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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고금리에 얇아진 지갑…OTT 구독 끊고, 도시락 싸 다닌다

입력
2024.12.24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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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지갑, 주저앉는 경제]
<하> 쓸 돈이 없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정치 불확실성까지
가처분 소득 감소에 지출 더 줄여
"재정 정책 등으로 시장에 돈 돌아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자녀 1명을 둔 외벌이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유튜브, 넷플릭스 등 각종 앱의 구독을 취소했다. 올해 초에는 1년 이상 다녔던 테니스 레슨도 끊고 러닝으로 취미도 바꿨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했던 외식도 이제는 2주에 한 번으로 줄였다. A씨가 5년 전 받았던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금리가 대폭 뛰었기 때문이다. A씨는 2019년 결혼 당시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3억 원의 주담대를 금리 2.2%(5년 고정 주기형·35년 만기)로 받았는데, 5년이 지난 현재 4.4%로 올랐다. 이에 따라 매달 빠져나가는 원리금이 102만 원에서 140만 원으로 40만 원가량 늘어나 버렸다. A씨는 "월급은 그대로인데 갑자기 매달 고정비가 40만 원이 늘어나면서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게 됐다"며 "꼭 필요한 지출 아니면 최대한 쓰지 말자는 주의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고물가·고금리 영향으로 서민 주머니 사정이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한때 유행했던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는 꿈도 꾸지 못할 뿐 아니라 이제는 생활필수품까지 아껴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탄핵 정국 등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가계의 소비심리는 더욱 위축되고, 내수 부진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가구당 평균소비성향(가처분소득 중 소비지출 비율)은 69.4%로 지난해 3분기(70.7%) 대비 1.3%포인트 낮아졌다. 평균소비성향이 낮을수록 처분가능소득 대비 소비지출이 적다는 걸 의미한다. 평균소비성향이 전년 대비 하락한 것은 코로나19 시기인 2022년 2분기 이후 9분기 만이다.

계엄사태 이후 주요 지역 카드 결제액 줄었다

여기에 '12·3 불법 계엄사태' 등 정치 변수까지 내수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일보가 서울시의 실시간 도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계엄사태 이후 일주일간(12월 4~10일) 주요 인구 밀집 지역에서 카드 결제 금액(신한카드 기준)은 전주(11월 27일~12월 3일) 대비 최대 12%까지 줄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창동역 인근 상권은 계엄사태 이후 일주일간 27억9,000만 원이 결제되면서 전주(31억6,600만 원) 대비 결제 금액이 11.9% 줄었다. 같은 기간 오목교·목동 지역은 5.9%, 신림역 인근은 4.8%씩 감소했다. MZ세대의 '핫플레이스'인 성수역 인근 역시 계엄사태 이후 카드 결제액이 전주 대비 6.4% 줄었으며 홍대(-4.1%), 광화문(-2%)도 감소세를 보였다. 다만 직장이 몰려있는 강남역, 여의도, 서울역에선 카드 결제 금액이 큰 변화가 없었다. 강남역과 여의도 상권에선 전주 대비 1%가 상승했으며, 서울역의 경우 1.4% 하락하는 데 그쳤다.

코로나19 이후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경제 주체들은 필수 소비를 제외한 일반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있다. 직장인 이모(34)씨는 "이달 초부터 와이프와 함께 점심 도시락 싸서 다니고, 커피는 회사 탕비실에서 해결한다"며 "물가가 많이 올라 점심값만 해도 요즘 1만 원이 훌쩍 넘어 도시락을 싸가는 것만으로도 50만 원은 절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제약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박모씨도 출산을 앞두고 통신 서비스를 알뜰폰으로 바꿨다. 박씨는 "침대, 카시트 등 대부분 유아용품은 물려받거나 중고로 들이고 있다"며 "그래도 돈이 나갈 곳이 워낙 많아 좋아했던 커피나 디저트는 그동안 받은 기프티콘으로 연명하는 신세"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가계의 가처분 소득은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구 흑자액은 월평균 100만9,000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만8,000원(1.7%) 줄었다. 흑자액은 소득에서 이자 비용·세금 등 비소비지출과 의식주 비용 등 소비지출을 뺀 금액으로 자산 구입이나 부채 상환 등에 쓰이는 여유자금을 말한다. 가계 흑자액은 2022년 3분기부터 8개 분기 연속 감소 추세로, 2006년 가계동향이 공표된 뒤로 역대 최장기간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대출 금리도 오르면서 극단적 소비 절약"

연말을 앞두고 소비심리가 위축된 16일 서울 명동 거리의 모습. 연합뉴스

연말을 앞두고 소비심리가 위축된 16일 서울 명동 거리의 모습. 연합뉴스


특히 1인 가구의 경우 이런 부담을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해 타격이 더욱 크다.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이 지난해 대구 지역 청년(만 19~39세)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 부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3.7%는 전세 임차나 매매를 위해 대출을 받았으며, 이 중 73.3%가 변동금리를 택했다. 변동금리로 인해 이들의 이자율은 평균 1.9%포인트 올랐다. 이들의 평균 부채가 8,348만 원인 것을 감안하면 금리 상승으로 연이자 부담이 161만 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소비 여력이 줄어들면서 아예 무지출 챌린지 등 극단적 소비 절약을 실천하는 '짠테크족'도 늘고 있다. 직장인 최모(36)씨는 매일 스마트폰에서 한 동영상 앱을 켜 출석 체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 앱은 매일 출석 체크를 하거나 동영상을 시청하면 수십 원의 포인트를 주고, 친구를 초대해 10일간 매일 앱을 이용하게 하면 3만 원도 추가로 지급한다. 걷기 앱을 통해 몇 원 단위를 모아 커피나 편의점 상품권으로 교환해 사용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문제는 내년에도 경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소비 위축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데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13~20일 내년 소비 지출 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3%가 내년 소비지출을 올해 대비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는 "소비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가장 취약한 영세 자영업자부터 타격을 입고 있다"며 "정부가 재정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고, 기업들도 하청업체에 신속히 납품 대금을 조기 지급하는 등 시장에 돈이 돌지 않으면 내수 부진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하늘 기자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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