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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방성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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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지난번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에 당선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국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총장은 평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국민 앞에서 숨지 않겠다' 호언하고 공정과 상식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이번 당선이 필경은 우리나라(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공고히 부식게(뿌리 박게)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 하여 부산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며 마지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하기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 밖에 불법 계엄이 어찌하여 발동되었는가. 이 불법 계엄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이 심히 우려한즉, 그렇다면 윤 대통령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의 민주 의식이 강경하여 청컨대 화합과 소통, 사과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불법 계엄이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윤 대통령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OOO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고위 관료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어지럽힌 공범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000년의 강토와 80년의 광복을 남에게 부끄럽게 하고 5,000만 생령들로 하여금 편을 갈라 싸우게 하여 서로 원수 되게 하였으니, 저 OOO보다 못한 국방장관 김용현과 망언을 일삼는 일부 의원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국무회의 각료란 자들은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 자로써 책임을 면하려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안병하(치안감)처럼 발포 명령을 분연히 거부하지 못했고, 법무관 7명처럼 계엄군의 선관위 진입을 결사반대하지도 못해 그저 지켜보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볼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5,000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오호통재라. 일국의 지도자란 무릇 사람을 사랑하고 신뢰로써 이웃의 헌신을 이끌어 내고 참을 줄 알며 너그러워야 하거늘, 수신제가는커녕 '5대 악정' 자업자득을 어이할꼬. 누가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달라 했나, 이태원 참사 책임자 이상민·윤희근은 왜 처벌하지 않았나, 수십만 장병의 부모가 지켜보는 채 해병 사건 수사는 왜 막았나, 의대 증원은 하필 2,000명인가, 2시간 중언부언과 훈계가 대국민 사과인가. 급기야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친다'는 뜻을 덧댄 '계몽령' 궤변으로 국민을 희롱하고 분열을 선동하는 지경에 이르렀도다.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5,000만 동포여, 서로 원수가 된 동포여!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무엇을 위해 증오하는가? 단군과 기자 이래 4,000년 국민정신이 이대로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근래 윤 대통령 변호인단이 제목을 빌린 '시일야방성대곡'은 120년 전 을사년 장지연 선생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위정자들을 규탄하고자 쓴 글이다. '공정이 죽고 상식이 사라진' '폭력이 득세하고 분열이 창궐한' 시국을 개탄하며 다시 썼다. 다섯 번째 단락은 윤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던 자칭 '반문재인' 취재원이 불법 계엄 이후 윤 대통령 지지를 철회하며 밝힌 까닭을 바탕으로 추가했다. 격정을 눌렀다. 'OOO'을 채울 낱말은 독자 몫으로 남긴다.
일련의 사태로 깨달은 바 있다. 확신, 특히 지도자의 확신은 화합의 치명적인 적이다. 확신은 관용을 죽인다. 다시 을사년, 우리는 어디로 가나,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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