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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의 대중화, 탄핵은 끝이 아니다

입력
2025.02.07 17:00
수정
2025.02.07 17:2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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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사태로 전면에 등장한 극우 세력
법치 부정하는 극우는 민주주의 위협
경제 불평등·양극화로 인한 분노 달래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뉴스1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뉴스1

12·3 불법 계엄 직후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은 시대에 역행하는 ‘망상에 빠진 돈키호테’로 여겨졌다. 계엄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황당한 조치였고, 외신조차 ‘기괴한 시도’(영국 가디언)라 평가했다. 대통령의 돌발적 일탈행위 때문에 우리 국민들만 부끄럽게 됐다고 생각했다.

계엄 선포 이후 11일 만에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니 잠깐의 국제적 망신과 정치·사회적 혼란, 경제적 타격만 견뎌내면 예전처럼 민주주의를 누리며 일상을 회복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우리는 이미 한 차례의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고, 위기 때마다 놀라운 회복탄력성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현실은 예상과 정반대다. 문제를 일으킨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됐는데 상황이 정리되기는커녕 오히려 복잡하게 흘러간다. 책임을 지겠다던 대통령은 “끝까지 싸우겠다”며 선동했고, 극렬 지지자들은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에 난입해 폭력을 휘둘렀다.

윤석열과 그의 지지자들은 계엄으로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고 법치주의를 노골적으로 부정하고 있는데, 오히려 대통령 지지율은 오른다. 설 연휴를 전후해 실시된 여러 조사에서 ‘탄핵 반대’ 여론은 30% 이상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자가 29%인 MBC의 신년 여론조사였다.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좁히면 부정선거론을 믿는다는 응답 비율은 65%나 됐다.

극우·포퓰리즘 연구의 권위자인 카스 무데 미국 조지아대 교수는 극우의 개념을 ①히틀러의 파시즘처럼 국민주권과 다수결에 의한 통치를 거부하는 ‘극단우익’ ②이론상으로 민주주의 원칙은 수용하지만, 법치·권력분립·소수 권리 등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부정하는 ‘급진우익’으로 구분했다.

최근의 정국 상황과 여론 추이는 우리 사회에 ‘급진우익’이 적잖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부정선거는 이미 대법원 판결 등으로 근거 없다고 결론 내려졌음에도 이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다수결에 의한 의회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파시즘 등 ‘극단우익’의 세력화도 우려된다.

결국 윤석열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극우를 연구해온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12·3 쿠데타는 윤석열 개인의 망상이 아니라, 그를 정점으로 한 거대한 극우 세력의 부상(浮上)을 뜻하는 것”이라 분석했다. 윤석열의 계엄은 ‘시대착오’적인 게 아니라, 극우의 조직화·대중화가 진행된 '시대의 산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전 세계적인 극우세력의 약진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핵심으로 거론된다. 정치권 주류로 자리 잡은 유럽 극우 정당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2년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 등 남유럽국가의 재정 위기, 2020년 팬데믹,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 위기 때 세력을 키웠다. 기존 정치 체제가 경제·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외면할 때 좌절과 분노를 느낀 이들이 극우 정당을 선택한 것이다.

경기 침체, 고물가, 저성장 고착화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과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치 세력은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고, 이는 극우가 성장할 토양이 된다.

특히 2030청년의 극단적인 우경화는 자유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데, 우리 정당은 얄팍한 정치적 계산으로 극우 세력에 적극 동조(국민의힘)하거나, 악마화하고 조롱(더불어민주당)할 뿐이다.

대통령 한 사람 바꾸는 것으로 지금의 위기 해결을 기대할 순 없겠다. 대중화된 극우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극단주의자들의 좌절과 분노를 달랠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계엄과 탄핵이 남긴 힘겨운 숙제다.

한준규 경제산업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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