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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2050년 같다"는 한국 이 식당... 130년 전 독일이 원조라고?

입력
2025.01.31 07:00
25면

[이용재의 식사(食史)]
<98>무인식당 오토매트의 기원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고객들이 2021년 12월, 서울 마포구 롯데리아 L7홍대점에서 키오스크로 햄버거를 주문하고 있다. 뉴시스

고객들이 2021년 12월, 서울 마포구 롯데리아 L7홍대점에서 키오스크로 햄버거를 주문하고 있다. 뉴시스

X(옛 트위터)에서 쇼트폼을 우연히 보았다. 외국인의 홍대입구역 인근 롯데리아 방문기였는데 무인매장이 그들에게는 매우 신기하게 다가온 것 같아 보였다. 키오스크에 주문을 넣고 기다리면 천장에 달린 스크린에 주문 번호가 뜬다. 영수증의 바코드를 읽히면 벽에 달린 작은 문 가운데 하나의 번호를 알려준다. 문을 두드리면 열리니 음식을 꺼내와 먹을 수 있다.

이러한 설정이 미래지향적이라 느꼈는지 영상에는 "한국의 맥도날드는 2050년"이라는 자막이 계속 딸려 나왔다. 2050년이라… 확인차 나도 가서 햄버거를 먹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무인이라고 했지만 벽 뒤에서 직원들이 조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했다. 그저 사람이 음식을 건네는 셀프서비스의 마지막 단계를 무인화했을 뿐이었다.

대구 음식산업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지난해 11월 라면조리로봇을 지켜보고 있다. 라면조리로봇은 라면 1개를 끓이는 데 3분 30초, 4개의 라면을 끓이는 데 7분이 걸린다. 대구=뉴스1

대구 음식산업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지난해 11월 라면조리로봇을 지켜보고 있다. 라면조리로봇은 라면 1개를 끓이는 데 3분 30초, 4개의 라면을 끓이는 데 7분이 걸린다. 대구=뉴스1


세계 최초의 무인식당 '오토매트'

문이 딸린 개별 공간에 음식을 넣고 판매하는 발상은 사실 매우 오래되었다. 미래인 2050년이 아니라 한참 과거인 189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독일 베를린에서 탄생한 무인식당 오토매트(Automat)다. 잔돈을 넣고 원하는 음식을 꺼내 가는 방식이었으니 오토매트는 한마디로 거대한 자동판매기였다. 독일 베를린 동물원에 '퀴시사나'라는 상호로 문을 열었는데 영업 개시하고 첫 일요일에 샌드위치 5,400개, 와인 등 주류 9,000잔, 커피 2만2,000잔을 팔았다.

뜯어보면 여러모로 흥미로운 구석이 많았다. 일단 상호인 퀴시사나는 '낫는 곳' 혹은 '건강해지는 곳'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문장(Qui si sana)을 붙여 만든 조어였다. 오토매트라는 명칭 또한 '자발적으로 움직이는'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αὐτόματος)가 라틴어(automatus)를 거쳐 자리를 잡은 독일어였다. '자동'이라는 의미의 영단어 '오토매틱(Automatic)'과 어원이 같다.

세계 최초의 무인식당이자 자동판매기인 독일 베를린 오토매트의 모습. 위키피디아

세계 최초의 무인식당이자 자동판매기인 독일 베를린 오토매트의 모습. 위키피디아

개장과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끈 덕분에 오토매트는 곧 유럽으로 세를 뻗어 나갔다. 1897년에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에 출품 및 시연되었으며 곧 오스트리아 빈(198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1900년) 등 요지에 설치되었다. 그리고 기세를 몰아 잠재력이 큰 대서양 건너 미국 시장 진출을 노렸다.

그런 가운데 마침 요식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프랑크 하다트(1850~1918년)가 1900년, 유럽에서 오토매트를 경험하고는 관심을 가졌다. 마침 오토매트의 고향인 독일 바이에른주 태생이었던 하다트는 나름의 사연을 가진, 자수성가한 인물이었다. 그는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및 형제 자매들과 미국으로 건너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정착했다.

미국 '혼앤드하다트'의 탄생

어려운 형편을 돕느라 아주 어릴 때부터 음식점에서 접시를 닦고 조리를 거들었던 그는 열세 살 때 프렌치드립 커피 추출법을 배운다. 이름처럼 1795년 프랑스에서 개발된 프렌치드립은 법랑이나 도자기 재질에 금속 필터를 내장한 커피 포트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커피는 간 콩을 물에 담아 함께 끓여 쓰고 잡맛이 많이 났으니 프렌치드립은 확실히 우세한 추출법이었다.

혹시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1876년, 하다트는 편도 기차표를 끊어 필라델피아로 올라간다. 마침 필라델피아에서는 미국 독립기념 100주년을 맞이해 박람회가 열려, 전국에서 찾아온 관람객들로 카페며 레스토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뭐라도 팔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하다트는 음식점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며 기회를 노렸지만 아무도 프렌치드립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뉴올리언스로 쓸쓸하게 돌아와 음식점에서 접객을 하며 돈을 최대한 모은다. 그리고 1886년 결혼과 동시에 다시 필라델피아로 올라간다. 이번에는 프렌치드립 커피를 확실하게 팔아보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은 것이다. 기회만 노리며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하던 1888년의 어느날, 그는 조셉 혼(1861~1941년)의 신문 광고를 보았다. 요식사업 파트너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당신이 찾는 사람이오.' 필라델피아의 유복한 집안 출신인 혼이 어머니에게 1,000달러를 빌려 낸 광고에 유일하게 하다트 한 사람만이 답을 했다. 그것도 대강 찢어낸 종이 쪼가리에 갈겨쓴 저 단 한 문장이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두 사람은 같은 해 12월 22일 첫 합작 레스토랑을 열었으며 곧 사업이 번창해 필라델피아의 번화가 곳곳에 분점을 낼 수 있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운영된 무인식당 '혼앤드하다트'의 홍보 엽서. 1930년대 모습으로 추정된다. 위키피디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운영된 무인식당 '혼앤드하다트'의 홍보 엽서. 1930년대 모습으로 추정된다. 위키피디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1902년 문을 연 무인식당 '혼앤드하다트' 1호점의 모습. 위키피디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1902년 문을 연 무인식당 '혼앤드하다트' 1호점의 모습. 위키피디아


"더 위생적이고, 24시간 운영"

이처럼 사업이 잘되는 가운데 두 사람은 무인 레스토랑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당시 보스턴에서 '톰슨스 스파'라는 무인 레스토랑이 운영되고 있기는 했지만, 앞서 언급했듯 하다트가 1900년 독일 방문에서 경험한 오토매트가 신사업 결정의 초석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퀴시사나의 기계를 들여와 미국에서 사업을 벌이기로 작정했다.

당시로서는 거액인 3만 달러를 지불하고 오토매트를 구매했지만 일은 마음먹은 것처럼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다. 1년을 들여 제작한 설비가 증기선에 실려 바다를 건너오다가 충돌해 침몰하는 사고가 벌어진다. 보험 덕분에 비용은 회수할 수 있었지만 또 1년을 기다려 받은 두 번째 설비는 미국의 창고에서 폭발이 일어나 손상을 입었다.

로봇 바리스타가 2021년 11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카페쇼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로봇 바리스타가 2021년 11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카페쇼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간신히 고쳐 1902년 6월 2일 필라델피아의 체스트넛가에 무인 레스토랑 '혼앤드하다트(Horn & Hardart)'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오토매트는 큰 인기를 누렸고 혼과 하다트는 1905, 1907, 1912년에 각각 2~4호점을 냈다.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기계를 직접 고안해 사업을 확장했다. 하다트의 아들인 프랑크 2세가 특허를 내고 뉴욕으로 지점을 내는 등 확장의 선두에 섰다.

그렇게 오토매트가 미국 외식계에 정착했다. 소비자들은 음식이 조리 후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오토매트가 더 위생적이라 여겨 선호했다. 20세기 초였으니 충분히 믿을 만한 논리였다. 또한 원하는 음식을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오토매트는 사랑을 받았다. 이를테면 아침부터 먹겠다는 사람들 덕분에 1964년, 오전 8~11시에만 뉴욕 지점 전체에서 파이를 평균 822쪽이나 팔았다.

한때 뉴욕 맨해튼에서만 40군데의 혼앤드하다트의 오토매트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으나 세상에 영원히 유지되는 것은 없었다. 1968년 필라델피아의 1호점이 66년 만에 문을 닫았고, 맨해튼에서는 서서히 버거킹으로 바뀌어 마지막 지점이 1991년에 문을 닫았다. 패스트푸드점의 본격적인 부상과 더불어 찾아온 쇠락이었다. 5센트 주화(니켈)만 투입 가능한 오토매트에 비해 패스트푸드점은 대금 지불이 유연하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춘 오토매트는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몇 번 재등장했다. 2006년에는 뱀(Bamn!)이라는 회사가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에 네덜란드식 오토매트를 열었으나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다만 햄버거나 프렌치프라이 외에도 크로켓 같은 전통 튀김 음식을 파는 네덜란드의 오토매트는 아직도 현역으로, 피보라는 대표 브랜드가 60군데의 매장을 직영 및 프랜차이즈로 운영하고 있다.

모델들이 2021년 12월, 무인매장으로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롯데리아 L7홍대점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받는 것을 시연하고 있다. 뉴스1

모델들이 2021년 12월, 무인매장으로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롯데리아 L7홍대점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받는 것을 시연하고 있다. 뉴스1

2015년에도 잇사라는 기업이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 그리고 워싱턴에 여섯 군데의 오토매트를 선보였지만 2019년에 전부 폐업했다. 코로나19 확산을 기회로 여겨 2021년을 기점으로 몇몇 오토매트들이 다시 등장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및 비접촉 음식 판매의 가능성을 발판 삼아 사업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는 시도였는데 소비가 왕성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이미 폐업한 곳도 있다.

혼앤드하다트의 업적 또한 오늘날 상당 부분 퇴색됐다. 패스트푸드점에 밀리는 가운데서도 이렇다 할 사업 다각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게 실패의 원인이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브랜드만 남아 여러 차례 소유권이 바뀌다가 2022년 11월 새로운 홈페이지와 함께 재등장했다. 현재는 커피와 각종 굿즈만 팔고 있지만 시기를 보아 오토매트를 다시 열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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