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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남성, 윤 대통령 탄핵보다 이재명 집권 가능성에 거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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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주요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리포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2030 세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성별 갈등이 아닌 정치 성향이 화제의 중심에 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력 사태를 계기로 청년 남성들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30 여성들이 윤 대통령 탄핵 집회 주역으로 부상한 것에 대한 반발로 2030 남성들이 ‘우파 결집’에 나섰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대통령 탄핵 찬반을 놓고 그려지는 남녀 청년층의 상반된 정치 구도는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는 걸까. 지금 거론되고 있는 구도는 앞으로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2030 여성들은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한 여의도 집회의 주역이었다. 이들은 십수 년 갈고닦은 아이돌 팬덤 문화를 집회에 이식, 과거와 다른 집회 모습을 보여줬다. 과격한 구호가 난무하기도 했던 정치 집회는 응원봉이 출렁이는 축제의 장처럼 보였다. 반면 2030 남성들은 거리로 나서지 않았다. 일각에선 “보수화된 청년 남성들이 탄핵에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틀린 주장이었다. 당시 청년 남성 다수는 탄핵에 찬성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호각을 다투게 된 요즘도 그 경향성은 유지되고 있다. 한국갤럽이 공개한 1월 통합 여론조사에서도 20대 이하, 30대 남성들의 탄핵 찬성 비율은 각각 53%(반대 35%), 62%(반대 31%)로 국민 전체 평균(찬성 60%, 반대 34%)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2030 남성들은 여의도 집회에 나서지 않은 걸까? 기존 정치 지형의 연장선에서 살펴야 한다. 젠더 갈등이 격화하며 나뉘기 시작한 2030 남녀의 정치적 태도는 지난 대선을 거치며 고착되었다. 지금 청년 세대에게는 젊음이라는 공통성보다 성(性)이라는 차별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남성들은 진보 진영에, 여성들은 보수 진영에 여전히 강한 반감을 갖는다. 이 정서가 두 집단에 서로 다른 강도의 집회 참여 동기를 제공했다.
여의도 집회의 핵심 구호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컨센서스도 형성돼 있었다. 바로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의 집권이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때만 해도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는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이 사실은 2030 여성들에게 집회에 참여할 유인이 되었지만 남성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됐다. 내심 탄핵에 찬성하면서도 ‘죽 쒀서 민주당 줄 순 없다’는 거부감에 거리로 나설 동력까지 얻진 못한 것이다. 대신 이들은 제도권 안에서의 해결을 기다리며 경과를 주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최근 부상한 ‘청년 우파’는 전혀 다른 맥락에 있다.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가 과거보다 젊어진 건 틀림없다. 2030 남성들이 극우로 이동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기존 극우‧강성보수 성향의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그래서 주목도가 높아진 걸로 보는 게 타당하다.
청년층에서 극우나 강성보수 세력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2030 남성들이 대체로 진보적 성향을 띠던 10여 년 전에도 강성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는 활성화됐었다. 이들은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때도 일정 규모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당시 이들이 보이지 않았던 건,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건이 처음 있는 일이라 그걸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홍준표 대구시장이 “숨지 말자. 부끄러워하지도 말자”라고 했을까. 보수 정당의 폐허 위에 선 홍 시장의 외침에 고령층은 화답했다. 손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청년들은 그러지 못했다. 자신의 보수 정체성을 부끄러워하는 ‘샤이(shy) 보수’로 남았다. 그런데도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는 20~30대에서 각각 8% 이상을 득표했다. 온건 보수 세력이 유승민‧안철수 후보로 이탈했던 걸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였다.
사안의 경중으로 치면 국정농단보다 비상계엄‧내란 사태가 훨씬 엄중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청년들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두 번의 패배는 없다”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기존 보수 성향 종교단체에 더해, 몇 년 사이 급성장한 극우 유튜브 채널들도 시민단체처럼 조직을 결속하고 있다. 이들의 집회 영상에는 젊은 신자, 2030 구독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정치권이 ‘청년 우파’를 적극 비호하고 있다는 것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와 다른 점이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체포 직전에도 이들을 치하했다. ‘청년 우파’들이 얻는 정치적 효능감과 자신감은 8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작지만 강한’ 이들의 목소리는 당분간 계속될 걸로 보인다.
‘여의도의 2030 여성’과 ‘서부지법의 2030 남성’이라는 프레임은 정치권과 미디어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2030 여성들은 탄핵을 외치며 응원봉을 흔들었는데 2030 남성들은 탄핵에 반대하며 서부지법에서 폭동을 일으켰다는 대립 구도는 선명하고 자극적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미디어가 말하지 않는 사실들이 숨겨져 있다. 서울 생활인구 데이터에 따르면 1월 18일 밤 11시 서부지법 집회 인근에 모인 20~30대 여성은 각각 8.1%와 10.6%로 또래 남성들(20대 6.1%, 30대 9.4%)보다 많았다. 1월 15일 한남동 집회의 2030 남녀 비율도 각각 16.9% 대 16.6%로 비슷했다.
서부지법 폭동도 그렇다. 이 사태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66명(28일 현재 63명 구속) 중 30대(21명)가 가장 많은 건 맞다. 하지만 그 뒤를 이은 건 50대(15명), 40대(11명), 60대(10명)다. 20대(8명)는 10대(1명) 다음으로 적었다. 많은 이가 여의도 집회에 나선 2030 여성과 대비되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 2030 남성의 존재를 강조했지만, 서부지법 폭동의 주요 세력은 청년들이 아니라 중장년들이었다고 보는 게 사실에 더 부합한다.
유권자라는 존재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그 성격이 규정되곤 한다. 이번 탄핵 사태에서도 각 진영은 저마다의 유불리를 바탕으로 2030 세대를 정의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동원과 낙인이 세대 내에서, 그리고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고 심화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30 남성들 사이에선 “극우화했다”는 진보 진영과 그 지지자들의 평가에 반발하며 “이래서 민주당은 안 된다”라는 정서가 확산하고 있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탄핵이라는 거대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2017년 대선처럼 진보 진영에 많은 표를 주진 않을 걸로 예상된다.
최근의 사건들을 계기로 국민의힘에 대한 2030 여성들의 비판적 인식은 한층 강화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2030 남성들의 반발도 앞서 언급한 이유로 더 커지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같은 젠더 갈등 이슈가 없더라도, 2022년 대선과 유사한 성별 대결 구도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차이가 있다면 기존 갈등은 청년층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었고, 앞으로의 갈등은 정치권과 미디어의 동원과 낙인이 만들어낸 성격이 짙을 거라는 사실이다.
2016년 청년정책 싱크탱크 ‘청년정치크루’를 결성했다.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청년들이 직면한 과제를 정책으로 풀어내자는 취지로 뛰어왔으며, 현재는 각종 미디어에서 세대와 정치를 진단하는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캐스팅 보트’,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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