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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의 대화'에 빠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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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 더 빛난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재임 4년(1977년 1월~1981년 1월) 동안 변변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고, 1979년 2차 오일쇼크와 주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1980년 대선에서 연임에 실패했다. 반전은 퇴임 후 평화 증진·인권 신장·질병 퇴치 활동으로 시작됐다. 1차 북핵 위기 당시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의 담판으로 북미협상의 물꼬를 텄고, 에티오피아·세르비아 등 국제 분쟁지역을 찾아 평화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유다.
□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1945년 3월~1953년 1월) 일본 원자폭탄 투하, 미소 냉전, 중국 공산화,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퇴임 시 박한 평가를 받았다. 퇴임 후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따른 군인연금에 만족하며 "대통령직을 상업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며 대기업의 초빙 요청을 거절했다. 이런 검약함이 국민 마음을 움직였고 재임 시 대내외 정책의 재평가로 이어졌다. 원폭 투하, 한국전쟁 참전 등 역사적 결정을 내린 트루먼의 집무실 책상에 두었던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란 문구의 명패도 유명해졌다.
□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엔 퇴임 후 행보로 평가받는 전직 대통령이 눈에 띄지 않는다. 생존하는 전직 대통령 중 문재인 전 대통령만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등 혐의로 징역 17년 판결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당하며 각각 자격을 잃었다.
□ 12·3 불법 계엄으로 국격을 추락시킨 윤석열 대통령은 어떠할까. 민심의 분노에 아랑곳없이 "자유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결단"이라고 외치는 걸 보면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란 오만한 망상에 빠진 듯하다. 역사와의 대화는 접어두고 당장 계엄 사태에 대한 법적·정치적 책임부터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집무실 책상에 둔 'The buck stops here' 명패가 부끄럽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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