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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조선간장 미생물서 찾은 진간장 골드…30년 만의 신제품에 한식 대가도 맛 인정했죠"

입력
2025.01.23 04:30
수정
2025.01.23 10:1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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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표, 강한 맛 덜어낸 진간장 골드 출시
진간장 제품 중에선 1994년 이후 처음
2020년 개발 착수, 엎어지길 수십 번
"우리 식탁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

20일 충북 오송읍에 위치한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에서 만난 이주희(왼쪽) 샘표 마케팅 1실장과 백은종 우리발효연구중심 발효1팀장이 신제품 진간장 골드를 들고 있다. 오송=박경담 기자

20일 충북 오송읍에 위치한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에서 만난 이주희(왼쪽) 샘표 마케팅 1실장과 백은종 우리발효연구중심 발효1팀장이 신제품 진간장 골드를 들고 있다. 오송=박경담 기자


2023년 12월. 이주희 샘표 마케팅 1실장30여 년 만에 개발한 진간장 신제품 출시를 위한 마지막 관문만 남겨두고 있었다. 한식 대가, 요리 연구가, 요리책 저자 등 맛에 정통한 전문 패널 30인과 박진선 샘표 대표의 평가만 통과하면 됐다. 연구·개발(R&D)을 함께한 샘표 연구진·셰프·마케팅팀 등이 자신했던 시제품이었다. 하지만 탈락 판정을 받았다.

사실 샘표가 4년 전인 2020년 무렵 시작한 새 진간장 개발 과정 자체가 엎어지고 뒤집어지는 일의 연속이었다. 엄격하고 혹독한 내부 평가 때문이다. 20일 샘표가 2024년 12월 선보인 진간장 신제품 '진간장 골드'가 출발한 곳, 충북 오송읍의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에서 이 실장, 백은종 발효1팀장을 만나 각고의 노력 끝에 나온 진간장 골드의 개발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실장은 샘표가 진간장 골드 개발을 시작한 계기로 식문화 변화를 들었다. 샘표가 1966년 '진하고 구수한 맛의 간장'이란 뜻을 담아 출시한 진간장은 상품 이름이 보통 명사가 됐을 정도로 식생에 깊이 뿌리내렸다. 진간장 중 가장 최근 제품인 '진간장 금F3'1994년 등장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간장이다.

진간장은 주방 필수 양념으로 알아서 잘 팔리는 제품이지만 샘표는 식재료, 주방 도구 등 식문화 전반이 달라진 점을 반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30년 전만 해도 간장은 맛과 향을 세게 만들었다. 식재료 보관 상태가 떨어졌던 당시 잡내를 잡으려면 양념이 강해야 해서다.

반면 요즘 간장에 기대하는 맛은 달라졌다. 이 실장은 "진간장으로 조리했을 때 음식이 너무 진한 맛이 나오지 않게 설계했다"며 "식재료의 맛을 살릴 수 있도록 간장 염도를 낮추고 쿰쿰한 냄새 말고 신선한 향이 나도록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2011년산 최고의 간장 꺼낸 샘표



샘표의 진간장 제품들. 왼쪽부터 1966년 출시한 진간장, 1994년 나와 가장 많이 팔린 진간장 금F3, 2024년 12월 내놓은 진간장 골드. 샘표 제공

샘표의 진간장 제품들. 왼쪽부터 1966년 출시한 진간장, 1994년 나와 가장 많이 팔린 진간장 금F3, 2024년 12월 내놓은 진간장 골드. 샘표 제공


진간장 골드에 대한 아이디어는 우리발효연구중심에 넘어와 개발 단계로 들어갔다. 간장, 고추장, 된장의 발효를 연구하는 우리발효연구중심맛에 집중하는 우리맛연구중심과 함께 샘표의 R&D 양대 축이다.

백 팀장 등 간장 연구진은 샘표가 개발한 간장 원액 중 최고 품질로 평가받는 2011년산 조선간장의 미생물을 활용하기로 했다. 진간장은 밀을 넣은 양조간장 기반인데 여기에 콩만 쓴 조선간장을 이용하는 결정이었다. 샘표는 시골 할머니가 연도별로 담근 간장 장독대를 보관하듯 잘 만든 간장 원액이나 원액을 이루는 미생물을 따로 갖고 있다.

2011년산 조선간장에 들어있는 미생물은 발효 과정에서 쿰쿰한 냄새를 내거나 유해한 성분이 자라는 걸 막는 능력이 뛰어났다. 연구진이 추구하던 은은하면서 신선한 맛을 내기에 안성맞춤인 원재료였다. 백 팀장은 "안전하고 우수한 미생물만 있으면 간장 등 장류를 대량 생산 가능하다"며 "미생물을 보관하는 종자 은행에 들어가는 열쇠는 소장님과 담당자만 지니고 있다"고 귀띔했다.

연구진은 2011년산 조선간장에서 분리한 미생물을 가지고 시험을 반복했다. 메주, 소금물로 담그는 간장 원액을 50개 넘게 만들었다. 온·습도 등 미생물이 메주에서 자라는 배양 조건에 차이를 줘 맛과 향이 저마다 달랐다. 이 중 최종 후보 5개를 추린 뒤 혀가 예민한 주부 10인의 평가를 거쳐 최적의 원액을 골랐다.


"좋은 맛 생각, 1등의 자세" 주문 내린 대표



충북 오송읍에 위치한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 간장, 고추장, 된장 등 장류 제품을 연구한다. 샘표 제공

충북 오송읍에 위치한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 간장, 고추장, 된장 등 장류 제품을 연구한다. 샘표 제공


경기 이천공장 메주방에서 이 배양 조건을 지킨 메주를 만들어 간장 원액을 대량 생산한 샘표는 2023년 초 시판용 진간장 개발에 나섰다. 단맛, 짠맛, 감칠맛, 신맛 등 다양한 맛을 조절해 만든 진간장 시제품은 불고기, 두부조림, 감자조림, 계란밥 등 음식에 넣었을 때 조화로운지 따져보는 요리 테스트를 거쳤다.

맛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더라도 안심은 금물. 마치 이상형 월드컵처럼 더 나은 시제품이 나오면 자리를 내줘야 했다. 한 달에 두 번, 일 년 내내 치러진 선두 뽑기 대회 동안 최소 열다섯 차례 일등이 바뀌는 과정을 겪고 나온 게 30인의 전문 패널, 박 대표 앞에 보낸 시제품이었다.

박 대표는 늘 '1등의 자세'를 강조한다고 한다. "맛있는 간장인지는 알겠는데 남들도 만들 수 있진 않은지"라며 "덜 자극적이면서 좋은 맛을 생각해야 한다"는 시제품 평가가 대표적이다. 연구진은 이런 박 대표의 주문을 반영했다. 2024년 6월 시제품 3개를 더 개발해 추가 맛 평가를 통해 진간장 골드 개발을 마쳤다.

"인위적 향 없이 자연스러운 풍미와 적절한 감칠맛이 매력적", "텁텁하지 않은 깔끔한 맛으로 다양한 요리에 쓸 수 있다" 등 일반 소비자 등을 대상으로 한 평가를 보면 진간장 골드는 샘표가 2020년 개발에 들어갔을 때 원했던 맛에 가까워졌다. 앞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던 한식 대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실장은 "우리 회사로 이직하신 분들이 자주 얘기하는 게 샘표는 이 정도 했으면 개발이 끝났다고 할 법한데도 한 번 더 테스트해보자고 한다더라"며 "진간장 골드가 우리 식탁을 더욱 풍요롭고 맛있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양조간장, 조선간장 차이는

양조간장은 콩과 밀을 사용해 간장 주원료인 메주를 담근다. 밀이 같이 들어가면 콩만 넣었을 때보다 미생물 발효가 잘 일어나 대량 생산에 유리하다. 기꼬만 등 일본의 유명 간장 브랜드도 양조간장이 많다.

메주에 콩만 들어가는 조선간장은 과거부터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고 해 집간장이라고도 불린다. 샘표는 콩을 제어하는 기술을 확보해 2001년 국내 최초로 조선간장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샘표가 장 세계화를 위해 내건 제품 연두는 조선간장을 기본으로 한다.


오송= 박경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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