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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EU에도 곧 관세” 확전 시사… 반격·비판도 거세졌다

입력
2025.02.03 19:0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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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해지려면 고통 감내를”… 불퇴 의지
캐나다·멕시코는 보복 채비… 불매운동도
국내서도 반발… “中에 이롭고 美엔 피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앤드루스 공군기지=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앤드루스 공군기지=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에 대해서도 곧 관세를 물리겠다고 밝혔다. 전날 캐나다·멕시코·중국을 상대로 일으킨 ‘관세 전쟁’의 확전을 시사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그의 도발은 벌써부터 안팎에서 벽에 부딪히는 모습이다. 4일부터 관세 폭탄을 맞게 되는 이웃나라 캐나다와 멕시코가 고강도 반격을 벼르고 있는 데다, 미국 내에서조차 국제 무역 질서를 중국에 이롭게 재편시키는 사실상의 ‘이적 행위’라는 날 선 비판이 제기된다.

단기 진통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기자들을 만나 EU산(産) 제품을 대상으로 한 추가 관세 부과 구상을 확인했다. 그는 “EU가 정말 선을 넘었다”며 "그들은 거의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지만 우리는 그들로부터 수백만 대의 차, 엄청난 양의 식량·농산물 등 모든 것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과세 시점이 언제냐’는 질문에는 “시간표가 있다고 말하진 않겠지만 ‘조만간(pretty soon)’일 것”이라고 답했다.

자국의 3대 수입의존국을 겨냥한 첫 관세전(戰)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이번 관세 조치에 따른 미국인의 타격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고통이 따를지 모르지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면 감내할 가치가 있다”며 “미국은 더 이상 어리석은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오후 약식 회견에서도 그는 “단기적으로 약간 고통이 있을 수 있지만 국민은 이해할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다만 협상 여지는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극적인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면서도 관세 부과 시행 전날(3일) 오전 캐나다·멕시코 정상과 통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제 민족주의 물결

자국이 다른 나라들의 ‘봉’ 노릇을 하지 않으려면 관세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게 트럼프 측 논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취재진에게 “오랫동안 미국은 거의 모든 국가로부터 갈취당해(ripped off) 왔다”고 말했다. J D 밴스 부통령도 같은 날 미국 방송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용당하는 것에 신물이 났다”고 했다.

“캐나다는 매물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쓴 더그 포드 캐나다 온타리오 주지사가 지난달 15일 캐나다 주 및 준주 지도자 회의가 열린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오타와=로이터 연합뉴스

“캐나다는 매물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쓴 더그 포드 캐나다 온타리오 주지사가 지난달 15일 캐나다 주 및 준주 지도자 회의가 열린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오타와=로이터 연합뉴스

하지만 관세 부과 대상국 입장에선 적반하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를 향해 지금처럼 미국에 의존할 바에는 차라리 ‘미국의 51번째 주(州)’가 되라는 조롱을 이날도 SNS를 통해 퍼부었다. 관세 도발과 더불어 이런 무례가 캐나다에는 오히려 결속 동력이 되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이날 대(對)미국 보복 관세 부과 제품 상세 목록을 공개했고, 중국에 이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방침도 밝혔다. 미국산 불매·자국산 구매 캠페인 또한 정치인들 독려 속에 확산할 조짐이다. 온타리오주 등은 4일부터 주정부 소유 판매점에서 미국산 수입 주류를 팔지 않기로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경제 민족주의 물결이 캐나다 전역을 휩쓸고 있다”고 전했다.

보복을 채비 중인 것은 멕시코 정부도 마찬가지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캐나다·멕시코의 전략은 미국인들도 고통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화당 거점 지역이나 업체의 캐나다행(行) 수출품에 정밀 타격을 가하는 데 집중할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날 캐나다가 미국 켄터키주의 위스키, 플로리다주의 오렌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가전제품 등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을 보복 관세 부과 대상 목록에 포함시킨 게 전형적 사례다.

대통령 서명 하나로

반발 기류는 미국 내에서도 광범위하게 감지된다. 관세 부작용이 단순히 수입품 물가만 올라가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수출에 의존하는 미국 제조업체가 난감해진다. 관세는 생산 비용을, 상대국 보복 관세는 제품 가격을 각각 끌어올린다. 제이 티몬스 전미제조업협회(NAM) 회장은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관세는 경쟁력 있는 값으로 제품을 팔 수 있는 우리 능력을 훼손하고 미국인 일자리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호무역에 따른 미국의 고립이 글로벌 무역 시스템에서 경쟁국인 중국의 위상을 강화하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나스 남 미국 존스홉킨스대 고등국제학대학(SAIS) 교수는 NYT에 “동맹국에 부과되는 미국의 관세는 오랫동안 미국과 동맹국 간 갈등을 조장할 방법을 찾아 온 중국의 환영을 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케이토연구소의 경제·무역 담당 부소장 스콧 린시컴도 “대통령이 서명 하나로 아무 이유 없이 30년 넘게 지속돼 온 북미 공급망을 와해할 수 있다면 어느 나라가 미국과 무역 협정을 맺으려 하겠느냐”며 “중국 좋은 일만 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손성원 기자
박지영 기자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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