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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 막은 경찰들, 진압복·헬멧도 없이 몸과 방패로만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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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서부지법 난입 폭력사태 당시 법원 앞을 지키던 경찰들이 진압복(신체 보호복)과 헬멧 등 제대로 된 보호장비 없이 몸과 방패로만 버텨야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앞선 집회들에서 진압복과 헬멧을 쓴 모습에 '과잉 진압'이라며 부정적인 여론이 생기자 이를 의식한 조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극도로 흥분해 밀려 들어오는 시위대를 막을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경찰 병력이 대폭 축소된 점도 경비 실패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2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서부지법에 들이닥친 전날 오전 3시쯤 청사를 지키던 경찰들은 진압복과 헬멧 등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시위대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단 이유였다. 지난해 11월 민주노총의 대규모 서울 도심 집회가 계기가 됐다. 당시 '과잉 진압' 논란이 일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야당 의원들이 경찰에 사과를 요구했다. '12·3 불업계엄 사태' 이후 연일 탄핵 찬반 시위가 벌어지며 경찰 부담은 더 커졌다. "상대는 봐주면서 우리에게만 엄혹하다"는 비난이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연일 터져 나와서다. 서울청 기동대 간부는 "진압복이나 헬멧을 쓰면 (시위대를) 일부러 검거하려 한다는 비난에 시달린다"며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걸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보호장비 없이 현장을 지켰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상황에서 폭도로 돌변한 시위대가 한꺼번에 달려들자 손을 쓰기 어려웠다는 게 당시 현장에 투입된 경찰들의 설명이다. 영장 발부 후 시위대 300여 명이 화분과 병 등을 마구 집어 던지며 밀고 들어와 보호장비 없던 경찰들이 머리에 피를 흘리고 크게 다치면서 방어막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기동대 관계자는 "수백 명이 멀리서 물건들을 던지며 힘으로 밀어붙였다"며 "(시위대가 던진 물건에) 머리를 다쳐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지는 이들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부상자가 속출한 뒤에야 경찰들은 보호장비를 착용할 수 있었다. 서부지법 폭력 사태로 인한 경찰 부상자는 51명으로 이 중 7명이 손가락 인대 파열, 무릎 골절, 머리와 이마 열상 등의 중상자다.
영장 발부를 기점으로 인력을 기존의 3분의 1로 줄인 경찰 지휘부 대응에도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오전 2시 50분을 기준으로, 발부 전 경찰 인력은 48개 부대(1부대당 60명) 약 2,800명이었으나 발부 후엔 3개 기동단 산하 17개 부대(약 1,000명)뿐이었다. 약 3만 명 수준이던 시위대가 1,000명 정도로 줄자 경찰 인력도 함께 축소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18일부터 시작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전후로 시위대 흥분 상태가 최고조였다는 점을 감안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8일 오후 1시 51분쯤 윤 대통령을 태운 법무부 호송용 승합차가 법원에 도착하자 지지자들은 "윤석열"을 외치며 오열하거나, 팔짱을 낀 채 드러누워 정문을 막았고 경찰을 폭행하다 연행됐다. 오후 3시쯤 불어난 인파는 법원 정문 바로 앞과 마포대로 10개 차로를 무단 점거한 채 불법 집회를 이어갔다. 또 일부 지지자들은 오후 7시 30분쯤 윤 대통령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끝난 뒤 서부지법 청사를 나서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량을 포위해 습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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