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어제 한은 창립 74주년 기념사에서 개혁 앞에 멈춰 있는 대한민국을 향해 절절한 구조개혁 메시지를 던졌다. 물론 구조개혁론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도 입만 열면 구조개혁을 한목소리로 외쳐왔다. 그럼에도 이 총재의 메시지가 새삼 묵직하게 들리는 건 윤석열 정부 출범 2년을 넘기도록 구조개혁의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 구조개혁은커녕 시작부터 정쟁으로 멈춰 선 22대 국회 현실이 참담하기 때문이다.
이 총재 메시지의 주조는 표면적으론 통화정책 현안인 금리와 물가였다. 금리에 관해선 “고물가ㆍ고금리로 인해 경제주체가 겪고 있는 고통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현재의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고금리가 내수 부진의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조기 금리인하 필요를 거론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의식한 듯 신중한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물가에 대해선 “이미 높은 물가는 계속해서 생계비 부담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며, 통화정책을 넘는 정부의 근본적 해결방안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작 구조개혁론은 한은이 당면 ‘구조적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내놓는 ‘싱크탱크’가 돼야 한다는 맥락에서 나왔다. 이 총재는 저출생ㆍ고령화, 지역 불균형과 수도권 집중, 연금고갈과 노인빈곤, 교육문제, 소득ㆍ자산 불평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을 일일이 열거하며 “이에 대한 해결 노력 없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 총재의 절박한 인식과 달리 구조개혁은 말만 앞섰을 뿐 여전히 갈피조차 못 잡고 표류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연금개혁은 언제 재론될지 아득해졌고, 저출생 문제는 부총리급 부처 신설계획조차 공전 기미가 뚜렷하다. 소득ㆍ자산 불평등 문제는 구조적 해법은커녕 악화 우려만 키우는 정책들이 잇달아 시도되고 있으며, 노동시장 개혁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체념 분위기가 만연하다. 22대 국회에 앞서 정부와 정치권의 통렬한 반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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