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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히 부서진 여객기 마주한 유가족들… 옆에선 비명 같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입력
2025.01.01 18:10
수정
2025.01.01 18:2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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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등 상 차리고 고인에게 새해 인사
온전치 못한 시신 장례·기다림 갈등도
시민들도 현장 부근 찾아 추모 메시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이 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무안=뉴스1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이 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무안=뉴스1

"으아아악! 으흐흑…"

처참히 부서지고 타 버린 항공기 옆에서 비명 같은 울음소리와 오열이 터져 나왔다. 새해 첫날인 1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유족이 사고 현장을 찾았다. 폴리스라인(경찰통제선)과 철조망을 넘어 유족이 이곳에 발을 들인 건 사고 후 처음이다. 박한신 유족협의회 대표는 이날 오전 사고 현장 방문에 앞서 "가는 데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울먹이기도 했다.

처음 발 들인 참사 현장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이 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에서 간소하게 상을 차리고 희생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무안=연합뉴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이 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에서 간소하게 상을 차리고 희생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무안=연합뉴스

사고 현장에 귤, 떡국 등으로 간소한 상이 차려졌다. 유족들은 눈물 속에 사랑하는 가족에게 새해 인사를 건넸다. "사랑하는 ○○아" "○○아 미안해"라 되뇌며 흐느꼈다. 20~30분의 짧은 방문을 마친 유족들은 창백하고 망연자실한 얼굴로 공항에 돌아왔다. 초점 없는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울음을 주체하지 못해 서로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쏟거나, 부축을 받기도 했다.

활주로 바깥 철조망까지는 취재진 등 민간인도 접근 가능한데 이곳에서 본 사고 현장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뽑히고 부러진 의자와 기체 파편이 어지럽게 널렸고, 아스팔트 바닥엔 핏자국이 남았다. 비행기 좌석마다 꽂혀 있었을 안전 매뉴얼의 찢어진 페이지가 철조망 너머 도랑에 나뒹굴었다.

온전한 모습 시신 인도받고 싶은 유족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달 31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무안=뉴시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달 31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무안=뉴시스

참사 나흘째인 이날 희생자 179명 모두의 신원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시신을 인도받아 장례 절차에 들어간 건 21명뿐이다. 나머지는 좀 더 온전한 모습으로 시신을 인도받기 위해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유족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사고 현장에 흩어진 시신이 조금이라도 온전해지길 바라는 사람도 있는 반면 하루빨리 고인을 평안한 곳에 두고 싶은 이도 있다. 한 유족의 경우 "엄마의 일부라도 여기에 두고 가고 싶지 않다"는 주장과 "더 기다려도 시신이 수습된단 보장이 없지 않느냐. 찬 곳(냉동고)에 더 두기 싫다"는 의견이 가족 내에서 갈리기도 했다. 시신 대부분이 훼손된 참담한 현실이 유족을 고뇌로 몰아넣은 셈이다.

함께 슬퍼한 시민들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추모 글귀가 적힌 노란 리본이 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 철조망에 묶여 있다. 무안=김나연 기자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추모 글귀가 적힌 노란 리본이 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 철조망에 묶여 있다. 무안=김나연 기자

참사 현장을 에워싼 철조망 아래엔 애도의 흔적이 가득했다. 국화꽃과 소주, 과자, 커피 등이 가지런히 놓였다. 먹기 좋도록 껍질을 벗긴 귤과 빨대가 꽂힌 음료수도 눈에 띄었다. 가족 단위 희생자가 많았기 때문인지 유아용 음료수와 안주용 과자, 소주가 한데 놓인 곳도 있었다. 철조망 곳곳에 붙은 쪽지와 리본에는 "사랑하는 나의 매제 고통 없는 천국에서 편히 쉬게나"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행복하길 빕니다" 등 글귀가 적혀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천국으로 가세요"라 적힌 쪽지도 붙었다.

다섯 자녀와 함께 사고 현장을 찾은 김솔이(32)씨는 "아이들의 죽음이 특히 가슴 아팠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어 "비극이 일어나야 고쳐지는 나라가 아니라 늘 안전한 나라가 되길 바라고, 저도 아이들에게 좋은 미래를 이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세 살짜리 최연소 희생자와 동갑인 아이를 데려온 고은(30)씨도 "누구든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 한 새해가 되길 바란다"며 애달파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 철조망 앞에 1일 유아용 음료와 과자, 소주가 놓여 있다. 무안=김나연 기자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 철조망 앞에 1일 유아용 음료와 과자, 소주가 놓여 있다. 무안=김나연 기자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쪽지가 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참사 현장 철조망에 붙어 있다. 무안=김나연 기자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쪽지가 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참사 현장 철조망에 붙어 있다. 무안=김나연 기자


무안= 김나연 기자
무안= 문지수 기자
무안= 조소진 기자
무안=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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