수사해야

불법 대선자금 수사도 예외 둬선 안 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숨진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제공 의혹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한다고 밝힌 직후다. 이에 앞서 어제 오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법리 문제를 떠나서 정치의 문제로 절대 의혹을 갖고 넘어갈 수 없다”고 전제하고 “검찰 수사에 외압이 없도록 새누리당이 앞장 서 책임지겠다”고 이례적인 의지를 보였다.

성 전 회장이 현 정부 실세들에게 거액의 자금을 전달했다고 폭로하면서 의혹은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더구나 2012년 대선 당시 대선캠프에서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은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에게 대선자금 용도로 2억 원을 건넸다는 성 전 회장의 주장이 추가로 나와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선자금 문제는 현 정권의 창출과 직접 관련된 민감한 사안이어서 사태 흐름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존립 기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상황에 이끌려 가기 보다는 선제적으로 대응을 하는 게 상책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사실 관계 확인이 먼저”라는 소극적인 입장이었으나 여론이 급격히 악화하고 후속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방향을 선회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어쨌든 여권이 비교적 신속하게 정면돌파 기조로 가닥을 잡은 것은 다행스럽다.

문제는 앞으로다. 검찰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수사를 하겠느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검찰은 성 전 회장 수사과정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무리하게 수사를 밀어붙였다. 자원외교 비리와는 무관한 분식회계와 횡령 등 별건 수사에 매달리는 바람에 급기야 일을 내고 말았다. 그런 검찰에 성 전 회장의 폭로를 확인하는 수사를 맡기는 게 온당하느냐는 지적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보다 내키지 않는 것은 검찰이 그 동안 살아있는 권력을 의식해 눈치보기 수사를 해온 관행 탓이다. 올 초 ‘정윤회 문건 파문’만 해도 핵심인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 의혹은 끝내 파헤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금의 검찰이 실세 권력자들을 상대로 의혹을 샅샅이 파헤칠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어렵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수사는 결국 특검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설사 그런 수순이 불가피하다 해도 검찰은 최선을 다해 수사해야 마땅하다. 정치검찰이라는 오욕을 씻고, 이번 사정 수사에서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서라도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밝힌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정치권 금품 제공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 당시의 불법대선 자금 여부도 빼놓지 않는 그야말로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

청와대 등 여권도 더 이상 검찰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생각은 일체 하지 말아야 한다. 재보궐 선거나 정권에 미칠 도덕적 타격을 의식해서 검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하려다가는 헤어나오기 힘든 수렁에 빠질 지도 모른다. 청와대나 검찰이나 이번 수사에 명운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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