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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의 날에 소환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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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27년 전 국가부도 위기 앞에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날이다. 1997년 11월 21일 YS정부는 나라를 IMF사태로 몰고 갔다. 원인을 두고 국민의 흥청망청을 탓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정치 실패, 경제 실책인 것이 분명해졌다.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오기가 더 어렵다던 YS가 정작 하산 길에 나라를 휘청거리게 했다. 정치 상황은 지금처럼 혼란스러웠다. 집권 2년 뒤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독단적 국정운영과 아들의 국정개입, 인사농단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해외에선 한국 투자금지까지 언급했지만 정치권은 선거에 올인한 상태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통령이 위기에 무지했고 참모들마저 징후를 발견해 보고한 이가 없었다.
당시와 비교할 건 아니나 경제를 외면하고 정략에 빠져 있는 지금이 그때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체감경기는 위기를 방불케 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가 고전할 만큼 산업계도 심각한 상황이다. 대기업 오너들을 대동한 경제외교가 민망한 처지다. 경제 성적표는 원래 여당 몫이고 대통령 책임이다. 그래서 역대 정부들은 정치에서 야당에 양보하고 경제를 위한 입법과 정책을 챙겼다. 지금 정부에선 대책 없는 정치 우선 행보로 정책 결정이나 추진이 우측 깜빡이를 켠 채 표류하고 있다.
외교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제는 외교의 사법화로 국정 발목을 잡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2년 만에 한중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재확인해 긍정 평가를 받았다. 하필이면 이틀 뒤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가 사드 정식 배치를 늦추려고 미사일 교체 관련 사실을 중국에 유출한 의혹을 공개하고 관련자 4명을 수사 요청했다. 위법성을 떠나 외교적으로 한중 관계 개선에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한중 관계가 지금처럼 악화한 계기가 사드의 임시 배치였다. 외교의 사법화가 외교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협상 파기에서 경험했다. 국내 이슈화한 강제징용 문제를 굴욕외교 비판까지 감내하고 푼 주인공이 윤 대통령 자신이었다. 용산의 뜻이 아니라면 대통령이 밖에서 뛸 때 감사원이 국정 방해에 나선 셈이다.
환란 때와 비교되는 위기 신호들에 비상한 각오도 모자랄 판인데 정부 경제팀은 위기 상황은 지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국민과 괴리된 천수답 낙관론은 위기의 또 다른 징후일 뿐이다. 역사 자체가 반복성을 지닌 구조라는 주장도 있지만, 역사를 알아야 반복을 피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MB정부는 청와대 지하벙커에 비상경제 워룸을 설치했다. 펀더멘털이 좋다며 위기를 방치했던 97년 사태에서 배운 교훈이었다. 당장 몰려오는 해외 현안들을 국가 안전문제로 바라보고 대응하는 정부 모습을 보일 때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과 끊으면 미국 시장을 열어주겠다고 했다. 트럼프 차기 정부는 미국 시장마저 닫아 걸겠다고 한다. 1기 트럼프는 워싱턴 주류에 밀려난 아웃사이더였고, 참모들의 반대로 주장을 굽혀야 했다. 반대자가 사라진 2기 트럼프는 충성파 '영 마가(Young MAGA)'로 채워진 일극 체제다. 언론인 밥 우드워드는 트럼프가 ‘제왕’이 되려 한다고 짚었다. 트럼프의 국익 우선주의 앞에서 자유주의 동맹의 끈마저 끊어질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트럼프에 대비해 대통령이 골프채를 잡았다는 설명이 잠시 진정성 있게 들리기도 했다. 원칙으로 맞서고 변칙으로 승부하라는 병법처럼 지금은 외교도 상황에 맞춰가는 물 같은 유용성이 필요한 때다. 동맹이라도 국익을 위해 다른 접근이 필요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한국에 있어 미국과 중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 배경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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