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소속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사망으로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약자의 열악한 현실이 거듭 드러났다. 2021년 기상캐스터 공채로 입사한 고인은 폭언과 따돌림 등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기록한 장문의 유서를 휴대폰에 남기고 지난해 9월 목숨을 끊었다. 유서를 발견한 유족이 최근 피해 사실과 증거를 공개하고 동료 기상캐스터에게 민사소송을 걸면서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사는 게 너무너무 피곤합니다”라는 유서 내용은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보여준다.
2019년 도입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고인을 비롯한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지난해 6월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여론조사 결과 “괴롭힘을 직접 경험했거나 본 적 있다”는 응답자는 32%에 달했다. 직장 동료를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조직문화가 여전하거니와 사용자가 괴롭힘을 방지·해결할 책임을 외면하고 개인 갈등으로 치부하는 기업문화도 개선되지 않았다.
기상캐스터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프리랜서 신분이라 직장 폭력에 더욱 취약하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대상도 법정 노동자에 한정돼 있다. 방송사들은 날씨 보도를 하는 기상캐스터를 저임금 전속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해 노동 착취를 하고 관리 의무를 회피해왔다. 기상캐스터끼리의 과도한 경쟁 문화, 성 상품화 논란 등이 취약한 고용 형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전직 MBC 기상캐스터들이 “나 때도 그랬다” “모진 세월 참고 버텨 봐서 안다”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연달아 올린 것 역시 구조적 문제임을 가리킨다.
MBC의 초기 대응은 어이없었다.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는 입장을 낸 것은 조직 전체의 노동관을 의심케 했다. MBC에서 경력직 차별, 따돌림 등 괴롭힘 사례가 유난히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뒤늦게 외부 전문가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으니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결자해지하기 바란다. 내사에 착수한 경찰과 고용노동부도 수사와 관리감독 책임을 다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