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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이 필요한 요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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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교수신문이 그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꼽습니다. 2001년부터 시작한 이 기획은 그 시대를 정확히 꿰뚫는 사자성어를 골라서 많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이번 정권 시기에 뽑힌 사자성어를 되짚어봅니다. 과이불개, 견리망의, 도량발호 등입니다. 희망을 담기보단 세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있습니다.
올해를 시작하는 마음을 담아 저만의 사자성어를 선정하고자 합니다. 바로 수오지심입니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뜻의 이 사자성어는 맹자가 말하는 사단 중 하나로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심오합니다. 하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일갈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운 사람들을 참 많이 봤습니다. 민주주의 제도가 만들어준 검사라는 특권으로 평생 살아온 사람이 제도를 짓밟았습니다. 국회의원들은 당선을 위해 전 국민이 목도한 계엄령에 흐린 눈을 뜨고 부정 선거론을 부추깁니다. 이에 선동되어 법원을 쳐들어간 폭도들은 순교자처럼 행세합니다. 예상과 다른 여론조사가 연이어 나오자 뜬금없이 조사특별위원회를 발족하는 정치인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틀린 방향으로 열심히 사는 걸까, 양심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가 정유정은 최근의 한국을 '개인은 자존감 중독, 사회는 집단 나르시시즘'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자존감에 대한 강박 때문에 결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지적하는 사람에게 공격성을 보입니다. 이로 인해 자기편하고만 모이고, 나머지를 모두 적으로 돌리는 '내로남불'로 이어진다고 지적합니다. 결과적으로 나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집단과 나와 지지 정당이 같은 사람들을 선으로 규정하고, 나머지를 악으로 정의합니다. 각자가 스스로의 성전을 합니다.
심리학은 이 모든 감정과 행위가 긴밀하게 얽혀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는 부끄러운 상황에서 자기 연민에 빠지면 수치심이 줄어듭니다. 이로 인해 반성의 감각이 둔해지니 스스로를 불쌍한 희생양으로 여기고 역으로 상대방을 공격합니다. 이 심리 현상이 유튜브발 필터 버블을 만나니 지지자들도 이런 집단 현상을 겪습니다. 우리 편 정치인에 대한 흠결 지적은 정당치 못한 비판이자 핍박이며, 반대편 정치인의 과오는 천인공노할 죄악인 이중 잣대는 실종된 수치심과 마비된 양심으로 설명됩니다.
우리들은 수치심을 자주 느낍니다. 상사에게 혼나거나 시험을 못 보거나 내 부족함이 보일 때 부끄러워합니다. 신입사원들이 우는 이유 중 8할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서일 겁니다. 수치심은 불편하지만 이롭습니다. 반성과 성장의 거름이기 때문입니다. 수치심이 없으면 반성하지 않고 닫힌 인간이 됩니다. '내로남불', '꼰대' 등의 욕설은 결국 닫힌 인간에 대한 비난입니다.
수오지심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과오에 혀를 쯧쯧거리기 전에 과연 나는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내 잘못을 지적하는 타인을 공격하기 전에 나를 한 번 더 돌아봐야 합니다. 타인에게 '부끄럽지도 않나'라고 묻기 전에 나에게 '난 떳떳한가' 3번 물어야 균형이 맞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부끄러운 줄 모르는 권력이 폭주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자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부끄러울 줄 아는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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