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극빈국 북한이 건조하는 이지스함...신형 전투함 등장의 의미는?

입력
2025.01.07 14:00
25면

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지난해 2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포조선소를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오늘날 나라의 해상주권을 굳건히 보위하고 전쟁 준비를 다그치는 데 해군무력 강화가 제일 중차대한 문제로 나선다"고 강조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지난해 2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포조선소를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오늘날 나라의 해상주권을 굳건히 보위하고 전쟁 준비를 다그치는 데 해군무력 강화가 제일 중차대한 문제로 나선다"고 강조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농담처럼 사용되는 말이지만, 이것을 한 개인이 아닌 인류사 전체에 대입해보면 굉장히 무겁게 다가오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이라는 행위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나쁜 행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개인 또는 집단의 욕심 때문에 전쟁은 끝없이 반복돼 왔고, 그 과정에서 숱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크고 작은 전쟁을 반복하면서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서양에서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말이 있고, 동양에서는 “천하가 평안하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天下雖安 忘戰必危)”라는 말이 있다. 이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화로운 시기에도 강한 군대를 만들어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 의무로 받아들여졌고, 전쟁에 잘 대비한 나라만이 전쟁의 화마를 피해갈 수 있었다.

각국의 경쟁적인 해군력 증강...전쟁 발발의 위험한 전조 현상

대항해시대 이후 해양력이 곧 국력인 세상이 열리면서 각국의 군비 경쟁은 바다로까지 확대됐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육군과 공군이 적의 군대와 도시를 직접 때리는 전력이라면, 해군은 적의 교역로를 막아 전쟁 수행 능력을 말살하는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현대에 들어서는 큰 전쟁이 발발하기 전, 각국이 경쟁적으로 해군력을 강화하는 현상이 반복됐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주요 열강들은 나라 살림이 휘청거릴 정도로 거함거포(巨艦巨砲) 경쟁을 벌였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도 각국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을 피해 여러 ‘꼼수’를 써가며 해군력 확충에 열을 올렸다. 이 때문에 해군 군비경쟁은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을 가늠하는 전조증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세계는 해군 군비 경쟁 중이고, 놀랍게도 극빈국 북한도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6월 러시아 네바강에 정박해 있는 중국 해군의 052D형 유도미사일 구축함 자오쭤함의 모습. 상트페테르부르크=타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러시아 네바강에 정박해 있는 중국 해군의 052D형 유도미사일 구축함 자오쭤함의 모습. 상트페테르부르크=타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30일, 북한이 공개한 몇 장의 사진에 전문가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기껏해야 1,500톤짜리 초계함 정도가 가장 강력한 전력이었던 북한이 무려 ‘북한판 이지스함’을 건조하는 모습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남포 해군조선소에서 건설 막바지 단계에 와 있는 모습이 포착된 실내 도크에서 건조 중인 것으로 파악된 이 전투함은 북한군이 지금까지 보유했던 그 어떤 유형의 군함보다 큰 덩치로 만들어지고 있다.

남포조선소에서 '북한판 이지스함' 건조 모습 공개

북한이 보유한 군함 가운데 가장 큰 배는 1995년을 전후로 북한에 넘어간 크리박 III급 호위함이었다. 고철로 판매된 이 배는 길이 123m, 폭 14m에 만재배수량 3,500톤 정도였는데, 이 배는 북한에 넘어갈 때부터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배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남포에 방치돼 있었을 뿐, 실제 전력으로 편입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남포 해군조선소에서 발견된 배는 크리박 III보다 훨씬 크고, 외형 역시 대단히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배가 발견된 실내 도크는 상업용 위성사진을 통해 분석한 결과 길이 170m, 폭 30m 정도로 파악된다. 도크의 크기를 감안했을 때 이 배는 130~140m 정도의 길이와 15m 안팎의 폭을 가질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러시아 해군의 현용 주력 호위함 어드미럴 고르쉬코프급과 유사한 크기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과 정보가 워낙 제한적이지만, 전체적인 함형은 중국의 052D형 방공 구축함과 유사하고, 이제 막 선체 모듈 조립이 끝난 상태로 파악된다.

이 신형 전투함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함교 외벽에 중형 이상의 위상배열레이더를 장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는 점, 함교 위에 대형 마스트를 얹을 수 있는 비교적 넓은 공간이 확보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 배가 기존의 소형 회전식 레이더 대신 중·대형 고정식 레이더를 장착하고 통합마스트를 갖춘 현대식 전투함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함교와 함포 사이의 공간, 즉 A-포지션에는 수직발사기 설치를 위한 공간까지 마련돼 있었다.

지난해 5월 러시아 해군의 최신예 고르쉬코프 제독 호위함이 쿠바 아바나항에서 출항하고 있다. 북한의 신형 전투함은 이와 유사한 크기로 추정된다. 아바나=AFP 연합뉴스

지난해 5월 러시아 해군의 최신예 고르쉬코프 제독 호위함이 쿠바 아바나항에서 출항하고 있다. 북한의 신형 전투함은 이와 유사한 크기로 추정된다. 아바나=AFP 연합뉴스


북한 신형 전투함은 러시아의 기술·부품 지원받은 듯

북한의 신형 전투함은 전체적인 크기와 레이더 장착 공간의 면적을 고려했을 때 중국보다는 러시아의 기술과 부품을 사용한 중형 방공 전투함으로 기획된 군함으로 보인다. 중국 기술이 들어갔다면 중국의 052D 구축함에 사용되는 346형 위상배열레이더를 써야 하는데, 이 레이더를 붙이기에는 함교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위상배열레이더와 이를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함정전투체계를 독자적으로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전투함은 러시아의 기성품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가장 유력한 대안은 어드미럴 고르쉬코프급에 들어가는 레이더·전투체계·동력체계·무장체계를 가져다 쓰는 것이다.

이 신형 전투함의 함교 크기를 고려했을 때 탑재 가능성이 가장 높은 레이더는 러시아제 SP-20K 위상배열레이더와 5P-27 3차원 대공수색레이더 조합이다. 러시아의 어드미럴 고르쉬코프급 호위함은 이 레이더를 ‘레두트(Redut)’ 수직발사시스템에서 발사하는 9M96E 계열 미사일과 조합해 함대방공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작됐는데, 9M96E는 기본형이 40㎞, 사거리 연장형인 9M96E2가 150㎞급 사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 미사일은 발사 후 알아서 표적을 추적하는 능동 레이더 유도 방식을 쓰고 있어 우수한 다목표 동시 교전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 신형함에 이 시스템이 탑재된다면 남포 인근 해역에서 주로 작전하며 평양 방공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신형 전투함과 유사한 크기인 러시아 어드미럴 고르쉬코프급의 경우 함대공 미사일 발사용으로 레두트 32셀, 함대지·함대함 미사일 발사용으로 3P-14UKSK라는 대형 수직발사기 16셀을 가지고 있다. 이는 북한의 신형 전투함이 금성-3형이나 바다수리-6형과 같은 함대함 미사일이나 화살-2형, 불화살-3-31형과 같은 핵탄두 탑재 순항미사일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배가 완성되면 북한은 해군 창설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다목적 전투함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방어 지향적이었던 북한 해군, 미국과 일본에 맞설 준비?

지난 2023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미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를 기해 해군 함대를 시찰하고 전략무기 발사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 2023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미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를 기해 해군 함대를 시찰하고 전략무기 발사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문제는 북한이 왜 이런 군함을 만들고 있냐는 것이다. 군함은 전차나 전투기 같은 무기와 비교했을 때 획득 비용에 0이 몇 개씩 더 붙는 값비싼 무기다. 특히 고성능 레이더와 방공무기를 탑재한 방공 전투함은 더욱 그렇다. 현대전에서 이런 전투함은 아군 함대는 물론 영해·영공에 대한 방공 임무도 맡지만, 적의 해상·지상 표적을 공격하고 나아가서는 통상파괴전략도 수행하는 자산으로 활용되는 대단히 공세적인 전력이다. 북한이 이런 자산 확보에 나섰다는 것은 방어 지향적이던 북한 해군의 임무와 역할이 공세 지향적인 성격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현재 북한이 진행하고 있는 신형 전투기와 조기경보기, 장거리 무인 정찰기 확보 노력 등과 연계해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은 한반도에 한정된 군사전략을 가지고 있던 북한이 원해(遠海)에서 미국과 일본에 대응하는 국제전쟁의 플레이어로 데뷔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국력을 기울여 해군 군비 경쟁에 나서면 그 끝에는 반드시 세계대전이 있었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최고위급 인사들은 올해부터 2027년까지를 대만 이슈로 인한 미중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라고 경고해온 바 있다. 유럽의 정치·군사·정보 최고위 관료들 역시 2024년부터 향후 5년이 러시아와의 전면전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특히 서태평양 각국은 경쟁적으로 해군력을 증강하고 있고, 그 경쟁에 극빈국인 북한도 뛰어든 상황이다.

우리도 해군력 증강 늦추지 말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너무도 평온하다. 주변국이 예정에 없던 예산을 퍼부어 군함과 잠수함을 마구 찍어내는 상황에서도 우리 공무원들은 수십 년 전에 세워둔 장기계획을 붙잡고 어떻게든 ‘예산 절감 우수 사례’를 만들어볼 요량으로 주요 건함 사업을 망치고 있다. KDDX 사업은 계속해서 밀리고 있고, 성능 부족 이슈가 제기된 한국형 호위함들도 신규 건조 사업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 개량 계획 자체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건함 사업은 의사결정부터 배가 나오기까지 최소 10년이 걸리는 사업이다. 수년 뒤,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해상교통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은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위정자들이 지금이라도 깨닫기 바란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관련 이슈태그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