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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도가 된 남성들의 테러, 오직 평등을 향한 투쟁으로 답해야

입력
2025.02.01 04:30
24면

<192>극우 정치 무대에 오른 2030 남성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서한영교 작가가 격주로 글을 씁니다.

나는 극악무도함의 중심이다.

실비아 플라스 '세 여인' 중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무부 호송차를 타고 공덕오거리를 지나는 가운데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박시몬 기자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무부 호송차를 타고 공덕오거리를 지나는 가운데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박시몬 기자

윤석열이 체포된 그날,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 한 번도 안 깨고 잠이 든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뉴스 속보를 챙겨 보느라 눈을 슴벅이던 계엄의 새벽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아침이 온통 상큼했다. 이제야 새해가 시작된 기분이었다. 아침부터 손발톱을 깎고 책장 정리를 했다. 지인들에게 새해 안부 인사를 돌리고 새해 계획을 세웠다. 새벽을 조각내던 속보와 뉴스들을 '한동안 보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서울서부지법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던 날, 간신히 찾은 새해의 상큼함도 산산조각이 났다.

멸공의 눈빛

윤석열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새벽, 태극기와 미국 국기를 함께 흔들던 멸공-자유민주주의-애국자들은 유리창, 출입문, 외벽, 집기류 할 것 없이 모조리 작살을 냈다. 극우 유튜버들이 공동 감독한 영화를 보고 있는 줄 알았다. 참담하고, 무섭고, 슬프고, 역겨운 영화였다. 자칭 애국자들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를 습격해 차량 전체를 도배한 스티커 문구인 "STOP THE STEAL"은 2021년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백악관을 쳐들어가 부정선거를 외치던 트럼프 지지자들의 핵심 구호였다. 한국의 애국자들이 미국 국기를 왜 흔들고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

K극우 장르를 제작 지원한 보수기독교-영남-노인층-극우 유튜버-보수언론-멸공 애국자들은 스스로 내란 세력으로 무대에 올랐다. 히틀러를 독재자로 만든 것이 '광신적 애국주의'(라파엘 젤리히만)였다는 점을 기억해 보자면, 독재자와 애국자 연합은 내부의 '적'을 대상으로 '광신적'으로 결합한다. 적을 향한 광신적 폭력은 '그럴 만했다'로 정당화된다. 그것이 심지어 테러일지라도.

서울서부지법이라는 폭력의 무대 위로 쇠 파이프와 소화기를 들고 서성거리던 광신적 눈빛, "눈빛이 너무 정상이 아니어서 상대할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법원 직원)던 그 눈빛. 당시 서울서부지법 안에 있던 직원들이 공포를 직감하게 한 건 폭도들의 광신적 눈빛이었다. 열광과 복수와 광신을 하나로 뒤섞은 폭력이 빚어낸 눈빛, 장래 희망 칸에 독재자라고 써도 이상한 것 없는 세상에서 온 것 같은 자들의 눈빛. 섬뜩한, 광신적인 그 폭도들의 눈빛이 슬프고, 무섭고, 참담했다.

군사화된 2030 남성 청년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 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뉴스1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 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뉴스1

그 눈빛들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아흔 명 중 절반 이상이 2030이었고 그들 대다수가 남성이었다. 응원봉 광장에서 '천연기념물'이 돼버린 2030 남성 청년들이 어디에 있나 했더니, 극우의 현장에 있었다.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찬양하며 힘에 의한 지배를 영웅시하는 가부장적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여성혐오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채 온갖 혐오의 장르(노조, 좌파, 반공, 성소수자, 장애인)를 정주행하며, 군사주의적 문법으로 "싹 다 조져버립시다"를 입에 달고 살던 극우 청년들이었다. 이번 12·3 계엄의 무대 위로 여성혐오 이데올로기를 기본 장착한 2030 '남자들의 종족 공동체'(실라 미요시 야거) 행동대장들이 올라 "멸공"을 외치며 줄줄이 극우 동맹을 선포했다. 10대 남성들도 그중 하나였다.

그들은 어디서나 '점령하자'고 했다. 차도, 구치소, 법원, 헌법재판소를 점령하자고 말한다. 점령은 이들에게 '국민 저항권'으로 재해석되고 '처단하라'로 실행됐다. 사법부 테러에 이어 헌법재판소, 언론사, 국회를 점령해 불을 지르고 전부 처단하겠다는 테러 협박을 일삼는다.

이에 윤석열은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고 여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시는 것을 보고, 이 나라의 미래는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2030 남성들에게 응답했다. 미래의 희망들이 혐오와 폭력을 선동하는 장면을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극우 유튜버들과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2030 남성들의 증오와 원한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도 가짜 짜깁기 뉴스로 말이다. 나는 슬프고, 무섭고, 참담하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학생 M이 떠오른다.

존경하는 인물

2021년 12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인근에서 여성혐오 규탄 집회가 열린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 신남성연대 주최로 페미니즘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2021년 12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인근에서 여성혐오 규탄 집회가 열린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 신남성연대 주최로 페미니즘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10년 전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중학생 M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성재기'를 써냈다. 그때 처음 들어봤다. 성재기, 이름을 검색해보니, '남성연대'의 대표였다. 학생 M은 존경하는 이유로 "남자답다"와 "멋있다"를 꼽았다. "배울 것이 많은 우리 시대의 참된 성인"이라고 썼다. 군 가산점 부활에 앞장서고, 여성가족부와 여성 할당제 폐지를 주장하다 "한국 남성 인권의 현주소를 고발하며 투신하겠다"고 2013년 서울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려 '일베'의 신으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우연히 M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게시물 전체가 '전두환 찬양'과 '페미척결'로 도배돼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M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일베'를 권하고 포르노 영상과 극우 게시물을 남학생들 단체 채팅방으로 끊임없이 실어 날랐다고 했다.

인생 처음으로 맞닥뜨린 실물 일베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 나는 M이 졸업할 때까지 남초 커뮤니티에 대한 공부를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공부했다. 공부하면 할수록 슬프고, 무섭고, 참담했다. 학생 M과 여러 차례 상담과 공개 토론도 하며 다양한 방법들로 M을 극우 혐오 이데올로기로부터 구출하려 시도했지만 그는 매번 "재미로 하는 건데 뭐 어때요"라는 대답으로만 응수하다 졸업했다. 슬프고, 무섭고, 참담했다. 지금 20대 중반이 되었을 M이 서울서부지법으로 난입한 폭도 중 하나가 아니었기를 바라며 얼굴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봤다.

내란에서 내전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 내부로 난입해 불법 폭력 사태를 일으킨 19일 오전 서부지법 후문 현판이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 내부로 난입해 불법 폭력 사태를 일으킨 19일 오전 서부지법 후문 현판이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법부 테러에서 2030 남성들이 대오 전면에 드러났을 때 놀라우면서도 놀랍지 않았다. 집게손 모양을 한 페미를 사냥하러 다니던 극우 청년들이 판사 사냥에 나선 건 놀라우면서 놀랍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내전은 수행되고 있었다. 열광과 복수를 주성분으로 하는 조직을 갖춘 신남성 돌격대는 온라인에서 테러를 벌이고, 여론을 조작하고, 온갖 혐오폭력을 수행해 왔다. 국가와 사회가 오랫동안 방치하는 사이 군사화된 극우 청년들이 쇠 파이프를 들고 법원에 난입했을 때 '내 그럴 줄 알았다'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실존적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계엄 할 만했다'는 주장에서 '계엄은 정당했다'로 선동이 점차 증식하면서 사회적 내전의 긴장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내전, 대중혐오, 법치'(피에르 소베트르 외)라는 책은 내전을 이렇게 정의한다. "연합한 과두지배자들이 국민 일부의 적극적 지지에 힘입어 다른 국민 일부를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라고. 이 전쟁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평등에 맞선 신자유주의 내전이라고. 이 내전은 "내부의 적, 성가신 소수자들, 지배적인 정체성이나 전통적인 위계질서를 위협하는 집단들에 대한 적대로 유도"한다고. 적대화된 "사회에 대한 억압과 폭력이 갈수록 노골화하는 오늘날 벌어지는 일들은 실제로 내전이다"라고 콕 집는다. 그리고 이러한 신자유주의 체제에 맞서기 위해선 "평등과 민주적 가치의 회복이 해법"이라고. "모든 분야에서 평등을 우선으로 하는 모든 요구를 결집시키는 것"이라고. "오직 평등을 위한 사회적 투쟁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평등 체제 전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달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일대에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응원봉이 반짝이고 있다. 최주연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달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일대에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응원봉이 반짝이고 있다. 최주연 기자

평등한 세계로 향하는 체제 전환 운동은 이미 광장에서 펼쳐지고 있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존엄한 삶을 위협하는 폭력적인 반민주주의 체제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야당은 20년 넘게 국회에 묶여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응원봉 광장에 응답해야 한다. 페미니스트의 구호와 노조의 구호가 교차되고, 성소수자들의 구호와 팔레스타인 해방 구호가 교차되는 응원봉 광장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을 준비가 된 진보 정당에 힘을 실어야 한다. 오직 평등을 향한 체제 전환 운동이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를, 가부장제를, 비장애중심주의를, 이성애중심주의를 넘어서는 민주주의로 분출될 것이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씨앗이다.

실비아 플라스 '세 여인' 중


서한영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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