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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게임처럼 바꿔놓은 영어공부' 한국판 듀오링고 노리는 박종흠 이팝소프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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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언어 교육 시장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분야가 영어다. 시장조사업체 비즈니스리서치인사이츠에 따르면 전 세계 영어 교육 시장 규모는 2023년 약 940억 달러(약 137조 원)에서 2032년 약 1,831억 달러(약 267조 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 성장에 톡톡히 기여하는 것이 디지털 영어교육이다. 영어 교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된 이후 크게 달라졌다.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와 웹사이트를 이용한 디지털 교육이 부쩍 늘었다. 이 분야의 대표 기업이 미국의 신생기업(스타트업) 듀오링고(Duolingo)다. 2011년 설립된 듀오링고는 2021년 나스닥 상장 이후 기업 가치가 무려 14조 원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듀오링고의 성장 비결은 게임화(gamification)다. 게임화란 공부를 게임처럼 쉽고 재미있게 바꾼 것을 말한다. 일정 목표를 완수하면 보상받는 방식을 도입해 성취감을 높이고 끊임없이 학습 동기를 부여한다. 듀오링고는 게임화 방식을 영어 교육에 도입해 성공하면서 대상 언어를 40개 이상으로 늘렸다.
국내에서는 박종흠(48), 최영민 공동대표가 2018년 창업한 이팝소프트가 '말해보카' 앱으로 게임화 방식의 영어 교육을 선보였다. 지난해 기준으로 앱의 누적 내려받기 횟수가 600만 건을 기록하며 인기를 끄는 말해보카는 최근 TV 광고까지 시작했다. 한국판 듀오링고를 지향하는 박 대표를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나 인기 비결을 들어 봤다.
박 대표는 특이하게 외국어 공부가 취미다. 현재 사업도 취미 때문에 시작했다. 특별한 취미를 갖게 된 계기는 잊지 못할 사건 때문이다.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게임개발업체 넥슨에 들어가 유명 개발자가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컴퓨터를 처음 만졌는데 그때부터 게임을 했어요. 넥슨에서 '어둠의 전설' '택티컬 커맨더스' 게임 개발에 참여했고 '카트라이더' 등 가벼운 게임(캐주얼 게임)을 만드는 개발실장을 했죠."
넥슨에서 2004년까지 일한 뒤 함께 근무한 최 대표와 게임개발업체 J2M 소프트를 창업했다. 여기서 내놓은 자동차 경주게임 '레이시티'가 성공해 회사를 미국의 세계적 게임개발업체 일렉트로닉아츠(EA)에 매각해 큰돈을 벌었다. 회사 매각 후에도 EA에 합류해 축구 게임 '피파 온라인' 개발에 참여했다. "EA에 합류하며 영어 공부를 하게 됐어요."
EA에서 통역을 지원했지만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바람에 엉뚱하게 개발 실력을 의심받게 됐다. "본사 개발자들과 회의에서 통역을 거치다 보니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어요. 그 바람에 개발 능력까지 의심받았죠."
그때부터 그는 독하게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학원을 다니며 하루에 매일 1시간씩 영어 원서를 읽었어요. 실력이 늘었는지 궁금해 매일 30분씩 화상영어로 시험했죠. 이렇게 1년 6개월 공부했더니 영어가 부쩍 늘었어요. 통역 없이 회의에 참가하면서 사람들의 평가도 달라졌죠."
영어를 잘하게 되면서 그의 공부법이 다른 언어에도 통할지 궁금했다. 그때부터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루마니아어 베트남어 페르시아어 등 10가지 언어를 배우며 외국어 공부를 취미로 갖게 됐다. "듀오링고, 핌슬러 등 다양한 어학 앱으로 공부를 했어요. 그러면서 각 어학 앱의 장단점을 알게 됐죠."
덕분에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한다. "중국, 일본, 스페인 지역을 담당하는 팀들과 현지 언어로 회의해요."
외국어를 공부하며 그는 두 가지를 터득했다. 단어의 중요성과 매일 반복 학습을 통해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문법을 잘 알아도 단어를 모르면 말이 막혀요. 스페인어의 경우 단어를 먼저 익히고 회화와 문법 공부를 하니 3개월 만에 원어민과 대화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학교나 학원은 단어 위주로 가르치지 않는다. "학교나 학원은 문법과 회화 위주로 가르쳐요.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문장에 어떤 단어를 끼워 넣어야 하는지 몰라요. 그때까지 시중에 나와 있던 단어 학습 앱은 사지선다형이 많았어요. 실생활에서 객관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어서 주관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런 것들을 알리기 위해 2018년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죠."
그렇게 개발한 말해보카 앱은 단어와 반복 학습이라는 비결 외에 박 대표의 독특한 장기가 녹아 있다. 바로 게임성이다. "영어 공부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공부를 오래 하려면 재미있어야 해요."
그래서 일정 목표를 달성하면 위로 올라가는 승급제와 보상을 주는 게임 방식을 도입했다. 승부욕을 자극한 것이다. "어려운 괴물을 처치하면 레벨이 올라가고 외모를 꾸미거나 능력을 올리는 아이템을 획득하는 게임 방식을 공부에 도입했죠. 날마다 공부해 점수를 쌓으면 레벨이 올라가면서 학습자의 분신인 캐릭터와 학습 공간을 꾸미는 여러 아이템을 받을 수 있어요."
보상을 위한 평가는 학습과 동시에 일어난다. 이 또한 게임 개발에서 깨달은 진리다. "게임은 끊임없는 평가의 연속이죠. 괴물을 물리치고 수수께끼를 푸는 등 계속 도전 과제에 직면해요. 게임처럼 평가가 계속 일어나면 학습의 지속 효과가 커져요. 이를 위해 적절한 난이도와 보상이 필요해요."
여기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해 학습자마다 서로 다른 개인화 교육을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잊을만하면 기억을 일깨우는 반복 학습이다. "모르는 것만 계속 가르치면 학습자가 쉽게 지치고 따라가기 힘들어요. 이미 배웠지만 잊어버릴 만한 시점에 기억을 일깨우는 질문을 던져야 기억이 오래가요. 이것이 말해보카 앱의 가장 큰 차이죠. 다른 어학 앱은 복습을 이용자의 몫으로 남겨 두지만 말해보카 앱은 적절한 시점에 복습으로 기억을 환기시켜며 성취감을 높여요."
이 과정을 AI가 담당한다. 처음 배운 단어는 5분 지난 뒤 다시 확인하고 다음 날 재차 확인한다. 기억을 잘하면 복습 주기가 3주일, 50일 등으로 늘어난다. "개인마다 단어별로 기억하는 확률 자료를 AI가 분석해 학습에 적용해요. 즉 강사의 주관적 관점이 아닌 통계와 기술로 영어를 가르치죠."
AI가 학습자에게 단어를 제시할 때에도 게임업계에서 쓰는 다이내믹 밸런싱 기법이 적용된다. "게임을 잘하는 사람에게 강한 괴물이 나오고 어설픈 사람에게 약한 괴물이 나오는 식으로 사람마다 난이도를 조절하는 다이내믹 밸런싱을 접목했어요. AI가 학습자 수준에 맞춰 단어의 난이도를 정하죠."
이를 위해 개발한 것이 '이팝WSD'라는 AI다. 이팝WSD는 상황에 맞는 반복 학습을 통해 단어의 다양한 쓰임새를 가르친다. "런(run)은 60가지 뜻이 있어요. 문장과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져요. AI가 각기 다른 상황별 문장을 통해 단어의 다른 쓰임새를 알려줘요."
이런 식으로 말해보카 앱을 통해 익힐 수 있는 단어는 4만6,000개다. 단어 학습에 필요한 문장은 원어민들이 개발한다. "미국인 영국인 등 6명의 원어민이 문장을 만들고 한국인 통역 및 번역 전문가 6명이 검수해요. 이후 4명의 원어민 성우가 직접 문장과 단어 발음을 녹음하죠."
승부욕을 자극하는 게임성과 AI 덕분에 말해보카 앱의 내려받기 횟수는 누적으로 600만 건을 넘어섰다. 월간 이용자는 지난해 1월 63만 명이며 연말 기준 40만 명이다. "교육 앱은 학습 의지가 높은 연초에 이용자가 많고 연말로 갈수록 떨어져요. 그래서 교육용 앱은 새해 결심을 굳히는 연말 연초에 집중 마케팅을 하죠. 말해보카 앱도 지난해 말부터 이달 말까지 TV 광고와 지하철 광고를 해요."
매출은 월 1만9,800원의 이용료를 받는 구독형 서비스를 통해 올린다. 2023년 매출은 165억 원, 지난해 200억 원 매출을 예상한다. 지난해 매출이 늘면서 영업이익률도 2023년 5%에서 15%로 늘어날 전망이다. 투자는 지금까지 본엔젤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싱가포르의 알로이스 벤처투자사 등으로부터 115억 원을 받았다.
올해는 기업이 직원교육용으로 제공하는 기업간거래(B2B)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한국은행이 말해보카 앱을 B2B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죠. 올해 B2B 사업을 활발하게 할 예정입니다."
박 대표는 AI가 발달해도 영어 공부가 필요하다고 본다. "AI가 사람의 머릿속 생각을 읽지 않는 한 실시간 번역이 힘들어요. 따라서 영어를 불편하게 사용하지 않으려면 계속 공부해야죠."
참고로 그는 영어 공부를 잘하기 위한 방법으로 발성을 꼽았다. "말을 잘하려면 입이 잘 움직여야 해요. 영어 원서를 읽을 때 소리내 읽어서 입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지하철에서는 묵음으로 읽으면 돼요. 원서는 사전을 자꾸 찾아봐야 하는 책보다 쉬운 책을 골라야 오래 공부할 수 있어요."
앞으로 박 대표의 목표는 해외 진출이다. "2023년 일본어판을 통해 일본에 진출했어요. 1분기에 스페인과 대만 등에도 진출해 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칠 생각입니다. 이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확대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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