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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 찾아 3000km 날아왔는데··· 농약에 떼죽음 당하는 천연기념물 독수리

입력
2025.02.06 08: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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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먹이 찾아 한국 오는 독수리

편집자주

도심 속 인간과 동물의 접점이 늘어나면서 이로 인한 갈등과 피해가 생기고 있습니다. 갈등의 배경 및 인간과 동물 모두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까마귀나 까치의 눈치를 본다. 작은 새들이 몰려들어 깃털을 뽑아내면 비행하는 데 그만큼 손실이 생기기 때문이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까마귀나 까치의 눈치를 본다. 작은 새들이 몰려들어 깃털을 뽑아내면 비행하는 데 그만큼 손실이 생기기 때문이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위기의 도심동물들

위기의 도심동물들

겨울 철새인 독수리들이 넓고 큰 날개를 펼쳐 떼지어 나는 모습을 보면 '하늘의 제왕'이라는 수식어가 절로 나온다. 독수리는 수리류 중 가장 큰 새로 몸길이는 최대 1.5m, 편 날개는 3m에 달한다. 하지만 용맹한 인상과 달리 실제로는 까치나 까마귀의 눈치를 보는 온순한 성격이다. 몸이 둔해 사냥도 잘 못하고 대신 사체를 주로 먹는다. '청소부'라는 별명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영문으로는 벌처(Vulture)인데 우리는 미국 국조인 흰머리수리 등 스스로 사냥하는 이글(Eagle)로 잘못 부르기도 한다.

다 자란 독수리의 머리에는 깃털이 드문드문 있다. 실제 독수리의 독(禿)은 대머리를 뜻한다. 진선덕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은 "머리 깃털이 많으면 사체의 내장을 먹는 과정에서 이물질이 묻어 질병에 노출될 수 있지만, 독수리는 이런 위험이 덜하다"고 설명했다.

몽골서 3,000㎞ 날아오는 새끼 독수리들

몽골에서 경남 고성군 독수리 식당을 찾아온 독수리. 날개에 개체 표시를 한 윙태그가 보인다. 독수리자연학교 제공

몽골에서 경남 고성군 독수리 식당을 찾아온 독수리. 날개에 개체 표시를 한 윙태그가 보인다. 독수리자연학교 제공

독수리는 그 수가 줄면서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에서 준위협종으로, 국내에서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국가유산청이 2023년 발간한 '천연기념물 독수리 서식실태조사 연구'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서식하는 독수리는 1만6,800~2만2,800마리, 이 중 동아시아 집단은 1만1,000~1만6,000여 마리다. 국내에서 월동하는 수는 2,000여 마리에 달하는데 이는 전 세계 10분의 1, 동아시아 집단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독수리는 매년 11월이 되면 번식지인 몽골에서 3,000㎞를 날아 한국을 찾고 이듬해 2~4월 다시 돌아간다. 목숨을 건 긴 여정이다. 몽골 내 추위를 견디지 못하거나 먹이 경쟁에서 밀린 새끼 독수리들이 중국, 북한, 우리나라 등으로 이동해오는 것이다.

독수리의 번식지인 몽골 바가가즈링촐로 지역 둥지의 모습. 독수리자연학교 제공

독수리의 번식지인 몽골 바가가즈링촐로 지역 둥지의 모습. 독수리자연학교 제공


경남 김해시 한림면 화포천습지생태공원을 찾은 독수리들이 사람들이 제공한 먹이를 먹고 있다. 김해=뉴스1

경남 김해시 한림면 화포천습지생태공원을 찾은 독수리들이 사람들이 제공한 먹이를 먹고 있다. 김해=뉴스1

대부분은 세 살 미만 어린 새들이다. 이들은 경기 파주시, 경남 고성군 등 이들을 위해 먹이를 공급하는 이른바 '독수리 식당'이 차려지는 곳 위주로 자리를 잡는다. 1995년부터 경남 고성군에서 독수리 식당을 운영하는 김덕성 자연의벗 연구소 부설 독수리자연학교 대표는 "경남 쪽에 오는 독수리들이 파주 지역보다 더 어리다"며 "파주에서 밀려 더 아래쪽으로 내려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 수확이 끝난 논에서 임진강생태보존회가 주최한 먹이 주기 활동에는 독수리 300여 마리가 날아와 냉동 돼지고기 400㎏을 15분 만에 해치우기도 했다. 많을 때는 700마리까지도 찾는다고 한다. 노황호 임진강생태보존회 이사는 "한쪽 다리를 다친 독수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날아왔다"며 "모금과 기부로만 먹이 비용을 충당하고 있어 금전적 어려움이 있지만 이들을 외면할 수 없다"고 전했다.

농약, 인공 구조물 충돌 등으로 매년 50마리 목숨 잃어

농약에 중독돼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독수리.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농약에 중독돼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독수리.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구조되는 독수리 수 추이.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구조되는 독수리 수 추이.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살기 위해 힘들게 날아왔건만 독수리에게 한국은 안심할 수 없는 나라다. 농약 중독과 인공 구조물 충돌 등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최근 5년간 구조 수만 293마리로 한해 평균 50마리를 넘는다. 지난해에는 농약 집단 중독으로 평년보다 2배 많은 101마리에 달했다. 이에 대해 진 선임연구원은 "먹이 사슬 단계가 올라갈수록 농도가 짙어지며 중독 현상이 심해진다"고 설명했다.

같은 기간 센터가 독수리를 구조한 유형을 보면 75.1%가 중독이었고, 인공구조물 충돌(14.3%)이 뒤를 이었다. 이 외에 밀렵으로 인한 총상, 기아 및 탈진 등도 있었다.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는 "농약으로 죽은 동물을 먹고 2차 중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드물게는 납탄에 맞아 죽은 동물로 인해 중독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재활관리사는 이어 "독수리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날씨 등으로 인해 구조물을 회피하는 능력이 떨어질 때가 있다"며 "이로 인한 골절로 구조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 5년간 독수리 구조 요청 형태

최근 5년간 독수리 구조 요청 형태

문제는 농약 중독의 경우 떼지어 다니는 독수리의 특성상 복수의 개체에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김 재활관리사는 "한 장소에서만 독수리 40마리를 구조한 적도 있다”며 "누군가 의도적으로 농약을 살포했을 가능성이 큰 만큼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수리의 감소는 인간 생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미국경제학저널(AEA)'은 인도 내 독수리 개체 수 감소가 50만여 명의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소의 진통제로 사용하던 '디클로페낙'이 들어 있는 소 사체를 먹은 독수리들이 신장 부전으로 사망한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동물 사체가 처리되지 못하면서 이들로부터 발생한 박테리아와 병원균이 식수원 등으로 확산됐다. 인도, 이란, 파키스탄에서 소수 종교를 믿으며 생활하는 신자들이 독수리 감소로 전통 장례법인 조장(鳥葬)을 포기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FN이라는 윙태그를 단 독수리가 무리에 섞여 있는 모습. 이 독수리는 2019년부터 겨울을 나기 위해 경남 고성군 독수리 식당을 찾고 있다. 독수리자연학교 제공

FN이라는 윙태그를 단 독수리가 무리에 섞여 있는 모습. 이 독수리는 2019년부터 겨울을 나기 위해 경남 고성군 독수리 식당을 찾고 있다. 독수리자연학교 제공


농약이 묻은 볍씨를 먹고 폐사한 먹이를 먹고 중독돼 움직이지 못하는 독수리.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농약이 묻은 볍씨를 먹고 폐사한 먹이를 먹고 중독돼 움직이지 못하는 독수리.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최근 5년간 구조센터에 들어온 독수리 현황.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최근 5년간 구조센터에 들어온 독수리 현황.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독수리는 생물다양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진 선임연구원은 "청소동물인 독수리가 많다는 건 그만큼 상위 포식자(맹수)가 남긴 사체가 많다는 것이므로 건강한 생물다양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며 "그러나 개발, 밀렵 등으로 인한 자연 생태계의 불균형이 이들의 먹이사슬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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