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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어떻게 웨스팅하우스 마음 돌렸나... 원자력계 "통 큰 양보했을 것"

입력
2025.01.18 04:3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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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WH, 지재권 분쟁 종결하기로
체코 본계약에 청신호... 양국 협력 커질 듯
원자력계 "트럼프 2기 출범 앞두고 양보했을 것"
주요 원전 입찰 시 '지역 안배' 약속 가능성도

체코 신규 원전 예정 부지 두코바니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체코 신규 원전 예정 부지 두코바니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올해 3월로 예정된 체코 신규 원전 본계약을 앞두고 결정적 장애물이 사라졌다.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수력원자력과 벌이던 지식재산권 분쟁을 종결하기로 합의하면서다. 양측이 지재권 갈등을 해소하고 원전 수요가 급증하는 세계 주요 지역에서 협력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기대도 나온다. 다만 구체적 합의 내용이 비밀에 부쳐져 한국이 '무엇을 주고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체코 원전 수출, 최대 난관 해결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자 한국원자력산업협회 회장이 10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서울에서 열린 2025 원자력계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자 한국원자력산업협회 회장이 10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서울에서 열린 2025 원자력계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한수원과 한국전력은 "16일(현지시간)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지식재산권 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하고, 글로벌 원전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17일 밝혔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이번 합의는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 더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양측은 비밀유지 조약을 맺고 세부 합의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했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체코 신규 원전 본계약에는 청신호가 켜졌다. 앞서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수출하려는 APR1400이 자사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됐고, 미국 수출통제 규정을 어기고 신고나 허가 없이 수출하려 한다며 2022년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한수원은 독자 기술로 APR1400을 개발했다고 맞섰지만, '미국 법원 소송' 과정에서 미 에너지부는 해외 원전 수출 신고의 주체는 미국 기업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원만한 체코 원전 수출을 위해서는 웨스팅하우스와의 합의가 필수였고, 이날 공식 발표를 통해 양국 간 지재권은 극적으로 마무리됐다.

웨스팅하우스는 왜 '딜' 했을까... 원자력계는 평가 보류

미국 웨스팅하우스 전경. 웨스팅하우스 홈페이지 캡처

미국 웨스팅하우스 전경. 웨스팅하우스 홈페이지 캡처

비밀에 부쳐진 합의 내용을 두고 원자력계는 한국이 미국에 많은 것을 양보했을 거라 보고 있다. 일단 한수원이 APR1400의 지재권이 웨스팅하우스에 일부 있음을 인정했을 가능성이 나온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APR1400이 독자 기술이라면 (웨스팅하우스 측이) 몽니를 부려도 독자수출하면 되지, 이렇게 분쟁을 종결할 이유가 없다"고 짚었다.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명예교수도 "지재권 분쟁은 협상이 상당히 어려운데다가 곧 들어설 도널드 트럼프 2기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 등 분위기로 보아, 일정 부분 웨스팅하우스의 요구를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한전·한수원의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가 지재권 침해를 주장했는데, 한국이 웨스팅하우스에서 냉각재 펌프, 터빈 등 기자재를 구매하기로 하면서 갈등을 해결했다. 이때 웨스팅하우스가 가져간 돈이 바라카 원전 예산 186억 달러 중 20억 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체코 원전 수출 지재권 합의에 대해 제니퍼 그랜홈 미 에너지부 장관이 "수백억 달러 규모의 협력 프로젝트로 나가는 길을 열어주고, 민간 원자력 분야에서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유지할 놀라운 성과"라고 평가한 건 이런 맥락에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원자력 발전 사업 수주에 총력을 쏟고 있다. 사진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의 모습. 한수원 제공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원자력 발전 사업 수주에 총력을 쏟고 있다. 사진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의 모습. 한수원 제공

웨스팅하우스가 협상 과정에서 요구해온 '지역 안배' 조건이 상당부분 협상에 반영됐을 거란 관측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해외 원전 수주 입찰에서 유럽권은 웨스팅하우스가, 비유럽권은 한국이 중점적으로 진출하는 식으로 조정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한국원자력학회장인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미국은 1979년 원전 사고 이후 신규 건설이 한동안 없었고, 웨스팅하우스도 설계를 잘할 뿐 시공·운영 능력이 낮아 (수출 과정에서) 한국에 의존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웨스팅하우스의 외국 진출 시 한국에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양국 간의 원자력 분야 협력 기조가 이번 합의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한·미 정부는 '한·미 원자력 수출 및 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MOU)'을 정식 체결하면서, 앞으로 제3국으로 민간 원자력 기술 이전 시 정보 공유 체계를 만드는 등 수출 통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타결 소식이 전해진 뒤 "분쟁을 종결하기로 합의한 것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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