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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떠나 딥시크 간 중국 인턴

입력
2025.02.1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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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연봉 포기 귀국 택한 AI 인재
최고 두뇌 책무는 어려운 일 해결
의대 쏠림 한국, 이공계 예우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중국 인공지능(AI) 기업 딥시크와 미국 AI 칩 기업 엔비디아의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중국 인공지능(AI) 기업 딥시크와 미국 AI 칩 기업 엔비디아의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인공지능(AI) 기업 딥시크와 미국 AI 칩 기업 엔비디아의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중국 인공지능(AI) 기업 딥시크와 미국 AI 칩 기업 엔비디아의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2019년 중국 하얼빈공대를 졸업한 판쯔정은 호주에서 컴퓨터 과학과 소프트웨어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23년 여름 엔비디아 인턴으로 들어갔다. 4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능력을 알아 본 엔비디아는 바로 정규직을 제안했다. 엔비디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초봉이 27만 달러(약 4억 원) 안팎으로 알려지고 주가도 오르던 때다. 그러나 판쯔정은 고액 연봉도 거절하고 중국으로 돌아가 작은 스타트업에 합류한다. 당시 이 회사엔 인공지능(AI) 전문 연구원이 단 3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1년 후부터 이곳에서 잇따라 내놓은 AI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다. 이 기업이 바로 딥시크(DeepSeek·深度求索)다.

미국 빅테크가 쏟아부은 자금의 수십 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으로 대등한 결과를 보여주는 가성비 AI 딥시크의 성공은 이런 중국 인재들로 가능했다. 딥시크는 더 많은 돈과 더 빠른 AI 칩을 써야 이길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깬 점도 놀랍지만 국내파 토종 인재들의 열정과 애국심이 이룬 성과란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딥시크의 구성원은 판쯔정처럼 중국 국내 대학 졸업자나 석박사, 인턴 출신들이 대다수다.

딥시크 연구원 판쯔정.

딥시크 연구원 판쯔정.

창업자 량원펑(40)도 저장대 전자정보공학과를 나왔다. “최고 인재에게 가장 매력적인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그의 창업 정신은 이들을 하나로 묶었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중국은 지난 30여 년간 혁신이 아닌 추종에 익숙해져 있었다”고 반성한 대목도 예사롭지 않다. 그동안 중국은 돈만 중시하며 서방의 혁신에 사실상 무임 승차해왔지만 이젠 추종자에서 탈피, 글로벌 혁신의 기여자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람을 뽑을 때도 열정과 호기심을 가장 중시한다. 딥시크의 프로그램 설계도(소스코드)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 생태계 확대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이다. 폐쇄코드로 이름값도 못하는 오픈AI와는 차별된다.

더구나 이런 중국 AI 인재들이 매년 4만 명도 넘게 배출되고 있다. AI 학과는 530여 곳, AI 기업은 4,700여 개에 달한다. 10년 전부터 국가 차원에서 AI 인재와 산업을 육성한 결과다. 2015년 질적인 산업 고도화를 목표로 한 ‘중국제조2025’가 발표된 뒤 2017년 ‘차세대 AI 발전계획’, 2024년 ‘AI+행동계획’으로 이어왔다. 이를 통해 중국 AI 생태계가 구축돼온 만큼 제2의 딥시크는 계속 나올 전망이다.

중국만 뛰는 게 아니다. 전 세계가 AI 전쟁이다. 미국은 딥시크가 R1을 내놓은 다음 날 오픈AI, 오라클, 일본 소프트뱅크 연합의 5,000억 달러(약 700조 원) 투자(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프랑스도 AI 인프라에 1,090억 유로(약 160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린 멈춰있다. 인재가 턱없이 부족한데 대학 AI 학과 정원을 늘리는 건 각종 규제와 기득권 탓에 쉽지 않다. 성적 좋은 학생들은 몽땅 의대로만 가고 이공계는 기피되고 있다. 정치는 뒷다리만 잡는다. 대통령은 늘려도 모자랄 연구개발(R&D)비를 줄였고 거대 야당은 AI 예산마저 삭감했다. 뒤늦게 정부가 AI 개발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3만 장 확보하겠다고 밝혔지만 미중 개별 기업들은 이미 수십만 장씩 갖고 있는 걸 감안하면 민망할 정도다.

믿을 건 미래 인재들뿐이다. 물론 애국심에 호소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의사보다 AI 전공자들에게 더 큰 보상과 예우를 해, AI 영웅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우선이다. 이처럼 국운이 달린 중차대한 시기인데 법 공부한 국내 정치 지도자들은 자기 혼자 살겠다며 발버둥만 치고 있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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