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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과 ‘N수생 시대’의 고통

입력
2025.01.22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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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삼수 일반화, N수생 비율 최대
교육비 대비 생산성 가장 낮은 국가
어떤 인재를 키우고 발탁하고 있나

서울 시내 한 재수종합학원의 2026년도 학생 모집 안내문. 뉴스1

서울 시내 한 재수종합학원의 2026년도 학생 모집 안내문. 뉴스1

고등학교 공부를 4년, 5년 혹은 6년 이상을 하는 시대가 됐다. 청춘들이 전문 분야를 모색하고 실력을 갈고 닦는 게 아니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높이기 위해 성인이 되어서도 고교 학업을 몇 년간이나 연장한다.

작년 전국 4년제 일반대학 신입생의 N수생 비율은 28.5%, 서울 소재 대학은 37.3%로 역대 최고치였다. 올해도 증가세는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울 ○○대 △△학과 1학년 80%가 반수생(대학 등록을 해놓고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 “재수 비용만 5,000만 원 들어간다”는 말도 들린다.

단 한 개의 팩트라도 사회의 다층적 문제들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줄 수 있는데, N수생 비율이 그렇다. N수생 비율이 높다는 사실 하나로 구체적인 국가의 자화상이 그려진다. 우선, ①한국이 학벌이라는 간판이 지배하는 곳이란 뜻이겠다. 또한 ②보상(임금 등)의 양극화가 심한 승자독식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③재수·삼수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 학벌 자산을 선점한다는 뜻이고, 그로 인해 ④계층의 이동이 거의 없음을 함의한다. 또한 ⑤20대 생산 인력의 사회 진입이 늦어져 활력이 떨어지는 사회이며, ⑥과다한 사교육비로 인해 저출생과 노후 대책 부재로 고통 받는 사회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정신의 자화상도 바꾼다고 본다. 입시의 연장으로 인한 돈·시간·불안의 과다하고 비정상적인 투입은 ⑦개인을 자기 몫을 챙기는 데 더 민감한 자아로 변형시킬 개연성이 크다. 이런 자아들이 모이다 보면, 실질적 능력보다 자격을 더 따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그 도달지점을 우리는 겪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대적인 정규직 등 양극화 확대와 재생산이 그 결과물이다. 의사 부족에 따른 의대 증원 문제을 두고 “의대 가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돈을 썼는지 아느냐”는, 비합리적 반발이 튀어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N수생 비율의 증가는 사회 병폐의 총합이 만든 결과물이지만, 이렇게 사회 병폐의 원인으로 환원되고 있다.

불법 계엄 선포로 나라를 40년 전 독재시대로 후퇴시키려 시도한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서, 생각이 꼬리를 물고 그를 이 사회의 지배 계층으로 올려놓은 계기가 떠올랐다. 9수 끝에 성공한 사법시험 합격. 초등학교 3학년이 고3이 될 정도의 오랜 기간, 그가 줄곧 사시에 도전할 수 있었던 건, 교수 집안이라는 넉넉한 가정 배경이 큰 몫을 했으리라. 사시를 수능과 등치시키긴 어렵지만, 같은 구조에서 ③이 작동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N수생 시대에 우리는 어떤 인재를 키우고 누구를 발탁하고 있는 것일까. 윤 대통령을 비롯해 ‘괴물’이 된 소위 ‘엘리트’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겁다. 만약 지금의 변호사시험 5회 제한과 같은 시스템이 있었다면, 윤 대통령을 맞이하지 않은 ‘평행세계’를 한국민을 살았으리란 생각도 든다.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고 전반적인 인식 향상으로 학벌을 과거보다 맹신한다고 보긴 어렵다 해도, 그 해악은 여전하다. 블룸버그통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명문대병’에 걸린 한국은 투입하는 교육비에 비해 근로자 생산성이 가장 낮다고 분석했다.

극악의 입시경쟁이 비생산적 낭비라는 통탄에 더해, 혹시 장기적인 권력 구조에까지 악영향을 주는 위험을 내포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드는 요즘이다.

이진희 사회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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