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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끓이고 김밥쌈 먹는 일본인들… 日 주류 음식으로 떠오른 K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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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두세 번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다닐 정도로 한국 음식은 제 일상이 됐어요."(일본인 대학생 아이베 나쓰)
지난달 28일 일본 도쿄 세타가야구 고마자와올림픽공원에서 만난 대학생 아이베(21)는 고교생 시절부터 K팝을 즐겨 들었다고 했다. 화제의 K드라마도 빼놓지 않고 봤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음식(K푸드)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낯선 외국 먹거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K푸드에 푹 빠졌다. 계기는 지난해 1월 친구의 권유로 동네 지바의 한 한국 음식점에서 하게 된 아르바이트였다. 추운 겨울에 사장이 만들어 준 따뜻한 순두부찌개로 한국 음식에 처음 눈을 뜬 아이베는 지금 지바와 도쿄의 유명한 한국 식당을 찾아다니기까지 한다. 친구 미나토 유사(21)는 "평소 아이베와 떡볶이, 지지미(부침개)를 즐겨 먹는다"며 "한국 음식은 외국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날 고마자와올림픽공원에서는 '한일축제한마당 2024 도쿄'가 열렸다. 도쿄 한국문화원이 한일 문화 교류를 위해 해마다 개최하는 행사다. 16회째인 올해에는 예년과 달리 푸드트럭 10대도 처음 동원됐다. K푸드를 찾는 일본인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눈높이를 맞출 시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푸드트럭 못지않게 관람객이 길게 줄을 선 곳도 있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도쿄지사의 K푸드 홍보·판매 부스였다. 된장찌개와 육개장, 북엇국, 고추장불고기 등 K푸드 소스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대추와 인삼, 한방 재료를 구매해 집에서 직접 삼계탕을 끓일 정도로 한식을 자주 먹는다는 한 50대 일본인 주부는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음식 재료를 사려면 신오쿠보(코리아타운)까지 가야 했는데 이제는 집 앞 마트에서도 편하게 살 수 있다"며 "(K푸드는) 일본인이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먹는 음식이 됐다"고 말했다.
일본의 3차 한류 붐 시기인 2013~2017년, K푸드는 K팝과 K드라마 인기에 '한번쯤 먹어 보고 싶은 외국 음식'에 불과했다. 그러나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세계적인 한류 콘텐츠에 힘입어 2020년대부터 본격화한 '4차 한류 붐' 덕에 K푸드 인기는 일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신라면과 불닭볶음면, 김치는 일본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어디에서든 살 수 있는 음식이 됐다. 전골 찌개 불고기 등의 각종 소스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도쿄 에도가와구에 사는 60대 여성은 "일본인 상당수가 비비고나 농심, 종가집 등 한국 음식 브랜드를 알고 있다"며 "한국의 냉동식품을 사는 데에도 낯설어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류는 음악과 화장품 등 젊은 층의 라이프 스타일에 침투했고, 4차 한류 붐은 일본인의 식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aT 관계자는 "2020년 이전만 해도 K푸드 인기는 한일 관계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제는 정치 문제와 상관없이 인기를 유지하는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건강식을 찾는 식문화도 한국 음식의 인기를 높여 줬다. 한국 식품을 수입·유통하는 일본 기업 '해피식품'의 관계자는 "해외 소비자 관점에서 K푸드는 '다양한 채소를 사용하는 건강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며 "매운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매력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K푸드가 일본인이 일상생활에서 찾는 주류 음식으로 떠오르자, 일본 식품·외식 업체도 서둘러 K푸드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의 식품 대기업인 '아지노모토'는 지난 8월 자사의 한국 요리 브랜드 '쿡두코리아'를 개선했다. 상품 디자인을 더 맛깔스럽게 바꿨고, 상품 수도 2개에서 4개로 늘렸다. 홈페이지에는 50여 개 한식 레시피도 게시, 한국 음식을 만들 때 자사 조미료를 이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니혼햄 역시 올해 2월 전자레인지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간편식 브랜드 'K키친'의 제품 수를 2개에서 4개로 늘렸다. 시장 추이를 지켜보며 K키친 신상품 개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규동(쇠고기덮밥) 체인업체로 유명한 마쓰야그룹은 지난 8월 13일 도쿄 하무라시에 한국 식당 '두근두근' 1호점을 열었다. 한식 중에서도 '돌솥'을 이용한 덮밥·찌개류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아직은 1호점만 있으나, 일본 대형 외식 기업이 K푸드 전문점을 차린 것은 이례적이다.
새로운 K푸드를 발굴해 시장에 내놓으려는 일본 업체의 노력도 뜨겁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도쿄무역관이 지난 11일 개최한 '2024 도쿄 한류박람회'에서도 K푸드는 바이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분야였다. 행사에 참여한 한국 식품업체는 13곳이었지만, 바이어로는 그 네 배인 51개 사가 참가해 한국 기업들과 상담 기회를 가졌다. 미야마 노리코 코트라 도쿄무역관 계장은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한국 식품 팝업 매장을 열고 싶다는 상담이 줄을 이었다"며 "아직 일본에 알려지지 않은 한국 제품을 찾는 문의가 많았다"고 말했다.
일본 업체들이 '시장 선점'에 나선 것은 K푸드가 '돈이 되는 시장'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아지노모토가 민간 조사 업체 인테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계한 결과, 지난해 일본 내 한국 식품 시장은 290억 엔(약 2,638억 원) 규모에 달했다. 2018년 190억 엔(약 1,728억 원)보다 50% 이상 성장한 수치다. 2019년 이전만 해도 200억 엔을 밑돌았던 시장 규모는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확대됐고, 올해는 300억 엔(약 2,729억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K푸드는 일본 외식 시장에서도 급성장하고 있다. 일본후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외식산업 중 한국 요리 시장 규모는 2020년 504억 엔(약 4,584억 원)에서 지난해 724억 엔(약 6,585억 원)까지 커질 정도로 매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한국 수입·유통업체 입장에서 시장 확대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일본 대기업들이 뛰어들면서 한국 중소업체들은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 탓이다. 한국 식품 유통업체 아사히푸드 대표인 정정필 일본한국농식품연합회 이사는 "일본 대기업·제조업체들이 물류력을 동원해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며 "K푸드의 보편화가 기회이긴 하지만, 아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중소업체에는 위기"라고 짚었다.
한국 업체들은 '일본 기업보다 한발 더 빨리'라는 전략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K푸드를 더 쉽고 즐겁게 접할 수 있는 '트렌디한 음식'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CJ푸드재팬은 지난달 3일 도쿄 직장인의 도시인 신바시에 '비비고 마켓' 1호점을 열었다. 아직 한국에도 없는, 전 세계 첫 번째 매장이다. 비비고 브랜드 인지도를 키워 준 '효자 상품' 만두를 비롯한 각종 냉동식품을 판매하고, 자사 제품을 이용한 퓨전 분식도 선보이고 있다.
도쿄 비비고 마켓의 목표는 20·30대 젊은 직장인이 퇴근 후 즐기는 세련된 한식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 21일 저녁 기자가 찾은 이곳은 스파클링와인에다 떡볶이와 추로스를 먹는 일본인들로 넘쳐났다. 상추에 김밥 및 제육볶음을 싸 먹는 김밥쌉, 초장 샐러드에 만두를 곁들여 먹는 비빔만두도 고객들이 찾는 인기 메뉴다. CJ푸드재팬 관계자는 "일본인 직장인이 평일은 물론 토요일 오후 한국 분식과 와인으로 파티를 여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 있는 트렌드 상품을 들여오는 업체도 늘고 있다. 삼양사는 이달 1일부터 일본 편의점 로손과 손잡고 일본 전역에서 자사 브랜드 큐원의 숙취해소제 '상쾌환' 판매를 시작했다. '한국'과 '뷰티'를 선호하는 일본 20·30대 여성을 겨냥하는 동시에, 아직 일본 업체가 주목하지 않은 틈새시장을 파고든 것이다.
불닭볶음면으로 재미를 본 삼양식품은 컵라면 형식의 파스타 제품 '부티크'를 일본인 취향에 맞춘 '탱글'로 바꿔 판매하고 있다. '한국 라면=매운 라면'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컵라면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는 취지다. 아사히푸드는 건강한 K푸드를 찾는 일본 소비자를 위해 광동제약의 건강음료 '힘찬 하루 헛개차'를 선보였다. 정정필 이사는 "이제 기업과 정부가 힘을 합쳐 한국의 식문화와 트렌드까지 판매하는 '넥스트 스텝'(다음 단계)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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