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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일본, 대한민국의 문제와 해법을 보여주는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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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 한일 간 차이점에 주목해 온 기존 일본론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나라의 차이점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본은 ‘축소 지향의 나라’(이어령, 1982년) 혹은 ‘가깝지만 먼 나라’(이원복, 2000년)로 정의되었고, 1990년대에는 일본 문화가 ‘있다’(전여옥, 1993년) 혹은 ‘없다’(서현섭, 1994년)는 식의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일본 사회의 이질성을 강조하는 담론이 주를 이룬다. 일본 사회나 문화에 대한 강연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임에도 일본에 대해 정서적 거리감이 큰 데에는, 그럴 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일본은 불과 한 세기 전 한반도를 점령했던 식민 지배의 주체이자, 세계를 위험에 빠뜨린 전범 국가였다. 비록 불행했던 역사는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일본을 ‘위험스러운 이방인’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더구나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의 관점 차이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특히 이 사안은 단순한 외교적 갈등이라기보다는, 두 나라의 사상적, 정치적 내부 사정과도 깊이 연관된 복잡한 문제다. 한국에서는 반일과 친일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좌우를 가르는 풍토가 만들어져 버렸고, 일본에서는 우파 정치인이 ‘혐한’ 정서에 편승해 대중적 지지를 얻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웃나라에 대한 담론이 당파성까지 띠게 되면서, 차분하고 냉정한 사회적 반응을 기대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한일 간 차이와 거리감을 강조하는 시각이 지금 두 나라의 사회적, 문화적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 일본 역시 1945년 패전 이후 롤러코스터 같은 부침을 경험했다. 전쟁 폐허 속에서 놀라운 속도로 재기해 경제 대국으로 재도약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버블 경제’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한국의 ‘IMF 사태’와 비견될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충격을 받았다. 일본 사회를 통째로 뒤흔든 대지진을 몇 차례나 경험했고, 전대미문의 원전 사고도 있었다. 한때 일본 기업들이 전 세계 첨단 기술을 선도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인터넷 시대 이후 급변하는 글로벌 정보 환경에는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신랄한 비판도 있다. 한국 사회가 워낙 빠르고 격렬하게 변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체된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 한 세기 일본 사회도 격동했다.
◇ 차이점보다 공통점에 주목하는 것이 상호 이해의 출발점
한편, 인터넷과 네트워크 문화를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한일 간의 정보 교류와 인적 왕래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해졌다는 점도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양국 간에 엄청난 양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오가고 있다. 물리적 이동에는 여전히 시간과 비용이 들지만, 정보 교류에서는 KTX조차 무색할 정도로 빠른 ‘실시간 하이웨이’가 열린 셈이다.
물론 정보 교류가 항상 상호 이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잘못된 정보는 오해를 키우고, 과잉 정보가 편향된 시각을 강화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사이를 오가는 정보의 양과 질이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제는 국경을 넘나드는 미디어와 정보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지 않고는 일본 사회나 한일 관계를 논할 수 없는 시대인 것이다.
반세기 동안의 이런 변화를 반추하자면, 모든 변화가 반드시 미래지향적이지는 않다는 점을 실감한다. 미래로 나아가려는 움직임뿐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는 반동의 에너지 역시 강력하다. 이런 현상이 일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12·3 불법계엄 선포 이후 사회적 혼돈이 계속되고 있다. 이 역시 진보와 반동의 시계추가 교차하는 역동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일 것이다. 사회를 새롭게 하는 의지만큼 이를 저지하는 힘도 크다는 사실은, 한 사회의 현주소를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미디어와 정보 환경의 글로벌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제는 한일 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과 공동 과제가 점점 더 두드러진다. 한국과 일본 모두 고령화, 저출생, 글로벌 기술 혁신 등 비슷한 사회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두 나라의 젊은 세대에는 정서적, 경험적으로 놀랄 만큼 많은 공통점이 있다.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 제이팝과 일본 애니메이션 등 대중문화는 두 나라의 젊은이들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문화적 연결고리로 기능한다. 그보다 이들이 입시, 취업, 회사 생활, 연애, 결혼 등에서 느끼는 고민과 어려움도 매우 비슷하다. 한일 간 차이점에만 주목하면, 이런 공통점들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차이점과 거리감을 강조하기보다는 공통된 문제의식과 과제 속에서 공감하고 함께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상호 이해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 5년의 연재를 마치며
2019년에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을 연재하기 시작할 때에는 이렇게 긴 여행이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50회만 넘겨도 만족스럽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130회를 넘겼으니 개인적인 목표는 충분히 달성했다고 느낀다. 5년간 이어진 이 칼럼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에 못지않게 공통점에도 주목하고자 노력했다. 과거를 모르면 현재도 없다는 교훈도 중요하지만, 과거에만 머물다가 현재를 오독할 위험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기존 일본 담론을 극복하고, 일본 사회의 ‘현재’를 직시하고 싶었다. 이 시도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스스로 평가할 길은 없지만, 현실적이고 건강한 ‘일본론’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칼럼을 연재하면서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다. 온라인 공간에 공개된 글인 만큼 댓글도 많이 달렸는데, 이를 통해 이웃나라 일본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꼈다. 동시에 일본을 향한 감정이 얼마나 복잡한지도 실감했다. 대중문화나 트렌드를 다룬 가벼운 내용에도 ‘친일이냐, 반일이냐’라는 흑백 논리로 날을 세우는 ‘악플’이 달리곤 했다. 때로는 일본 사회에 대한 과도한 동경과 찬양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댓글이 모든 사람의 생각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낯선 이들의 감정적인 반응에 상처받는 성격은 아니어서, 악플 때문에 괜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지만, 일본 사회에 대한 부정확한 비난이나 근거 없는 찬사를 부채질하는 글을 세상에 더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담론이나 정보원에 의존하기보다는, 내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일본 사회를 분석하고 기술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본의 대학에 몸담으며 젊은 세대와 솔직하게 교류한 경험이 일본 사회의 현주소를 이해하는 자산이 되었다. 십수 년이 넘게 신뢰를 쌓아온 일본의 연구 동료들과의 허심탄회한 토론 속에서도 많은 통찰을 얻었다. 2019년 12월 초에 게재된 첫 번째 칼럼은 “미디어 인류학자가 안내하는 이 길에 독자들이 함께하기를 바란다”는 문장으로 마무리했다. 2025년 2월까지 이어진 긴 여정에 함께해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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