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바다 원주민의 간소한 삶터... 수상 레저 거점 됐다

입력
2025.02.05 04:30
20면
구독

인도네시아 휴양지 빈탄

싱가포르 여행객들이 인도네시아 빈탄의 수상가옥 주변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다.

싱가포르 여행객들이 인도네시아 빈탄의 수상가옥 주변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다.

‘퉁~ 퉁~’ 보트 바닥이 수면에 닿을 때마다 짜릿한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덮개가 씌워진 원통형의 납작한 보트는 약 20명의 승객을 태우고 미사일처럼 수면 위를 달렸다. 비싼 돈 내고 즐기는 바나나보트보다 속도감이나 스릴이 한 수 위다. 인도네시아 바탐섬 남동부 풍구르(Punggur) 페리터미널을 출발한 배는 승객들의 탄성 속에 약 30분 후 이웃 빈탄섬의 벤탄텔라니(Bentan Telani) 터미널에 도착했다.

투숙객만 입장 가능... 빈탄 리조트 지구

터미널은 작고 소박했지만 주변은 말끔했다. 숙소로 가는 길은 인도네시아 여느 지역과 다르게 정갈했다. 도로 차선은 선명하고 가로수도 잘 정돈된 상태다. 매연을 풍기는 차량 행렬은 찾아볼 수 없고, 도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한산했다. 길 양편은 원시의 정글로 검푸르게 덮여 있다. 빈탄을 직선으로 약 40km 떨어진 싱가포르의 산소통이라 부르는 이유다.

빈탄 섬 북부 해안에는 20여 개의 고급 리조트가 자리 잡고 있다. 현지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어서 넓은 해변이 언제나 한적하다.

빈탄 섬 북부 해안에는 20여 개의 고급 리조트가 자리 잡고 있다. 현지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어서 넓은 해변이 언제나 한적하다.


인적이 드문 빈탄 리조트 지구 해변에 파도에 떠밀려온 야자수 열매가 뒹굴고 있다.

인적이 드문 빈탄 리조트 지구 해변에 파도에 떠밀려온 야자수 열매가 뒹굴고 있다.


이른바 ‘빈탄 리조트’는 일반 주민이 들어갈 수 없는 특별 구역이다. 제주도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 30만 명이 거주하는 빈탄섬 북부 해안에는 20여 개의 고급 리조트가 몰려 있다. 여기에 3개 골프장, 워터파크와 사파리까지 다양한 즐길거리를 갖춘 거대한 휴양지다. 리조트 단지는 오직 2개의 문을 통해 외부와 연결된다. 투숙객과 종업원 외에는 출입할 수 없는 구조다.

빈탄은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전 이용객의 30%가 한국인일 정도로 꽤 알려진 휴양지였다. 원시림을 끼고 해안을 따라 멀찍이 떨어져 자리 잡은 리조트마다 전용해변을 갖추고 있다. 현지인이 없으니 사실 ‘전용’이라 이름하지 않아도 한없이 호젓하다. 고운 모래사장에 열대의 바닷바람과 파도소리만 찰랑거린다. 인적 드문 해변에 바닷물에 떠밀려온 야자수 열매가 뒹굴고 있다. 며칠만 머물면 분명 사람이 그리워질 듯하다.

아시아 최대 인공 물놀이장이라 자랑하는 빈탄 트레저베이. 수영장 길이만 1.6km에 달한다.

아시아 최대 인공 물놀이장이라 자랑하는 빈탄 트레저베이. 수영장 길이만 1.6km에 달한다.


빈탄 섬 트레저베이의 이색 글램핑 숙소.

빈탄 섬 트레저베이의 이색 글램핑 숙소.

그래서일까. 휴양지 안에 또 다른 휴양시설 ‘트레저베이’를 조성해 놓았다. 리조트 투숙객들이 물놀이와 각종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트레저베이는 그 넓은 해변을 두고 내륙에 자리 잡았다. 파도가 거세고 궂은 날에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한 1.6km 전천후 수영장이 강줄기처럼 정글을 휘감는다. 수심 평균 2.5m, 최대 6m에 달하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수영장이다. 바닷물을 끌어 들인 얕은 물가에서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는 동안, 어른들은 그늘막에서 느긋하게 휴식한다. 물에서는 패들보드나 제트스키 등 각종 수상 레포츠를, 주변 산책로에서는 스쿠터와 사륜구동 오토바이를 즐길 수 있다. 사파리를 테마로 한 글램핑텐트와 이색적인 독채 빌라가 수영장을 따라 늘어서 있다.

물놀이장 거점으로 변신한 전통 수상가옥

빈탄만의 이색 즐길 거리로 바다 원주민의 수상가옥이 있다. 리조트 구역 바깥 빈탄 동쪽 트리코라비치(Trikora Beach)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수평선 부근 바다에 수상가옥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다. 찰랑거리는 물결에 보일 듯 말 듯 길쭉하게 이어진 화이트샌드 아일랜드 주변이다.

빈탄 섬 동쪽 해안 수평선 부근에 아른거리는 전통 수상가옥 켈롱. 현재는 관광객을 위한 수상레저 거점으로 주로 활용되고 있다.

빈탄 섬 동쪽 해안 수평선 부근에 아른거리는 전통 수상가옥 켈롱. 현재는 관광객을 위한 수상레저 거점으로 주로 활용되고 있다.


빈탄섬의 전통 수상가옥 켈롱. 움직이는 집이자 어선이다.

빈탄섬의 전통 수상가옥 켈롱. 움직이는 집이자 어선이다.


빈탄 동해안 선창을 따라 자리 잡은 수상가옥. 집집마다 접시안테나가 달려 있다.

빈탄 동해안 선창을 따라 자리 잡은 수상가옥. 집집마다 접시안테나가 달려 있다.


관광객을 위한 수상가옥은 바다 위에 고정돼 있지만, 전통 수상가옥(켈롱)은 이동이 가능한 구조다. 물고기를 잡는 어선이자 살림집인 셈이다. 빈탄 가이드는 켈롱에 거주하는 이들을 ‘바다 원주민’으로 현지인과 구분해 설명했다. 바다 원주민 아이들은 지금도 학교에 가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초등, 중등 9년을 허비하는 시간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오래전 이슬람의 물결과 함께 흘러 들어 온 이들은 기본적으로 말레이어를 사용하고 아랍 문자를 쓰기도 한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이들에겐 값나가는 물건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바다 원주민은 욕심 없이 하루 먹을 만큼만 물고기를 잡고, 꼭 필요한 최소한의 살림살이만 갖춘 채 간소한 삶을 이어간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미니멀 라이프’이자 ‘소확행’을 추구하는 삶이다.

빈탄섬 수상가옥 처마에 소라껍질 장식이 걸려 있다.

빈탄섬 수상가옥 처마에 소라껍질 장식이 걸려 있다.


해상레저 거점인 바다 위 수상가옥까지는 작은 쪽배로 이동한다.

해상레저 거점인 바다 위 수상가옥까지는 작은 쪽배로 이동한다.


검푸른 물결 수평선 위에 수상가옥이 세워져 있다.

검푸른 물결 수평선 위에 수상가옥이 세워져 있다.

부두에서 수평선 부근에 아른거리는 켈롱까지는 작은 쪽배로 이동한다. 길쭉한 선창을 따라 바다 원주민의 수상가옥이 늘어서 있다. 일부 움직이는 집이 있지만 대부분은 고정된 형태다. 아무리 바다를 고집하는 이들이라도 세월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집집마다 위성안테나가 달려 있다. 창가에 기르는 화분이며 소라껍데기 장식도 정겹다.

관광객을 태운 쪽배는 물위를 표류하는 삶처럼 아슬아슬하다. 일단 몸무게에 따라 좌우로 균형을 잡고 앉아야 뒤집어지지 않는다. 사공은 밀려오는 파도에 능숙하게 대응한다. 잔잔한 물살을 가를 때는 속도를 높이고, 파도를 만나면 속도를 늦춰 시소를 타듯 넘는다. 그래도 부서지는 물살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 찰랑거리는 파도가 이따금씩 쪽배 위로 부서진다. 승객의 탄성도 따라서 물결친다.

여행객들이 빈탄섬 수상가옥 주변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다.

여행객들이 빈탄섬 수상가옥 주변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다.


빈탄섬 한 수상가옥에 '니모' 업체명이 붙어 있다. 주변 바다에 흰동가리를 비롯한 수많은 열대어가 서식한다.

빈탄섬 한 수상가옥에 '니모' 업체명이 붙어 있다. 주변 바다에 흰동가리를 비롯한 수많은 열대어가 서식한다.


빈탄섬 여행객이 수상가옥 주변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다.

빈탄섬 여행객이 수상가옥 주변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다.


반면 레저용 수상가옥은 바다 위에 단단히 고정돼 있다. 쪽배에서 내려 가옥으로 올라서니 나무기둥에 새긴 ‘니모아일랜드’ 간판이 보인다. 주변 바다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에메랄드 빛이다. 그 물속에 다양한 열대어가 헤엄친다. 호주의 어느 치과병원 수족관에서 탈출해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바다로 돌아온 니모처럼,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조류에 일렁이는 산호초를 집 삼아 자유롭게 헤엄친다. 주황색 바탕에 하얀 띠를 두른 ‘니모’의 우리말 이름은 흰동가리다.

수상가옥은 여행객을 위한 기본 시설을 두루 구비하고 있다. 스노클링에 필요한 잠수복과 간이 샤워시설을 갖췄고, 카약도 대여할 수 있다. 물에 들어가지 않는 이들은 낚시를 즐기거나 바다 위 해먹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즐긴다. 선선하게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수면에 반짝이는 햇살이 눈부시다. 선상에서 제공되는 해물요리까지, 꿈같은 바다 위의 하루다.

빈탄섬 수상가옥에서 여행객이 낚시를 즐기고 있다.

빈탄섬 수상가옥에서 여행객이 낚시를 즐기고 있다.


수상가옥에 차려진 해산물 요리가 꿀맛이다.

수상가옥에 차려진 해산물 요리가 꿀맛이다.


밀림 속 황금모래와 푸른 호수, 빈탄 소금사막

빈탄에서 요즘 가장 주목받는 여행지는 의외로 바다가 아니라 사막이다. 해 질 무렵 황금빛으로 물드는 모래 언덕과 사이사이에 형성된 푸른 호수가 절묘한 풍광을 빚는 곳으로, 빈탄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빠지지 않고 들르는 인생사진 명소다.

현지에서는 구룬파시르(Gurun Pasir·모래사막) 혹은 블루레이크라 불리지만, 한국인들은 친숙하게 ‘소금사막’이라 부른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사막이 아니라, 자연파괴가 가져다 준 의외의 선물이다. 과거 이곳은 모래광산이었다. 싱가포르가 1990년부터 5년 동안 이곳에서 모래를 채취해 마리나베이 간척사업에 사용했다고 한다. 실제 사막이 아니라 속살을 드러낸 모래 언덕인 셈이다.

빈탄섬의 인증사진 명소 소금사막. 과거 모래 채취장이었다.

빈탄섬의 인증사진 명소 소금사막. 과거 모래 채취장이었다.


빈탄 소금사막은 독특한 지형으로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빈탄 소금사막은 독특한 지형으로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여행객이 빈탄 소금사막의 푸른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여행객이 빈탄 소금사막의 푸른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소금사막은 바다와 인접해 있다. 무분별한 채취로 해안가 맹글로브숲이 파괴될 위협에 처했고, 광산 허가를 내준 공무원은 나중에 해고됐다고 한다. 맹그로브숲은 일반 숲에 비해 공기정화 기능이 20%나 더 뛰어나다고 한다. 해안생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숲이어서 현재 소금사막은 중앙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호수의 물은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 오묘한 색감을 자아낸다. 한때 이 물로 소금을 만들기도 했지만 생산성이 맞지 않아 중단되고, 원시림에 둘러싸인 독특한 사막 풍광이 사진 명소로 알려지면서 2017년부터 관광지로 개발됐다. 여행객은 파도처럼 겹겹이 물결치는 모래 언덕을 걸으며 이국적인 정취를 즐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지형이 마치 외계 행성의 거대한 모래 땅처럼 보인다. 나무 한 그루가 뿌리내린 언덕에 오르면 주변의 푸른 호수와 원시림 너머로 태평양 쪽빛 바다가 넘실거린다. 소금사막은 사륜바이크나 마차를 타고 즐기기도 한다. 주민들에게 쏠쏠한 벌이가 될지 몰라도 사륜바이크의 소음과 매연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해치는 점은 아쉽다.

현지 가이드는 빈탄을 즐기려면 최소 3일은 잡아야 한다고 권했다. 첫날은 전통 수상가옥 켈롱에서 스노클링을 즐긴 후 탄중피낭에서 저녁식사를 할 것을 추천한다. 탄중피낭은 빈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리아우 제도주(州)의 주도다. 둘째 날은 트레저베이에서 물놀이를 즐긴 후 소금사막을 방문하고, 항구 도시 탄중우반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마지막 날은 리조트에서 휴식하며 노을을 감상하거나 마사지를 받는다.

빈탄 항구 도시 탄중우반 바다가 붉은 노을에 물들어 있다.

빈탄 항구 도시 탄중우반 바다가 붉은 노을에 물들어 있다.


인도네아 빈탄과 바탐 위치. 그래픽=강준구 기자

인도네아 빈탄과 바탐 위치. 그래픽=강준구 기자


빈탄에서 바탐으로 돌아올 때는 섬의 서쪽 끝자락 탄중우반에서 유람선을 탔다. 열대 바다의 잔물결 위로 떨어지는 노을이 유난히 곱고 아름다웠다. 인천공항에서 바탐공항까지는 제주항공이 주 2회 운항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바탐이나 빈탄섬까지 쾌속선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빈탄(인도네시아)=글·사진 최흥수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