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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강사료까지 '벼룩의 간 빼먹기'···업체 끼어 20~30%를 떼간다

입력
2025.02.05 12: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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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64> 학교 강사들 위탁업체 소속으로 전환
강사들, 업체 운영비 명목으로 수수료 떼여
시간당 급여 3만2,000원→2만4,000원↓
교구·교재 강매도... "싸구려로 수업 질 저하"
관련법엔 업체 수수료 관련 상한 규정 없어


편집자주

간접고용 노동자는 346만 명(2019년). 계속 늘어나고 있죠. 중간업체에 떼이는 수수료 상한이 없는데다 원청이 정한 직접노무비를 용역업체나 파견업체가 노동자에게 다 주지 않고 착복해도 제재할 수 없어서,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습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중간착취 방지 법안들’은 한 번도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됐고, 22대 국회에서도 답보 상황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중간착취 문제를 꾸준히 고발합니다.


세종시 방과후학교 강사들이 채용 방식이 민간업체 위탁으로 전환되는 것에 반대하는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전국비정규직교사노조 세종지부 제공

세종시 방과후학교 강사들이 채용 방식이 민간업체 위탁으로 전환되는 것에 반대하는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전국비정규직교사노조 세종지부 제공

세종시 방과후학교 캘리그래피 강사인 A(46)씨는 개인 자격으로 학교와 계약하다가 약 3년 전 위탁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학교가 업체 위탁으로 변경하면서다. 학생 1명당 2만6,000원씩이던 강사료는 학생당 2만1,000원으로 깎였다. 업체에서 수수료를 떼어갔기 때문이다. A씨 월급은 최소 20%가량 줄었다.

이번 달 A씨는 또다시 업체 위탁 계약을 앞뒀다. 교원들의 행정 업무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업체 위탁으로 전환하는 학교가 늘고 있고, 그나마 수수료에 대한 명확한 기준조차 없다. A씨는 "급여를 얼마나 떼일지 아직도 알 수 없어 두렵다"고 토로했다.

그래픽= 박구원 기자

그래픽= 박구원 기자


업체 위탁 전환 앞둔 강사들... '운영비' 명목 수수료 떼여

3일 세종시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시내 54개 초교 중 학생 규모 1,000명이 넘는 6개 학교가 업체 위탁으로 전환한 상태다. 여기에 추가로 4개교가 업체 위탁 전환 단계에 있다.

이 경우 중간업체가 '운영비' 명목으로 강사료에서 적게는 10%, 많게는 30%의 수수료를 떼어갈 가능성이 나온다. 강현옥 전국비정규직교사노조 세종지부장은 "업체들이 '100~200명 강사를 관리하기 위한 운영비가 필요하다'며 강사료에서 일부를 제하고 지급하는 식"이라며 "최종적으로 시급의 70~80%만 받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경기지역 방과후강사 노조 조사에 따르면, 위탁업체 전환 확대로 시간당 급여가 최대 25%(3만2,000원→2만4,000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방과후학교의 위탁 업체 전환은 전국적으로 진행돼 왔다. 2022년 서울의 한 학교에선 강사들이 학부모들의 지지를 이끌어 위탁업체 전환을 막아낸 사례도 있었다.

그래픽=이지원기자

그래픽=이지원기자

강사들은 업체들이 떼어가는 수수료율에 이의제기를 하기도 어렵다. A씨는 "업체·학교에 계약 내용을 따져묻는 강사는 소위 '찍혀서' 다음 채용 때 불리지 않는 일이 잦다"며 "생계가 달렸으니 계약에 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외에 강사들이 계약 업체를 통해 저품질의 교구·교재를 강매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 A씨는 "업체는 수익을 낼 목적으로 단가가 낮은 싸구려 교구·교재 구매처를 아예 지정해 준다"며 "공예나 서예, 로봇 수업처럼 교구가 특히 중요한 과목은 수업 질 저하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 매뉴얼이 수수료 근거로... 교육청 "강사 피해 미미"

'2024 방과후학교 업체위탁 계약 실무 길라잡이'에 표시된 방과후학교 강사료 책정 비율 예시. 서울시교육청과 세종시교육청 매뉴얼에서 똑같이 확인할 수 있었다. '2024 방과후학교 업체위탁 계약 실무 길라잡이' 캡처

'2024 방과후학교 업체위탁 계약 실무 길라잡이'에 표시된 방과후학교 강사료 책정 비율 예시. 서울시교육청과 세종시교육청 매뉴얼에서 똑같이 확인할 수 있었다. '2024 방과후학교 업체위탁 계약 실무 길라잡이' 캡처

위탁 수수료 관련 지방계약법 시행령에 명시된 내용이라곤 제6조 6항의 '위탁 수수료는 지방자치단체와 전문기관(위탁업체)이 협의해 결정한다'가 전부다. 각 교육청별로 매뉴얼 정도를 제시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과 세종시교육청의 '2024 방과후학교 업체위탁 계약 실무 길라잡이'를 확인해 보니, 똑같이 강사료 중 인건비 비율을 78~80%로 예시하고 있을 뿐이다.

'위 표의 인건비 비율은 예시이며, 학교별로 인건비 비율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도 돼 있다. 즉 학교와 업체가 합의하면 얼마를 떼든 상관없는 것이다. 세종시교육청 측은 "학교가 인건비 적정 비율을 자체 판단하기 어렵다보니, 예시로 적용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당국은 강사들의 입장과 달리, 강사 피해가 미미하다고 말한다. 세종시교육청 측은 "업체 위탁으로 전환한 학교와 개인 위탁 학교를 비교해보니 막상 강사 급여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각 학교에 '강사들에 대한 개인 위탁을 권장한다'는 입장을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간착취의 지옥도’ 바로가기: 수많은 중간착취 사례와 법 개정 필요성을 보도한 기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이 주소 www.hankookilbo.com/Collect/2244 로 검색해 주세요.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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