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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냐" 尹 격노에 움직인 김용현... 불법계엄 이렇게 시작됐다

입력
2025.02.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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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공소장 등으로 본 계엄 선포 전말]
尹, 계엄 8개월 전 식사에서도 "비상대권" 언급
'국가비상대책' '계엄' 언급에 포고령 준비한 金
계엄 당일 오전 軍 선관위·국회 배치 준비 마쳐
오후 8시 넘어 국무위원 통보, 10시 23분 선포

지난해 10월 1일 광화문에서 열린 제76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왼쪽) 당시 국방부 장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지난해 10월 1일 광화문에서 열린 제76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왼쪽) 당시 국방부 장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4일 열린 자신의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이번 사건을 보면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시했니, 지시받았니' 이런 얘기들이 마치 호수 위에 빠진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주요 인사 체포조 운영에 대해서도 "상식적으로 가능한 얘기냐"고 반문하며, '경고성 계엄'이라고 강변한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 수사 결과는 전혀 다르다.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 국가비상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분노에 찬 윤 대통령의 얘기를 들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12·3 불법계엄 선포문,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 초안을 준비했다. 윤 대통령이 최소 7차례 이상 김 장관에게 '비상조치권' '국가비상대책' '계엄' 등에 대해 얘기했고,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윤 대통령 발언을 본 김 장관은 계엄에 필요한 모든 걸 차곡차곡 준비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윤 대통령 공소장과 각종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계엄 선포 과정과 지난해 12월 3일 국무회의 과정을 정리했다.

2024년 4월 총선 전부터 화나 있던 尹

22회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지난해 4월 5일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명지1동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있다. 서재훈 기자

22회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지난해 4월 5일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명지1동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있다. 서재훈 기자

윤 대통령은 평소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종북 주사파를 비롯한 반국가세력을 정리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반국가세력을 정리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해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했고 김 전 장관은 이에 동조했다. 김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초대 경호처장으로 2022년 5월 10일부터 2년 넘게 윤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다가, 2024년 9월 6일 국방부 장관 자리를 꿰찼다.

검찰은 윤 대통령의 '비상대권' 언급이 2024년 4월 10일 22대 총선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3월 말에서 4월 초순 사이에 있었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전가옥(안가) 회동에서 윤 대통령은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김용현 경호처장과 만나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군이 나서야 되지 않느냐"라는 취지로 말했다.

윤 대통령 발언은 갈수록 거칠어졌다. 8월 초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김용현 경호처장, 여인형 방첩사령관과 저녁을 먹던 윤 대통령은 정치인과 민주노총 관계자들에 대해 언급하며 "현재 사법체계하에서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므로, 비상조치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게 조치를 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후 "싹 다 잡아들여"라며 체포하라고 지시한 인물 중엔 전·현직 국회의원과 민주노총 위원장이 있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계엄 일주일 전, 포고령 준비 시작한 김용현

김용현 전 장관이 구체적으로 계엄 선포를 준비한 시점은 작년 11월 24일 이후다. 이날 대통령 관저에서 차를 마신 김 전 장관은 "국회가 패악질을 하고 있다"며 비상대책이 필요하다는 윤 대통령 이야기를 들었다. 김 전 장관은 7번째 같은 이야기를 하는 윤 대통령을 보며 '조만간 비상계엄 선포를 결심하실 때를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해 계엄 선포문과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 초안을 미리 준비했다.

12·3 불법계엄 사태를 사전에 모의한 혐의를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12·3 불법계엄 사태를 사전에 모의한 혐의를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11월 30일, 국방부 장관 공관에서 여인형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인사 관련 보고를 받은 김 전 장관은 이런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선 대통령이 헌법상 가지고 있는 비상조치권, 계엄 같은 걸 이제는 할 수밖에 없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하시는 일이니 전혀 문제가 없다"고 안심시켰다. 김 전 장관은 이날부터 계엄 선포 당일까지 나흘간 민간인 신분이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매일 자신의 공관으로 불렀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으로부터 정보사령부 병력을 이용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장악하고, 합동수사본부 제2수사단장을 맡아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은 이후 경기 안산 롯데리아에서 문상호 정보사령관 등을 만나 구체적인 계획을 짰다.

윤 대통령은 4일 헌재에서 열린 탄핵심판 5차 변론에서 선관위에 군을 보내라고 지시했다는 걸 인정했다. 윤 대통령은 "범죄 수사 개념이 아니라 선관위에 들어가서 국가정보원이 다 보지 못했던 선관위 전산 시스템이 어떤 게 있고, 어떻게 가동되는지 스크린(점검)을 하라, 그렇게 해서 계엄군이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를 앞두고 '격노'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 1일 김 전 장관을 불러 "정부 주요 인사들에 대한 탄핵이 시도되고 감사원장과 검사 3명까지 탄핵하는 것은 사법뿐만 아니라 행정까지 마비시키는 패악질"이라며 "이걸 여기서 중단시키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만약 비상계엄을 하게 되면 병력 동원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 계엄을 하게 되면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윤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있었던 김 전 장관은 동원 가능한 병력과 경찰력 등을 이야기했고, 미리 준비해둔 계엄 선포문과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을 보고했다. 윤 대통령은 그중 '야간 통행금지' 삭제 등 보완 사항을 지시했고, 바로 다음날 이를 승인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 선포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선관위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는 장면이 담긴 내부 CCTV를 6일 공개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제공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 선포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선관위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는 장면이 담긴 내부 CCTV를 6일 공개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제공


국무위원에게 자기 할 말만... '계엄' 고집 못 꺾어

계엄 선포 당일, 김 전 장관은 준비했던 계획을 실행시켰다. 이날 오전 자신의 공관을 찾은 노 전 사령관을 만나 제2수사단 내용을 논의했고, 오전 국무회의가 끝난 뒤인 10시 30분쯤 울산 출장이 예정돼 있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만나 "(윤 대통령께서 대통령실로) 오후 9시까지 들어오라시던데?"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이후 낮 12시쯤 방정환 국방부 전작권전환TF장 등에게 전화했다. 당일 오전 군은 김 전 장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등의 지시로 '헬기 출동' 등 준비 태세에 돌입해 있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오전 11시부터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국회사무처가 계엄군의 국회 본관 진입 과정이 담긴 모습을 지난해 12월 4일 공개했다. 김민기 국회사무총장은 "국방부가 헬기로 24차례에 걸쳐 무장한 계엄군 230여 명을 국회 경내로 진입시켰다며 0시 40분에는 계엄군 50여 명을 추가로 국회 외곽 담장을 넘어 진입시켰다"고 밝혔다. 국회사무처 제공

국회사무처가 계엄군의 국회 본관 진입 과정이 담긴 모습을 지난해 12월 4일 공개했다. 김민기 국회사무총장은 "국방부가 헬기로 24차례에 걸쳐 무장한 계엄군 230여 명을 국회 경내로 진입시켰다며 0시 40분에는 계엄군 50여 명을 추가로 국회 외곽 담장을 넘어 진입시켰다"고 밝혔다. 국회사무처 제공

12월 3일 오후 6시 40분, 대통령실에 돌아온 김 전 장관은 윤 대통령과 함께 삼청동 안가로 이동해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에게 계엄 관련 지시사항 문건을 전달하고 국회 봉쇄 등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오후 8시부터 박성재 법무부 장관, 한덕수 국무총리,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해 대통령실로 오라고 했다.

국무위원들을 기다린 건 '계엄'이었다. 집무실을 찾은 국무위원 6명은 "70년 쌓아온 게 물거품이 된다"며 말렸지만, 윤 대통령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외교나 경제에 영향이 있는 걸 안다, 오래 생각했다"며 "이거(계엄)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우리 와이프도 모른다. 비서실장도 모르고 수석도 모른다. 와이프가 굉장히 화낼 것 같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김 전 장관은 "군대가 대기하고 있고 언론에도 오후 10시에 특별담화가 있다고 이미 얘기해 놨기 때문에 더 이상 계획을 바꿀 수 없다"며 외려 국무위원들을 설득했다.

국무위원들은 국무회의라도 열어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오후 10시 17분,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대통령실에 도착하며 국무회의를 열 수 있는 인원(11명)이 되자, 윤 대통령은 할 말만 하고 자리를 떠났다. 오후 10시 23분 그렇게 계엄은 선포됐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조소진 기자
이유진 기자
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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